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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이양 Aug 28. 2024

미국 영화산업 제일 큰 노조 IATSE의 재계약

얼마 전 7월 미국에서 제일 큰 영화 산업 노조 IASTE (International Alliance of Theatrical Stage Employees)가 AMPTP (Alliance of Motion Picture and Television Producers) 와의 논의 끝에 또 다른 파업 없이 재계약에 성공했다. IASTE에는 정말 프로듀서나 작가, 감독을 뺀 모든 영화인들이  가입해 있는 미국에서 제일 큰 영화인 노조이다 보니 이번 재계약이 정말 중요했다. 이미 작가와 배우들의 파업으로 지칠 때로 지친 영화 스텝들의 참여율이 눈에 띄게 높았고 아마 그 피로감으로 인해 더 이상의 파업은 발생하지 않은 것 같다. 그중에서 내가 속한 그룹은 Local 871인데 나를 포함한 Production Coordinator, Assistant Production Coordinator, Accounting Department, Script Supervisor, 그리고 Writer's Assistant & Script Coordinator 등등 포지션들이 속해 있는 그룹이다. (이 직업군들이 한국에서는 어떤 직함으로 불리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어 번역을 못한 점 양해 바랍니다.) 


그중 우리 그룹 재계약 조항 중에서 내가 하는 일과 관련된 계약 내용만 간단히 정리해 보면 크게 몇 가지 있는데 첫 번째는 내 직군의 월급이 올라갔다. 특히 내가 일하는 포지션 (Assistant Production Coordinator) 시간당 월급이 원래보다 올랐고 내 위에 포지션인 Production Coordinator 포지션은 여전히 월급이 정해진 게 아니라 협상해서 월급을 정하는 것으로 마무리 됐다. 이 점이 반대표를 많이 받은 것 중에 하나인데 나처럼 주로 TV 나 Streaming TV (Netlfix, Amazon, Nickelodeon) 프로덕션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노조에서 월급상한선을 정해주지 않으면 코디네이터들이 하는 일은 많은 데 월급은 내 포지션보다 불과 몇백불 차이밖에 안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들의 불만은 늘 우리가 다른 팀들처럼 한 팀의 리더 인 셈인데 늘 조감독이나 다른 어느 팀의 수장들보다 월급이 적다는 것이었다. 정말 내가 본 코디네이터는 12-14시간 일하면서 주말에도 일해야 하고 전화는 새벽이어도 대기조로 받아야 할 때가 많았다. 역사적으로 프로덕션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성별의 분포도를 보면 여자들이 많았고(물론 지금은 남자도 많지만) 여전히 비서라는 이미지가 강해서인지 엄연한 프로듀서이자 매니저 급인데 그만큼의 대우를 받지 못했다. 아무튼 이번 재계약으로 인해 내 포지션의 월급이 정해졌으니 그 위에 포지션인 코디네이터들도 우리보다는 많이 받아야 하니까 큰 걱정은 없지만 어찌 됐든 아쉬움은 남았다. 내가 속한 그룹에 TV 쪽에서 일하는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라 미국서부에서 일하지 않고 타주에서 또 영화 작업만 하는 잔뼈 굵은 코디네이터들이 이미 자신의 몸값을 올려놨기에 갑자기 노조에서 자기들의 몸값을 정해버리면 협상할 때 불리할 것이라고 반대한 탓에 아직도 정해진 월급이 없이 협상해서 얻어내야만 하는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그래도 더 이상의 파업 없이 재계약에 성공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가 얼어붙은 할리우드에 다시 제작의 바람이 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으니까 말이다. 


두 번째로는 AI에 관련된 조항들이었다. 우리 노조는 크게 상관없지만 그래픽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세트를 짓는 사람들 즉 뭔가 창의적인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내용인데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은 AI가 만들어 낸 그 어떤 창작물에도 저작권을 주지 않기로 했다는 조항이다. 요즘 chatgPT를 이용하거나 AI로 만든 음악이며 그림이며 정말 우리가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것들 정말 많이 생겨났다. 그런데 영화 산업에서 일을 하려면 이런 것들에 대해 조금 더 조심해야 한다. 자칫하면 우리의 일자리를 대체할 수도 있으니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의상을 만들어야 하는 디자이너나 세트를 만들어야 하는 미술 팀들이 특히 위협을 느끼고 있었고 그 노조에 속한 위원장 노력한 덕에 만족할 만한 협상이 이루어졌다. 더 디테일한 것들을 기억에 잘 나질 않지만 어찌 됐든 이번 재계약에서 월급을 제외한 가장 큰 쟁점이었을 것이다. 


그 외에 몇 가지 디테일한 것 중에 기억나는 건 스텝 중에 누군가 상을 당하면 노조의 법대로 3일 동안 8시간 월급을 지급해야 하고 돌아와서도 일자리를 보존해줘야 한다는 조항이었다. 내가 일하는 부서는 한번 프로젝트를 맡으면 보통 몇 개월 쭉 일하는 반면 세트를 지을 때 고용하는 페인트 하는 사람이든 다른 직분은 며칠만 일하고 일을 안 할 수도 있는 게 다반사였다. 그러다 보니 내가 일을 했을 때도 다쳤는데도 괜찮다고 일을 나오게 해달라고 사정하는 경우들도 봤었다. 그런 일용직 같은 노동자한테도 이 조항은 정말 감사한 조항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옛날에는 12시간이 넘으면 프로듀서의 허락하에 스텝들에게 호텔을 제공했었는데 이제는 프로듀서들의 허락 없이 무조건 프로덕션에서 12시간이 넘는 모든 스텝들에게 호텔을 제공하게 계약서에 명시했다. 만약에 누군가는 꼭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운전하는 대신 우버나 택시를 불러 태워 보내고 그 돈은 모두 프로덕션에서 지불하도록 했다. 


그 외에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건강보험 자금을 더 늘리기로 한 것이 가장 큰 수확인 거 같다. 작년 한 해 배우나 작가 노조가 파업함으로 인해 일을 하지 못한 영화인들이 정말 많았다. 그럼에도 우리가 쉬는 동안 건강보험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던 건 바로 노조가 건강보험 자금 축적을 해놨기 때문에 우리가 맘 편히 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재계약으로 인해 그 액수를 대폭 더 늘리는 데 성공했고 다시 이런 팬데믹이나 파업의 상황이 됐을 때 모든 영화인들을 커버할 수 있는 건강보험 자금을 확보한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이미 퇴직한 영화인들에게 지급되는 퇴직금도 액수는 밝힐 수 없지만 지급되기로 했다. 지금처럼 쉬고 있을 때 이런 소식은 정말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모른다. 


다른 여러 가지 디테일한 조항들도 많지만 큰 골자로는 모든 영화인들이 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노조가 싸워줬다는 점이다. 우리가 일하는 영화 산업이 우리에겐 엄연한 직업이고 생계가 달린 직장이지만 다들 프리랜서다 보니 회사에서처럼 보장해주지 않는 많은 부분을 노조가 대신해 주는 것이다. 12시간 넘게 일하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권리, 그리고 식사 때를 놓치지 않고 앉아서 밥을 먹을 수 있는 권리, 그리고 오랜 시간 촬영을 끝내고 안전하게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오는 권리를 보장해 주는 것이 노조가 할 일이었고 내가 이런 권리들을 존중해 주고 보장해 주는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다시 한번 감사하게 생각한다. 물론 이런 재계약 조건들도 앞선 영화인들의 사건 사고로 인해 변화된 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나은 작업환경을 만드는 것이 결국에는 서로를 살리는 법임을 다시 한번 기억하기를 원한다. 부디 이번 재계약 성공으로 인해 제작이 중단되고 제작을 멈추었던 많은 스튜디오나 영화사에서 부디 다시 제작의 바람이 불어 쉬고 있는 많은 영화인들이 다시 활발하게 일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다시 열리길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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