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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이양 Nov 17. 2022

아버지의 어깨

작아진 어깨에 살아온 세월을 짊어진 것 같았다. 

크고 무서웠던 아버지의 모습이 작게 보이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이제는 오히려 내 눈치를 보시면서 내 표정 하나 말투 하나에 

상처를 받으시는 모습을 보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나는 그 모습이 짠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화가 나 못내 모른 척한다.


옛날에는 으름장만 놓을 줄 알고 

밖으로만 돌아다니면서 속을 썩이더니 

노름으로 집 몇 채는 날렸던 그 사고뭉치인 아버지가 

이제는 어머니가 아프실가봐 전전긍긍하신다. 

이제는 속죄하듯 어머니가 귀한 줄 알고 

집안의 설거지랑 집안 청소를 맡아서 하신다. 

혼자서 밥도 잘 챙겨 드시고 어머니가 퇴근하기 전 

설거지도 해놓으신다. 


아버지가 그랬다. 

남자들은 철이 드는 나이가 있는 것 같다고. 

자신은 지금이 그런 거 같다고

나한테도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셨다. 

너무나 많은 상처를 준 것 같다고


그럼에도 너무 오랜 시간 묶여왔던 내 안의 미움이 

한순간에 풀리지는 않았다. 

다만 내가 기도했던 것처럼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알게 해달라고 했던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신 것 같아서 응어리가 조금은 풀렸다. 


한때는 나를 힘들게 했고 미워했던 

아버지의 작아진 어깨를 보는 것은 쉽지 않다. 

홍삼을 사다 드리면 늘 딸 덕분에 

건강하게 겨울을 날 수 있을 것 같다고

갈 때마다 이야기하신다. 

이제는 환갑이 되신 연세이지만 

아직도손에 기름칠해가면서 열심히 일하신다. 

미국에 오지 않았다면 이렇게 험한 일을 하지 않았을 텐데

계속 돌아가고 싶다고 했던 말들이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한국에 있었으면 늘 다니던 직장에서 편하게 일했을 텐데 말이다. 


어릴 적 부모님을 일찍 여읜 탓에 

사랑을 제대로 받아보시지 못했고 

가족의 울타리와 서포트가 없는 상태에서 

엄마를 만나 가정을 이루었으니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가 이해가 되지 않았던 어느 20대 후반에 

싸우면서 그리고 눈물을 보이면서 들려주었던 삶의 역사들이 

우리 아버지가 왜 이런 사람이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용서할 수는 없어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만 해도 큰 산을 넘는 느낌이었다.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특히 사업장 화재로 멘털이 산산이 부서지는 

우리조차도 어떻게 해드릴 수 없는 시간을 보냈지만 

어쩌면 그 철저한 무너짐이 

지금 우리 모두가 마음이 편해질 수 있는 

겨우 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을 맞이하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여행을 보내드렸다. 

생각해보니 몸이 고생하는 캠핑을 빼고는 

진짜로 좋은 곳에 여행 가보신 적이 처음이었던 같았다.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던 엄마의 모습을 

이모가 전해주었는데 눈물이 났다. 

그동안 고생만 하셨는데 여행 비용이 큰돈도 아니었는데 

우린 그동안 한 번도 이럴 여유가 없었구나 싶었고 

뿌듯함과 짠함이 섞여서 눈물이 났다. 


요즘은 평화로운 집 방문이 기분이 좋다. 

집을 들어서면 어딘가는 불편하고 싫어서 

도망치듯 독립했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아 우리에게 이런 시간들도 오는구나 싶다.

이 평화롭고 기쁘게 모여 앉아 

밥 한 끼를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시간이   

조금은 더 길게 유지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이제는 그 작아진 어깨를 

지켜드려야 하는 시기가 온 건 아닌지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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