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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이양 Aug 28. 2024

무기력증에서 벗어나기 위한 발버둥

집안 정리정돈과 미니멀 라이프 시도 

오늘은 내가 읽은 책 중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을 인용해 본다. "괴로움의 원인을 자세히 살펴보면, 집이나 물건을 소유하지 못한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집에 살면서 집에 누군가를 초청해 소유한 물건들을 자랑할 수 없다는 데서 오는 괴로움이 더 큰 문제다" 그만큼 우리는 내가 사는 공간에 신경을 많이 쓰기도 하고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을 사들일 때도 많다. 나도 한때는 미니멀 라이프를 시도했지만 팬데믹을 거치면서 다시 맥시멈 라이프로 돌아왔다. 거기에 결혼하고 남편의 짐과 출산하면서 늘어난 짐까지 더해지니 결코 작지 않은 이 집이 어느 순간 물건들로 꽉 차버렸다. 그리고 출산하고 6개월도 안돼 이사를 한 탓에 그때 질서 없이 마구 집어넣었던 구석구석 짐들이 그대로 방치된 채로 있었다. 늘 정리를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좀처럼 시간을 내지 못했고 그 짐들을 안고 아이랑 씨름하면서 살다 보니 어느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뭘 해도 즐겁지가 않은 무기력증이 왔었다. 


집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물론 보람찬 순간도 많지만 일이 전부인 사람처럼 일을 했던 나로서는 이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는 것이 익숙지가 않았다. 남편의 배려로 일주일에 3일 저녁에 운동 갈 수 있게 되었지만 원래 목표로 했던 14킬로를 빼고 나서는 또다시 스멀스멀 우울감과 무기력증이 나타났다. 나에겐 뭔가 더 근본적인 자극이 필요했고 성취감이 필요했다. 이렇게 무기력해 있지 말고 무엇이든 해야겠다 싶을 때쯤 한국 도서관에서 하는 스토리 타임(도서관 사서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무료 프로그램) 시간이 있어 아이와 함께 방문한 도서관에서 눈에 띄는 제목이 있어서 책을 집어 들었다. 그 많은 책들 중에 처음 빌린 3권의 책이 이 세 가지 책이었다. 아마도 나의 마음의 상태가 이 제목과 비슷하지 않았나 싶다. 


곤도 마리에 - 인생이 빛나는 정리 

윤선현-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은 순간 정리를 시작했다. 

이지영- 당신의 인생을 정리해 드립니다. 


곤도 마리에 책은 내가 어떻게 내 집을 정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배웠다. "설레지 않으면 버리라"라는 기준으로 옷, 책, 서류, 소품 기준으로 정리해 나가라고 했다. 나는 뭐든 빨리 실천에 옮기는 편이라 일단은 내가 가진 모든 옷을 한 곳에 꺼내놓고 내가 얼마나 많은 옷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었는지를 보고 책에서 말하는 대로 순서대로 정리해 나갔다. 그다음 순서인 책은 이미 많이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한 군데 모아놓으니 그것도 상당한 양이였고 아이 책은 아직 나이도 되지 않았는데 중고로 전집을 사놓은 것만 해도 책장을 빼곡히 채웠음을 알았다. 그래서 내가 아직 미처 읽지 못한 책만 남기고 아이의 책은 중고로 팔고 나눔 하기도 해서 많이 비웠다. 


그리고 나머지 두 권의 책은 왜 정리가 중요한지, 정리를 하고 나면 왜 내 삶이 훨씬 단순해지는 반면 왜 지금의 삶을 더 누릴 수 있는 가에 대해서 배웠다. 이 책에서 보면 누군가는 죽기 전에 정리를 의뢰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자신이 죽고 나면 누군가가 와서 이 어지럽고 무질서한 공간을 보는 게 싫다는 이유였다. 또다시 배운 대로 나는 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남기고 싶고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 가를 생각하면서 점차 정리가를 마무리해나갔다. 장장 2달에 거쳐 정리하는 동안 집안이 어수선해지고 산더미처럼 물건들이 쌓여있어도 남편이 묵묵히 기다려줬고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일절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다만 나는 지금 이 과정이 필요하고 더 나은 집과 나를 위해 정리하는 것이라고 부탁을 했다. 덕분에 우린 큰 쓰레기봉투로 20개 정도의 짐을 버렸고 보이는 곳이든 숨겨져 있던 캐비닛 안이든 모든 물건이 제자리를 찾았고 이사 온 그대로가 아닌 나만의 규칙을 가진 정돈된 집으로 꾸며질 수 있었다. 쓰러기더미 같던 창고도 수납장을 사서 차곡차곡 정리했더니 속이 다 시원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다 정리를 하고 나니 사람의 욕구가 빈 공간이 생기면 채워 넣고 싶어지는 게 당연한 건지 조금씩 물건을 다시 사고 싶어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무조건적인 소비가 아니라 꼭 이 공간에 필요한 물건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했고 이 물건이 나를 설레게 하는가를 고민했다. 옛날에 기분이 내키는 대로 소비하던 때와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단은 짐을 줄이고 비우고 나서 다음 단계에 넘어가면서 책에서 추천한 대로 집안 곳곳에 나만의 설레는 스팟을  만들기를 도전해 봤다. 일단 내가 주의 깊게 본 공간은 바로 거실과 주방이었다. 거실은 아이의 물건들로 가득 찼으니 내 물건을 놓을 자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공간을 비우고 나니 구석에 작은 테이블 놓을 자리는 충분했다. 그 테이블 위에 서랍장 안에서 묵혀놨던 내가 좋아하는 LP 기계를 꺼내 놓았고 아침에 가끔 한 번씩 아이를 안고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환기가 됐는지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물건 하나를 거실에 꺼내놓는 것만으로도 거실이 더 이상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위에 작은 선반을 놓아 내가 그 주에 읽을 책들을 올려놓았다. 


그다음 주목한 곳은 텅텅 빈 주방이었다. 물건들을 다 비우고 넣고 정리해서 텅텅 비었지만 뭔가 허전하고 2% 부족해 보였다. 그래서 작은 선반을 사서 그 위에 남편 방에서 뒹굴고 있던 내 최애 Marshall 스피커를 꺼내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 옆에 자주 봤던 샐러드 반찬 책을 올려놓았다. 스피커는 내가 주로 주방에서 설거지하고 음식을 준비할 때 아이의 동요를 트는 목적으로 쓰게 됐지만 그럼에도 볼 때마다 설레고 기분이 좋아서 아주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다음은 우리 침실인데 침실에는 원래 침대랑 수유를 위한 소파만 있었는데 그곳에 나의 컴퓨터 책상을 옮겨 놓았다. 사실 내 컴퓨터 책상은 부피도 커서 남편방에서 방치되어 있었는데 그 물건을 빼고 나니 남편의 사무실 겸 서재도 공간이 넓어졌고 그 안에 사이클 머신도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집안 곳곳에 내가 편히 쉴 수 있는 나만의 작은 쉼터가 만들어졌다.  


다 정리된 집안을 돌아보니 정리만 했을 뿐인데 참 놀라운 변화이구나 싶었다. 무엇보다 이런 물리적인 공간의 변화뿐 만 아니라 그중에 제일 큰 변화는 책을 읽게 되고 다시 나에게 중요한 것들을 찾게 되었다. 이를테면 다시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고 큐티도 시작하면서 점차 마음의 안정을 찾아갔다. 어쩌면 신앙은 내 삶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는데 아이 키운다는 핑계로 놓치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큰 변화는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자투리 시간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이가 낮잠 잘 때 핸드폰이나 집안일 대신 책을 읽는 게 내 정신건강에 훨씬 더 건강한 선순환의 역할을 했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빌리는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돌려줘야 하는 Deadline 기일이 있다 보니 책을 속독하게 된다는 거다. 한 3주 정도에 책 3-4권 추리소설, 자기 개발서, 재테크 관련 서적 등등 돌아가면서 닥치는 대로 읽었다. 미국에서 한국도서를 빌릴 수 있는 도서관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인데 거기에 무료로 책을 볼 수 있으니 정말 일석이조였다.  


지금 돌아보았을 때 매일 정리되지 않은 옷장,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 찼던 수납장, 그리고 물건들로 가득 찬 주방에서 매일 아이와 씨름하면서 보냈던 하루하루가 참으로 지쳤었구나 싶었다. 물건들을 비우니 오히려 내 마음이 홀가분 해지고 내가 가진 것을 더 소중히 여길 수 있게 되어 분명 그전보다는 훨씬 행복하다. 꽉꽉 채워져 있는 물건만큼이나 답답했던 마음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 같다. 그리고 물건들의 위치를 정해주고 나니 어지렵혀져도 다시 정리하기도 수월해지고 리셋하기도 좋았다. 내가 사는 공간을 정리한 것에는 분명 많은 장점이 있었지만 그 중심에는 단연 공간적인 깨끗함보다 내 정신건강에 많은 도움이 되었음을 다시 한번 느꼈다. 육아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여러 가지 일 수 있겠지만 나는 육아에 지치고 삶이 이 상태로는 안 되겠다 싶을 때 집안을 정리하고 물건들을 비워냈다. 그랬더니 내가 가진 것들 중에서 정말 나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되었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짐으로 인해 내 삶을 다시 잘 꾸려나갈 용기와 희망을 얻게 되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도 삶이 어려워지고 지칠 때쯤 한번 집안 주변을 정리하는 것을 조심스럽게 추천해 본다. 분명 후회하지 않으실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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