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엑스 한복판에 자리 잡은 별마당 도서관은 주말이면 인산인해를 이룬다.
생전 처음 보는 크기의 책장들과 감성을 자극하는 따뜻한 온도의 조명들은 대중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언론들은 앞다투어 역시 정용진이라며 칭찬일색이었다. 그러나 나로서는 기사들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내 마음을 대변해 줄 비평가는 없는 걸까? 전문가들은 분명 알고 있다. 아름답게만 보이는 별마당 도서관이 다른 한편으로는 한없이 부끄러울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그렇지만 이와 관련해 심도 깊은 비평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내가 직접 글을 써 보자며 브런치를 시작하게 되었다. 독자분들은 글을 읽으며 공감하는 바가 있다면 혹은 반박하고 싶은 의견이 있다면 주저 말고 개진해주기 바란다.
나는 최근 몇 년동안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코엑스를 방문하고 있다. 거주지와의 거리도 거리이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부터 쇼핑, 식사, 서점까지 일사천리로 해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기후의 문제도 있는데 극심하게 덥거나 추운 날이면 데이트장소로 코엑스만한 곳이 없다. 요즘에는 미세먼지 또한 한 몫 차지한다.
별마당도서관이라는 단어를 처음 보게 된 때는 아마 2016년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신세계가 막 운영권을 따내고 난 뒤라 리뉴얼을 진행한다며 난데없이 코엑스 한복판에 가벽들이 세워졌고 안그래도 복잡한 동선에 공사까지 겹치면서 더욱 정신사납기까지 했다.가벽 위에는 신세계가 뭔가 건립하겠다는 부착물만이 나를 불친절하게 쏘아보고 있었다. 그렇게 계절이 바뀌고 여름이 올 즘 무렵 완공된 별마당도서관을 마주하게 되었다. 처음 순간은 여느 사람들과 다름없이 꽤나 충격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런 크기의 책장은 해리포터 영화 속에서나 볼법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다음으로 놀란 점은 서점이 아닌 도서관이란 점이었다.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역시 도난과 훼손이었다. 물론 신세계의 시가총액을 감안한다면 나같은 일개 서민이 걱정할바는 아니지만 어떠한 도난방지 시스템도 적용하지 않고 분실,도난등에 대해 어느 정도 감수하고 예산을 편성한다고 하니 과연 대기업다운, 대기업만이 할 수 있는 넓은 아량에 감탄했다!
첫 만남의 흥분을 뒤로하고 차분히 별마당도서관을 둘러보며 느낀 점은 '정용진은 정말 한국인들을 잘 이해하고 있구나'와 동시에 '꼭 이렇게 까지 해야했나?'였다.
신세계는 츠타야 서점과 다케오 시립도서관을 벤치마킹하여 별마당도서관을 기획했다고 말하는데 나는 묻고 싶다. 이것이 정말 벤치마킹의 결과인가? 벤치마킹은 분명 카피와는 다른 개념이다. 하다못해 카피라도 잘했으면 모르겠다. 츠타야서점을 벤치마킹했다는 곳이 '책'이라는 컨텐츠에 대해 진정으로 고민한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기껏해야 1층에는 유동인구가 많으니 잡지 위주로 진열했다는 점? 한마디로 외형만 그럴싸하게 카피한걸 벤치마킹이라는 허울 좋은 단어로 포장한 것이다.
매주 별마당도서관을 갈 때마다 느끼는 점은 책을 읽을만한 공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증샷을 남기려는 사람들로 붐빌 뿐만 아니라 주말이면 아이들과 나들이 온 가족이 많기 때문에 그야말로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가끔 공연이나 행사를 진행하기도 해서 이게 도대체 책을 읽으라고 만든 공간인가 싶기도 한다.차라리 도서관이 아니라 만남의 광장으로 지었으면 모르겠다. 이런 상황 속에서 책을 읽고 있는 몇몇의 시민들을 보면 그들의 집중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정용진은 그저 인스타그램용 핫플레이스라는 '목적'을 위해 책을 '수단'으로 사용했을 뿐이다. 그 결과 많은 이들의 발목을 잡는 데에는 성공했다. 사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별마당도서관은 충분히 매력적인 공간이다. 처음 보는 크기의 책장도 그렇고 저녁이면 켜지는 누런색의 조명들은 인스타그램용 사진으로 더할 나위 없다. 이미 대중들에게는 사진만 이쁘게 나오면 그 공간의 내면은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화려한 무언가로 대중들의 이목을 사로잡는 건 백화점이 가장 잘하는 일중 하나다. 신세계라는 대기업은 말할것도없다.
신세계가 벤치마킹한 다케오 시립도서관과 츠타야 서점을 기획한 마스다 무네아키는 지적자본론이라는 책을 통해 그가 어떠한 철학으로 도서관을 기획했는지 보여준다. 나는 책을 읽으며 마스다의 섬세하고 논리적인 기획에 종종 소름까지 돋았다. 그는 도서관을 기획하기전 책이라는 컨텐츠와 고객경험에 대해 철저히 고민했고 그 첫걸음으로 책을 분류하는 방법에서부터 시작했다. 기존의 분류법으로는 현재 출판되고 있는 책들을 분류하기에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고 자신만의 분류법을 고안해낸것이다. 더나아가 그는 고객들이 머무르는 공간에 들어오는 햇빛의 양까지 고민했다. 고객과 몰아일체가 되어 최고의 경험을 선사한다는 철학이 공간에 반영된것이다. 읽는 내내 생각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고수'란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그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면 '전국 최초라는 말을 듣고 싶다'라는 단순한 동기에 의해 도서관을 기획한 것이 절대 아니라고 밝혔다. 기획자의 역량은 여기서부터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는 또한 사람은 목적과 수단을 쉽게 착각하기 때문에 '수단이 목적이 되어 버리는 경우를 흔히 찾아볼 수 있다'고 했다. 아뿔싸, 그가 걱정했던 그대로 지금 여기에서 벌어졌다.
나는 정용진의 벤치마킹이라는 행위 자체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벤치마킹이 카피와 다른 점은 주체의 독자성이다. 대상을 완벽하게 분석하고 체득한 뒤 나만의 시각으로 또 다른 가치를 창조할 수 있을 때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피카소가 정말 말했는지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훌륭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정작 알맹이는 쏙 빼먹고 겉만 화려하게 모방하는것은 삼류기업이나 할짓이다. 신세계정도 되면 마땅히 대중들을 선도해야 할 의무가 있지 않겠는가. 단지 '좋아요'수를 많이 받기 위한 공간과 고객경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공간의 깊이는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미 기술력으로 상당 부분 일본을 앞서있다고 생각하지만 콘텐츠 부분에서는 갈 길이 먼 것만 같다. 디자인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고 있다. 겉은 그럴싸하게 꾸며봐도 속은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런 상황에도 하나같이 역시 정용진이라며 그를 추켜세우는 기사들을 보면 괜스레 내 마음이 찔린다. 만약 일본인들이 이를 두고 코웃음 친다면 나는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최근 베트남에서 한국 브랜드로 위장한 중국 브랜드가 비난을 받고 있지만 실상은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
입점자들 입장에서는 정용진이 백마 탄 왕자님과도 같지 않을까. 그 전까지의 코엑스는 중심부라고 부를만한 곳이 없었을 뿐더러 난잡한 동선으로 인해 엄청난 비난을 받고 있었다. 지리적 이점을 상당히 보유하고있음에도 운영은 그에 미치지 못한것이다. 확실히 국내 선도기업인 신세계가 운영권을 쥔 후 대중들이 붐비기 시작했고 이는 곧 입점자들의 매출 상승을 의미할것이다. 경제적 지표로만 놓고 따져본다면 과연 정용진이다라는 표현에 이의를 제기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디자인을 이러한 지표만으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협소한 시각은 창조적 사고의 종말을 부를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정용진이라는 경영인은 호기심이 많이 가는 사람이다. 그가 걸어온 행보를 보면 확실히 트렌드에 민감하고 디자인에 대한 이해도가 여느 대기업 CEO들과는 남다르기 떄문이다. 다음에는 꼭 '정용진만의 무엇'을 만나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