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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스카토 Apr 30. 2024

축구가 빠진 잉글랜드 축구 여행

0428@London


프리미어리그 찐 팬으로, 시즌 막바지에 열린 아스널-토트넘 경기의 위상을 몰랐을 리 없다. 다만 아스널 경기 직관 욕망이, 일반 경기와 다른 이 경기의 티켓을 못 구할 거란 합리적 추론 집어삼켰다. 경기 1-2주 전에 나오는 시즌권 티켓 소지자들의 취소 매물이 전무하다는 걸 확인했을 땐 이미 늦었다. 취소 불가 기차 숙소를 어찌하겠는가. 결국 축구 없는 축구여행을 시작할 수밖에. 런던의 날씨는 런던스러웠다.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아빠의 축구 여행 동행자가 된 불쌍한 막내는 축구 경기 대신 텅 빈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앞에서 아빠의 아스널 역사 강의를 들어야 했다. 경기 못 보는 거 그래도 분위기라도 느껴보고자, 토트넘 핫스퍼 스타디움으로 향했다.



경기장 주변은 작은 한국이었다. 토트넘 기념품 샵에서는 한국어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기념품 샵은 마치 눈물의 폐장 세일을 하는 곳 같았다. 한국팬들은 10만 원이 훌쩍 넘는 유니폼들을 허겁지겁 쇼핑 바구니에 넣고 있었다. 난 그저 '이 사람들은 전부 티켓을 구한 사람들이겠구나'싶어 부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교통은 차단됐고 축구팬들의 충돌을 막기 위한 기마경찰들이 곳곳에 보였다. 사람들은 경기를 보기 위해 구장으로 밀물처럼 밀려들고 있었고 나와 막내는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우린 역 근처 펍으로 향했다. 표를 못 구한 축구 팬으로 펍은 가득했다. 앉을자리를 구했다는 게 이번 1박 2일 축구 여행의 유일한 행운이었다. 난 영국 수제 맥주로 아쉬움을 달랬다. 축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막내는, 과연 아빠가 이런 불운의 고리 속에서 응원팀의 패배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지 불안해했다. 다행히 경기는 아스널이 이겼다. 참으로 비싼 축구 중계를 본 셈이었다. 판크라스 역에 앉아 왜 이렇게 인생은 삽질의 연속인지 과학적으로 연구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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