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6@ 헝가리 Felcsút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약 30km 떨어진 곳에 Felcsut라는 작은 동네가 있다. 헝가리 총리 빅토르 오르반이 유소년 시절을 보낸, 그의 고향이다. 인구가 2,000명이 안 되는 작은 마을. 하지만 이곳엔 마을 인구의 약 2배를 수용할 수 있는 최첨단 축구 경기장, 판초 아레나가 있다. 이런 작은 마을에 대규모 축구장이 있는 것도 신기한데 경기장 디자인은 더 놀랍다. 현대 미술관의 전위적인 디자인을 연상시킬 정도로 축구장 디자인이 파격적인데, 그 축구장이 작은 시골 마을 한가운데 있으니, 더욱더 기괴하고 초현실주의적으로 느껴진다.
축구 마니아인 오르반 총리는 자기 고향에 유소년을 위한 축구 아카데미, 푸스카스 아카데미를 세웠다. 헝가리의 축구 영웅 푸스카스의 이름을 딴 것인데, 정작 푸스카스는 이 마을에 와 본 적도 없다. 푸스카스 아카데미는 오르반 총리의 강력한 지원 덕분에 유소년 축구 교실에서 순식간에 헝가리 축구 1부 리그 우승 후보팀으로 성장했다. 그럼에도 푸스카스 아카데미를 응원하는 팬은 거의 없으며, 입장료가 약 2유로지만, 스타디움은 늘 텅 비어있다. 축구 기념품을 파는 곳이 있는지 찾아봤는데, 역시 없었다. Felcsut의 비현실적인 축구장은 헝가리에서 오르반 총리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빅토르 오르반은 14년째 집권 중인 헝가리 총리다. 우크라이나 지원, 스웨덴 나토 가입 문제 등 유럽연합의 결정에 사사건건 딴지를 거는 유럽연합의 문제아지만, 국내에선 반이민/반성소수자를 내건 강력한 보수 정책으로 인기가 많다. 특히 유럽연합에서 지원하는 예산을 알뜰하게 받아, 선거에 유리하게 잘 사용하는 포퓰리스트며,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친구이기도 하다.
Felcsut의 축구장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자신의 권력을 개인적으로도 영리하게 활용하는데, 배관공 출신의 친구를 헝가리에서 가장 부유한 기업가로 만들어 준 게 대표적이다. 정부가 발주한 공사를 친구 기업에 몰아주는 식이다. 최근에 완공된 부다페스트의 푸스카스 스타디움도 오르반의 배관공 출신 친구 기업에서 공사했는데, 구장 건축비가 프리미어리그 아스널이나 토트넘 구장 건축비보다 약 5배나 더 비쌌다고 한다. 구장이 5배나 더 크고 멋졌을까. 물론 아니다. 다만 공사비가 그렇게 청구됐고, 이는 오르반의 친구가 헝가리 최고 부호가 된 비결일 뿐. 오르반의 사위도 헝가리에서 5번째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다. 장인어른의 도움 덕분일 터. 역시나 사위의 투자사가 국책 사업을 도맡아서 하는 식이다.
그럼에도 그와 그의 집권당은 미디어를 장악하고 있으며, 고급 선전 기술을 발휘하는 데다, 유럽연합 지원금 등 국가 예산을 적재적소에 활용, 지난 4번의 선거에서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다. 친구와 사위는 부자로 만들면서 본인은 Felcsut의 판초 아레나 앞에 있는 평범한 집에서 주말을 보내는 소박함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 역시 선전술의 일환이며, 그의 아버지는 저택이라기보다는 궁전에 가까운-베르사유 궁전이 떠오르는-으리으리한 곳에 살고 있다. 그 궁전의 실거주자가 누구일지는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화려한 건물을 꼽으라면 단연 국회 의사당이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다음으로 유럽에서 큰 국회 의사당인데, 20세기 초 잘 나갔던 헝가리의 위세를 보여주는 건물이다. 웅장하고 화려하다. 많은 관광객이 다뉴브강을 건너 헝가리 국회 의사당을 밤낮 가리지 않고 감상한다. 헝가리는 점점 오르반의 개인 기업으로 전락하고 있는 모양인데, 민주주의의 상징인 국회 의사당은 화려한 모습으로 도심 한가운데 우뚝 서 있으니, 그 광경이 마치 오르반 총리의 고향 마을에서 본 판초 스타디움과 겹친다. 기괴함. 비현실, 초현실주의. 오르반 총리의 고향 마을에 있는 축구장은 디자인이 주변의 집들과 너무 달라서 크리스토의 대형 설치 예술을 연상시키는데 국회 의사당도 마치 헝가리의 쇠퇴해 가는 민주주의를 풍자하기 위한 장치 같단 인상을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