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자연스레 우울감을 느끼고 있다고 근황을 전하곤 했다.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사람, 격려의 말을 전하지만 사실은 당황한 사람,
그리고 “왜?”라고 말하는 사람까지 다양한 반응을 봤다.
직접 겪어본 사람이 아니면 딱히 도움이 되는 말을 해주지는 않는다. 나도 딱히 해결책을 바라고 말을 한 건 아니다. 다만, 내가 다소 텐션이 떨어져 있어 보여도 그 사람에게 유감이 있어서가 아니라고 양해를 구하고자 함이었다.
“왜?” 반응은 참 솔직히 별로였다. 이해를 바란 건 아니지만 내가 상대방을 이해시켜야 할 문제도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누군가 나에게 우울하거나 힘들다고 말을 전한다면 나는 저런 반응을 보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상담보다 운동
다행히 우울증이 오래 가진 않은 것 같다.
정해진 예산 내에서 나의 우울증 해소를 위해 써야겠다고 다짐했는데 이 걸로 병원을 갈까, 상담을 받을까 하다가 운동을 하기로 했다.
직장생활을 하다가 오랜 기간 휴직을 하다 보니
비일상적인 일이 일상이 되어가는 것에 불안함을 느꼈는데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 가서 정해진 테스트를 수행(운동)을 하는 게 도움이 되었다.
운동을 위해서 운동화, 운동복을 샀는데 아이가 아닌 나를 위한 소비를 하는 게 행복했다.
운동한 게 아까워서 운동 후에는 단백질 함유량이 높은 식단으로 식사를 하고 야식을 끊은 것도
피로감을 해소하는데 일조했다.
그래도 뭔가 부족했다. 결과가 바로 눈에 보이지 않으니 1,2주 만에 약발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최고의 치료는 금융 치료
아이의 두 돌 전에 제주도를 가려고 했다. 6월에 한번 다녀와서 아이의 선호도에 맞게 동선을 짜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만, 내가 질렸다.
아이를 위한 음식, 아이를 위한 장소.
한 두 번은 재밌었지만 이번에는 내키지 않았다.
때마침 친하게 지내는 가족이 겨울에
발리에 간다고 했다. 뉴스에서는 입국 후 pcr 검사도 폐지한다고 했다. 해외여행이 가고 싶어졌다.
예산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고환율에 비싼 현지 물가까지. 제주도는 마일리지와 이런저런 혜택을 활용하면 식비나 입장료를 제외하면 크게 현금이 추가로
나갈 일은 없었다.
미리 계획하고 있던 여행을 취소하면 보유하고 있던 마일리지를 긁어모으면 해외여행이 가능했다. 유류세가 많이 높았지만 해볼 만하다 싶었다. 바로 예약했다.
발권을 한 이후 2주 동안 여행 계획을 세우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아이와 떠나는 해외여행 준비물 목록을 만들고
다이소와 쿠팡에서 신나게 주문했다. 카드를 긁기 시작하니까 좀 신나기 시작했다. 이제 좀 그만 사고 싶다 할 정도로 쇼핑을 했다.
쇼핑에 질릴 때쯤 맛집 리스트를 작성하고 일정을 짰다.
여행 계획 세우는 게 이렇게 에너지 소모가 큰 일이었던가? 예전에는 직장 생활하면서 틈틈이 해도 충분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2주 동안 일상 루틴은 제쳐두고 여기에 매달려 있었다.
집중을 하다 보니 우울할 틈이 없다. 몰입과 신나는 돈 쓰기 덕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아직 시간이 많~~ 이 남았고
하도 검색을 많이 해봐서 이미 다녀온 것 같지만,
중요한 건 이 과정을 통해서 우울했던 감정이 사라졌다는 것.
나중에 우리 딸이 육아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면
(정말 우울했을 때는 딸에게 결혼하지 말라고 해야지라고 생각했다) 아무 말 안 하고 통장이나 건네어야겠다.
쭉 금전적으로 능력 있는 엄마로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