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밤나무 Mar 18. 2018

광고대행사가 힘든 이유 #1

Natural born '을'

AE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쓴 단어는 단연 ‘죄송합니다’ 이다 

광고대행사는 광고주의 일을 받아서 하는 natural born ‘을’ 이다. 을 생활의 고닮음은 최근 사회의 주요한 이슈 중 하나다. AE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쓴 단어는 단연 ‘죄송합니다’이다. 나도 우리 집 귀한 자식인데 뭐가 그리 죄송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모를 일이다. 광고주와 대행사의 관계를 파트너란 이름으로 애써 포장해 위안을 삼으려 하지만 그건 우리의 바람일 뿐이다 예전에 광고인을 다룬 드라마가 생각난다. 외국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은 광고인이 국내 광고대행사에 스카우트되어 광고주의 불합리한 요구에 맞서 파트너로서 각기 역할을 당당히 강조한다 “당신이 우리를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으면 우린 당신과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역시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현실에서 그런 일은 흔치 않다  


불합리와 부조리는 일상이다. 하지만 일신의 안위, 팀과 회사의 실적을 위해 참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 들은 바로는 외국의 대행사들은 우리보다는 상황이 좋다고 하지만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본인들의 일을 부하직원에게 떠넘기듯 던지기도 하고 금요일에 업무 의뢰를 하고 월요일 오전까지 달라고 하는 일정 갑질을 하기도 한다. 드물게 욕을 하기도 하고 인격 모독은 그보다 잦다. 민망한 상황이 연출되는 접대 자리도 있고 여직원들에게는 성희롱 수준의 저질 대사가 난무한다. 대행사의 야근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업무 외 시간에 당당하게 업무 의뢰를 한다. 심지어 밤 9시에 퇴근해있는 AE에게 전화해 어떻게 벌서 퇴근할 수 있냐며 역정을 내기도 한다. 

전략이나 결과물을 리뷰 때 논리보다 우선하는 것은 개인의 취향이나 광고에 대한 본인만의 개똥철하이다. 심지어 그 개똥철학에 이리저리 휘둘리다 나온 개똥 같은 결과물에 대한 책임은 늘 대행사의 몫이다. 단언컨대 좋은 광고는 좋은 광고주에서 나온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광고가 좋아서 업계에 취직한 많은 광고인들이 이런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업계를 떠난다. 하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멀리 가지 못하고 광고주의 마케팅팀이나 광고팀으로 이직을 하는 경우가 많다. 3-4년 혹은 그보다 많은 경력을 가지고 광고주가 된 광고인들은 본인의 생존을 위해 동료였던 광고인들을 쥐어짠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라는 말을 입에 달고 말이다. 광고대행사의 경험을 바탕으로 효과적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진행하는 것이 그들이 채용된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해봐서 아는 데는 광고주와 대행사가 각각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을 훌륭히 소화함으로써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방향으로 구현되지 않는다. 정상적이지 못한 업무 프로세스를 지속적으로 대행사에 요구하고 비상시 가동되는 업무처리 속도를 상시화 시킨다. 그리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행사의 수익구조를 악화시키는 일이 그들의 주 업무가 되었고 실력이 되었다. 자신들이 겪었던 불합리의 정수를 모아 다시 대행사를 힘들게 하는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려는 듯하다. 



광고대행사는 태생이 을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감내해 내야 하는 숙명이다. 좋은 아웃풋을 내기 위해 지속적인 경험과 지식을 인풋 해야 할 시간에 과량의 스트레스만 인풋 되고 있다. 점점 업계에는 짜증과 무기력증만 흘러넘치고 우리의 크리에이티브는 짜내는 수준을 벗어나기 어렵다.  


찔리는 사람들이 많을까? 

사실 가장 큰 문제는 대부분의 광고주가 자신은 갑질 하는 광고주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광고회사의 종류와 조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