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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소 Dec 23. 2020

[편지X에세이] 위대한 작가는 어떻게 탄생하는 걸까?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편지

       

시작은 넷플릭스 추천 알고리즘이었다.


분명 내가 본건 1970년대 영국 북부의 연쇄 살인을 다룬 다큐멘터리였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다큐멘터리 시청을 끝내고 메인 화면으로 나가니 드라마 <검은 해적>의 홍보 영상이 커다랗게 걸려 있었다.       


익숙한 화면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작년에 두 시즌을 보고 시간이 없어 나중에 보려고 찜해 놓았던 드라마였다.     


이번에도 시간이 그리 넉넉하진 않았지만, 시즌 4에서 완결이 난 이 드라마의 재생목록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불편함이 몰려 왔다.

완결이 난 드라마를 보지 않고 넘기는 건, 책을 다 읽지 않고 덮는 것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찝찝하다. 이대로 이 드라마를 보지 않고 넘긴다면 한동안 매일 같이 생각 날 게 분명했다.     


그래서 방 한쪽에 쌓여있는 과자 상자에서 웨이퍼와 쇼트브레드를 꺼내고 진한 홍차를 타서 모니터를 적절한 위치로 돌리고 침대에 누워 <검은 해적>을 시즌 1부터 정주행 하기 시작했다.      


종일 침대에 누워 시즌2까지 보고 나니 지난번에 시즌2에서 드라마를 중단한 이유가 생각났지만, 이번에도 드라마를 마치지 않으면 또다시 신비한 알고리즘의 흐름으로 다시 한번 이상한 타이밍에 이 드라마를 마주하게 될 테고, 그러면 찝찝함에 다시 한번 시즌1부터 정주행을 하게 되고, 다시 시즌2에서 왜 지난번에 드라마를 끝까지 보지 않았는지 이유가 생각날 것 같다는 확신에 이번에는 적당히 스킵을 하면서 드라마를 끝내기로 했다.     


험난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다행히도 큰 어려움 없이 시즌4의 최종화까지 무사히 완주할 수 있었다. 2회차에 드라마를 완주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주인공인 ‘존 실버’였는데, 이 ‘존 실버’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으니 조금 말이 길어질 것 같다.     



“위대한 작가는 어떻게 탄생하는 걸까?”


이 물음과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은 드라마 검은 해적의 ‘존 실버’라는 인물은 사실 어떤 한 위대한 작가의 시작점이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스.

이 작가의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을 것 같지 않다.

스코틀랜드 출신에, 영국의 제국주의를 신랄히 비판했던 사람이라는 것도 잘 알지 못할 것 같다.

거의 모든 장르의 소설을 쓴 작가라는 것도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지킬박사와 하이드. 보물섬

이 책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다.

바로 영국의 위대한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스의 작품이다.     


모험과 글쓰기를 좋아하는 병약한 소년이었던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스는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 대학 법학과를 졸업해 변호사가 된다. 하지만 모험과 글쓰기에 대한 열정은 그를 변호사로 살기보다 여행가이자 소설가의 삶으로 인도했다.          


그렇다면 ‘존 실버’라는 인물이 어떻게 이 위대한 작가의 시작점이자 위대한 작가의 탄생과 관련이 있다는 걸까?     


이에 대해 한 통의 편지가 있다.    



1881년 9월, 브래마.     


W. E. 헨리에게.     

친애하는 헨리, 지난번은 고마웠네. 100파운드는 실현하지 못했고, 최소한 30파운드 언저리로 줄어들었어. 하지만 푼돈이라도 받아들였으니 영폭스라는 잡지에서 『배의 요리사 또는 보물섬: 해적 이야기』(보물섬의 원제로 배의 요리사는 풋내기 선원을 얕잡아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를 찾아볼 수 있을 거네. 계약은 4,500단어당 2파운드 10실링으로 했네. 대단치는 않지? 그래도 저작권은 지켰어. 삽화는 안 들어가. 다행이지. 그 정도가 내가 저작권을 갖는 대가니 말이네.

나는 이 소년용 책 사업에서 수익을 낼 거야. 그러려면 첫발을 떼야지. 영폭스와 계약이 끝나면 루트리지나 다른 출판사에 도전해 볼 걸세. 나는 『배의 요리사』가 재판을 찍을 거로 확신하고 그때는 무언가 제대로 된 결과가 따를 거야.

잽은 좋은 사람이야. 그 시인은 아주 명랑하고 유쾌하지. 나한테 많은 이야기를 했어. 단연코 잉글랜드에서 가장 활발한 젊은이이자 가장 지적인 사람 중 하나야. ‘유럽대륙으로 가고 그 너머로 이어지는 세상에 갈 거야.’ 지금은 스코틀랜드 인근에 다가가고 있어.

나는 『제리 애버쇼: 퍼트니 히스 이야기』와 『도등: 해안 이야기』, 『원주민과 결혼한 남자: 또는 황량한 서부』처럼 유익하고 재미있는 작품 다음에 적당히 간격을 두고 『배의 요리사』를 읽기를 제안하네. 『제리 애버쇼』는 재미있을 거야, 그렇지? 나는 소년용 책을 쓰는 게 좋다네. 이건 첫 시도일 뿐이야. 내 손으로 소년용 책을 어떻게 만들지 지켜보게. 나는 앞으로 해리슨 아인스워스(당시 큰 성공을 거뒀던 영국 역사소설가)가 될 거라네. 크리스토포로스 성인보다, 적어도 그만큼은 인기를 얻을 거야. 『배의 요리사』로도 그걸 확인할 수 있을 걸세.

…… 『배의 요리사』는 이제 16장을 쓰는 중이고, 입찰가는 서른 몇이야. 세 장에 2파운드 10실링이지. 그러니 벌써 12파운드 10실링을 벌었어.

어쨌거나 메리어트가 쓴 『해적』은 읽지 말게나. 모래에 소금 푸는 숟가락으로 쓴 작품이야. 건조하고 미미하고 무익하고 불안정해. 그렇다고 우리가 늘 하는 일에 집중하지는 않지. 하지만 메리어트는 늘 다른 어딘가를 여행한다고. 그런 건 안 좋아, 헨리. 『배의 요리사』에 관해 떠들어댈 생각은 아니지만, 세상에, 메리어트 선장이 쓴 『해적』보다는 조금 더 흥미진진하다고.

이 편지를 쓴 뒤로 ‘배의 요리사’는 19장에 접어들었다네. 야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소설 『보물섬』의 잡지 연재를 시작하며 반드시 이 소설로 작가로서 성공하겠다는 포부를 담아 친구에게 보낸 편지다. 편지에서 보이는 자신감과 확신을 증명하듯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실제로 이 보물섬으로 크게 상업적 문학적 성공을 거둔다.     


그러면 이제 마지막으로 ‘존 실버’가 어떻게 위대한 작가의 탄생과 관련이 되는지 말하자면,

보물섬의 원제인 『배의 요리사』의 요리사는 바로 드라마 <검은 해적>의 주인공 ‘존 실버’의 미래다.

말이 조금 복잡한가?     


드라마 <검은 해적>은 소설 『보물섬』의 프리퀼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검은 해적>은 『보물섬』의 매력적인 악역이자, 바로 『보물섬』의 원제인 『배의 요리사』의 요리사인 ‘존 실버’가 처음 해적이 되어 악명높은 해적으로 성장하는 이야기인데, 원작자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죽은 지 100년이 훌쩍 넘은 뒤 나온 드라마이니 당연히 공식적인 프리퀼은 아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처음, 소설의 제목(배의 요리사)으로 사용할 정도로 확신에 차 있던 캐릭터인 ‘존 실버’-이 요리사는 보물섬 이후 등장하는 해적의 스테레오타입이자 이데아 같은 존재가 된다. 다양한 작품에서 수많은 스핀오프를 만들어낸 ‘존 실버’는 보물섬이라는 소설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일등 공신일 뿐 아니라,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라는 위대한 작가를 탄생시켰다 할 정도로 역사상 ‘가장 성공한 캐릭터’ 중 하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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