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제목 그대로, 나는 4년 정도 다니던 첫 직장에서 퇴사할 때 "저 이직합니다." 라고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고 거짓으로 다른 사유를 꾸며냈다. 왜 그랬을까?
당시에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땐 내가 왜 그런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었는지,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 때 느꼈던 갈증으로 시작된 하나의 작은 프로젝트를 글로 남겨보고자 한다.
어차피 퇴직 후 언젠가는 '저 친구가 사실은 다른 회사로 이직을 했구나.'라고 다들 알게 된다는 것 쯤은 알고 있었다. 가깝게 지냈던 직장 동료들에게는 퇴직 후에 다시 연락해서 죄송한 마음과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아야지.. 라고 생각했다.
퇴직 사유를 왜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나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을 수 있겠지만, 퇴직 사유를 솔직히 말하는 것에 대해 무섭고 두려운 마음이 컸다.
첫 직장은 전통 대기업의 IT 계열사였다. 그리고 내가 이직한 2021년은 코로나 특수를 등에 업은 배달의민족, 카카오, 네이버와 같은 플랫폼 회사들과, 높은 유동성을 통해 자금을 마련한 스타트업들이 IT업계 인력들을 아주 공격적으로 채용하는 한 해였다. 2021년은 정말 '대이직의 시대'라고 불릴 만 했다.
IT업계 내 이직이 그 어느때보다 활발했지만, 슬프게도 그 이직의 방향은 앞서 언급했듯 전통 대기업 → 핫한 IT회사(네카라쿠배)와 높은 처우를 제시하는 스타트업이었기 때문에, 주로 인재를 뺏기는 쪽은 전통 대기업인 우리였다. 우리 인사팀의 주요 과제 중 하나가 우수인재에 대한 퇴직 리텐션일 정도로 당시 '인력 유출'은 아주 심각한 문제였다.
나는 인력운영 담당자이다. 회사의 우수한 인력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다른 회사로 계속해서 빠져나가는 이런 심각한 분위기에서, 인사 담당자가 퇴직을 한다니. 그것도 심지어 채용/양성과 같은 기능도 아닌 인력운영 담당자가 퇴직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라고 느꼈다. 당시 퇴직 소식은 동료의 발전을 위해 박수칠 일이 아니었고 조직 안에서 절대로 들리지 말아야 할 금기어에 가까웠다. 당시 나는 4년차였지만 담당 업무 단위에서는 막내였고, 인사 조직 전체로 봐도 3~4명의 후배와 함께 주니어로 묶이는 저연차였다. '저 이직합니다'라고 말을 꺼내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고 힘든 주제였다.
게다가 나보다 앞서, 인사팀 내 가까운 선배가 이직하겠다고 퇴직 의사를 밝힌 적이 있었는데, 그 선배가 퇴직 절차 간 받았던 조직장의 무시, '배신자' 낙인, 그리고 퇴직 면담을 제때해주지 않음으로써 프로세스를 처리해주지 않는 등 아주 힘든 시기를 겪는 것을 지켜보았다. 결국 원하는 시기에 퇴직하지 못했고, 이직 회사의 입사시점을 미루고 겨우겨우 입사했다고 들었다. 신입부터 7년 가량 일했던 조직에서 마치 쫓기듯 퇴직하는 선배를 지켜보며, 나는 실제로 이직하더라도 절대로 그렇게 말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몇 달 뒤, 나는 먼저 나간 선배와 같은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나는 그 선배보다 저연차였고 퇴직을 직접 담당하는 부서에서의 퇴직인 점, 그리고 평소에 내 성격상 회사나 부서에 대한 불만을 전혀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대로 말했다가는 내가 과연 내 의지대로 잘 퇴직할 수 있을지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무섭고 두려웠다. 이 조직을 배신하고 도망가는, 마치 죄인이 되는 것만 같은 선택이었다. 그리고 이런저런 부분을 문제삼아, 내가 원하는 일정과 방식대로 퇴직과 이직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었다. '동종 경쟁업계로 이직하는 것을 이유로 나의 채용이 취소되는 것은 아닌가'하는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다. 오랜 시간 같이 지낸 가까운 선배, 동료들이 눈에 아른거렸지만, 우여곡절 없이 무탈하게 퇴직하기 위해 눈 딱 감고 거짓말 하자고 결심했다.
저 해외MBA 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무슨 핑계를 대야 무탈히 잘 퇴직할 수 있을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일단 '이직'을 한다고 말한다면 집요하게 어디로 가는지 물어볼 것 같았고 그 회사로 가지 말아야 하는 점에 대해, 지금 이 회사에 남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끝없이 들을 것만 같았다. 물론 진심이 가득 담긴 선배들의 조언과 충고였겠지만 어쩌면 나를 리텐션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던지는 과장과 회유에 내가 넘어갈까봐, 최선의 선택을 내가 하지 못할까봐 많이 걱정했었다.
긴 고민 끝에, 퇴직 사유를 어떻게 말할지 결론을 내렸고 부서장을 만나기 전에 먼저 업무 단위의 리더인 셀장님과 면담을 신청했다.
"셀장님, 저 해외MBA 가려고 합니다."
피폐하고 험난한 퇴직 절차는 이렇게 첫 발을 뗐다.
-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