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스카토 Jul 28. 2024

비 때문에 올림픽 개막식이 망하면 또 어떠리

0726@Pont Alexandre III


     마크롱은 자신의 운을 끌어다 지난 총선에 다 쓴 것 같다. (극적으로 극우의 승리를 저지했으니..) 날씨운이 이렇게 안 좋을 수가. 개막 한 시간 전부터 트로카데로 광장엔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배를 탄 선수들이 입장할 때부턴, 그간 파리에서 보기 힘든 수준의 폭우가 쏟아졌다. 마치 하늘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올림픽 개막식을 망치려는 것처럼.


     날씨만 좋았다면 이번 올림픽은 아이디어가 지닌 혁신성을 훨씬 잘 드러날 수 있었을 거다. 스타디움을 벗어나, 화려한 마스게임 스타일의 정형성을 벗어난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파리의 정체성인 센강 주변을 개막식 공간으로 결정했으니 얼마나 혁신적인가. 완전히 개방된 대회를 모토로 도심 가운데서 경기를 개최한다는 올림픽의 정체성을 개막식에 응축하려는 의도였다. 단, 혁신의 문제는 관행이 만들어준 모든 편리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 공간이 분산됐으니 현장의 관객이 개막식에 집중하기가 어려울 것이며, 방송 중계도 훨씬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었다.


개막식 중간에 열받아 가버린 관객들


     첫 번째 문제는 사실 파리시 입장선 문제될 게 없었다. 개막식 티켓을 비싸게 팔아야 하는 IOC에겐 큰 문제였지만, 파리는 애초부터 개막식이 비싼 티켓을 구매한 소수에게만 허락되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물론 개막식 공간에 접근하려면 티켓을 사야 했지만) 누구나 마라톤 구경하듯 개막식을 즐겨주길 바랐던 것. 하지만 방송 중계는 다른 문제였다. 파리에 오지 못한 사람들에게 센강 개막식의 혁신성을 보여주려면 완벽한 중계가 필요했고, 파리는 이 지점에서 더 자신감을 가졌을 거다. 7.14 혁명기념일 행사 때마다 늘 대규모 생방송을 하며 축적된 경험과 기술이 있기 때문. (매년 중계 볼 때마다 그 스케일에 감탄)


이런 노을과
이런 야경을 기대하며 기획한 개막식였다


     하지만 혁신과 아름다움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비를 고려하지 못했다. (변명을 해주자면 보통 프랑스의 여름은 건기.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최근 들어 비가 부쩍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날씨는 프랑스뷰의 절반을 차지한다. 그들은 입장하는 선수단 배 뒤로 보이는 노을과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떠올리는 센강의 불빛을 기대했겠지만 현실은 회색 그 자체였다. 드론도 못 띄우고 카메라는 방수 커버를 씌운 데다, 빗방울마저 렌즈에 떨어지니 중계가 잘 됐을 리 없다. 비가 파리 센강의 참신성을 망쳤다. 비가 아니라면, 많은 비판 의견들을 압도적 이미지로 잠재웠을 거라 확신한다.


     한국에선 특히 비판적인 의견이 많다. 일단 자유분방함에서 오는 불편함이 있을 수 있겠다. 낯설어서 미학적으로 불쾌한. 하지만 그보다는 프랑스가 센강에서 벌이는 행사가 거대한 비효율처럼 보이는 게 삐딱함의 근원일 수 있다. 실제로 센강 개막식을 위해 도심의 대부분을 통제했고, 주민들은 엄청난 불편을 겪어야 했다. 방송 중계 비용도 늘어났고, 보안 문제 등 해결해야 할 현실적 난제들도 수두룩 했을 거다. 하지만 늙어가는 옛날 부자 프랑스가 아직도 세계 무대에서 콧대를 높일 수 있는 힘은 바로 효율성 논리에 모든 결정이 잠식되지 않는데서 나온다. 우리라면 효율성 논리 앞에서 시도도 되지 않았을, 무수히 많은 무모한 시도들이 지금의 파리를 만들었고, 미래의 파리에 경쟁력을 가져다주고 싶다.


중계진의 슬픔에 공감해보자


     이번 개막식, 비 때문에 망한 건 사실이다. 출퇴근 불편하다고 프랑스 욕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런데도 막상 가능할까 싶던 아이디어를 구현해 내고, 폭우 속에서도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며 힘을 짜내는 파리를 보며, 바로 여기에 허술하기 짝이 없는 비효율 프랑스의 힘이 있구나 싶었다. 컨시어리주리 안에서 목 잘린 마리 앙트와네트를 전면에 내세운 피의 록음악 연주는 정말이지 프랑스기에 가능했던 퍼포먼스라고 확신한다. 운을 다 써버린 대통령 탓에 개막식을 오래 준비한 파리 관계자들이 얼마나 우울할까 싶다가도, 지금쯤이면 와인 한잔 들이키며 이게 인생이지 C'est la vie라고 되내며 낙관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망하면 어떠리. 파리의 아름다움은 변치 않을 테니.


지난해 7월 이맘때의 날씨


매거진의 이전글 운 좋게 얻어걸린 산세바스티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