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wan Apr 18. 2018

조수용의 매거진B는 카피일까?

매거진B로 엿보는 조수용 대표의 디자인 철학

잡지?

내 인생에 잡지를 사서 읽어본 적이 있던가. 병원이나 미용실에서 무료함을 떄우기 위해 존재하는것. 내게 잡지라는 존재는 딱 그 정도였다(일단 잡지에 나오는 건 죄다 비싸기 때문에 안 보는 게 통장잔고에 이롭다). 매년 줄어드는 잡지회사들의 매출을 보면 비단 나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닌가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나의 마음을 홀딱 사로잡은 잡지가 있었으니 바로 JOH에서 나온 매거진 B다.





기존 잡지들과 전혀 다른 레이아웃에 한번, 색다른 컨셉에 또 한 번 마음이 홀렸다. '브랜드 다큐멘터리'라니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거기에 더해 매 호마다 큐레이션 하는 브랜드 취향도 내게 굉장히 잘 맞았다. 물론 그럴 리 없겠지만 이건 정말 마치 나를 위해 만들어 준 선물 같았다. 아마 이런 반응은 나뿐만이 아니었으랴, 감수성에 예민한 예술계 종사자들 중 상당수가 매거진 B의 매력에 홀딱 빠져버렸다. 조수용 대표와 박지윤 씨가 진행하는 팟캐스트까지 경청해가며 열성팬이 돼버린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매거진 B를 전도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소년팬의 가슴에 비수가 꽂혀버린 날이 있었으니 해외 디자인 서적을 둘러보다 우연히 D&Department의 design travel 잡지를 발견했을 때였다.

 


사랑하는 아이돌의 스캔들 기사를 본 팬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었다. 가슴은 부정했지만 머릿속은 이미 실망감으로 그득 차 있는 상태였다. '아 이번에도..'라는 탄식 섞인 주저리와 함께 한국 디자인 업계에서 흔히 벌어지는 레퍼토리가 상상되었고 이는 곧 배신감으로 바뀌었다. 특히 너무도 유사한 표지의 레이아웃은 불난 가슴에 기름을 들이붓는 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찌 나 같은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있으랴. 애인의 불륜을 목격한 주인공 마냥 키보드를 연타하며 매거진 D에 대해 리서치를 시작했다.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지, 이와 관련한 공식 인터뷰는 없는지 눈에 불을 켜고 찾아봤다. 아니나 다를까 나처럼 d 잡지를 보고 유사한 느낌을 받은 사람이 적지 않게 있었다. 한국에 정식 출시되지 않아 쉽게 접하기는 힘들지만 d를 우연히 발견한 사람들은 하나 같이 서로 엇비슷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반면에 이미 d를 알고 있던 사람들은 B를 보고 한눈에 동질감을 느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와 관련한 조수용 대표의 입장은? 아쉽게도 없었지만 편집장의 인터뷰는 있었다. 관련 내용을 발췌해본다면 '볼드체의 정중앙 배치와 레이아웃 만으로 의혹을 제기하는 게 표절 사유로 삼기엔 근거가 약하다 내용에 대한 지적은 없다'라고 되어있다. 그리고 다른 화제로 넘어간다. 기가 찼다. 질문하는 기자가 야속하기만 했다. d잡지가 뭔지는 찾아보고 질문한 걸까? 왜 더 심도 깊은 질문을 하지 않은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편집장이 말하고 싶었던 건 결국 '새로운 디자인은 하늘 아래 없다 그리고 책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내용과 컨셉이니 외적 디자인 요소에 한정 지어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고 매거진 B만의 내면을 보고 지적해달라'일까? 알았다. 레이아웃은 그렇다 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d와 B의 컨셉이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검색을 하다  d와 B를 자세히 비교해 놓은 블로그 주소를 발견했는데 읽어보면 단순히 표지 디자인 말고도 유사한 점이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https://blog.naver.com/creatifori/50184692858




정말 카피일까?

매거진 B의 공식 컨셉은 이렇다.

'매거진 B는 제이오에이치의 관점으로 전 세계에서 찾아낸 균형 잡힌 브랜드를 매월 하나씩 소개하는 광고 없는 월간지입니다.'


매거진 d의 공식 컨셉은 이렇다.

'지역의 개성을, 외부의 눈으로 발굴하여 기사로 내보내는 것입니다' 

( 나가오카 겐메이의 자서전 디앤디 파트 먼트에서 배운다 中..)

판단은 독자의 몫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럼 비슷한 취향의 잡지들은 어떻게 자신들을 정의하고 있을까?


모노클

2007년, 모노클은 세계정세, 기업, 문화, 디자인 등에 관한 잡지 브리핑으로 출범했다. 우리는 국경 너머의 기회와 경험을 갈망하는 독자들의 전 세계적인 관중이 있다고 믿었다.


라곰

Lagom은 사려 깊은 디자인, 독립적인 여행 및 균형 잡힌 삶의 방식에 관심이 있는 동지애의 글로벌 커뮤니티를 연결하는 라이프 스타일 잡지입니다


킨포크

가정, 직장, 스타일, 문화에 깊이 빠져 있는 Kinfolk는 삶의 질을 높이고 런던에서 도쿄까지 창의적인 전문가들로 구성된 글로벌 커뮤니티를 연결한다.


뉴필로소퍼

뉴필로소퍼는 과거와 현재의 사상가들의 철학적 사상을 탐구하여보다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에 관한 독자적인 분기 별 잡지입니다. 새로운 철학자에 대한 해설은 독자들이 보다 행복하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살아가도록 인도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브리크

브리크BRIQUE는 벽돌을 의미하는 프랑스어로, 브리크컴퍼니BRIQUE.co는 우리가 사는 주거공간과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컨텐츠를 만드는 미디어입니다.


그놈들은 진짜가 아니야!

문득 영화 속에서 나오는 주인공의 대사가 떠올랐다.

사실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조수용은 성공한 비즈니스맨. 나는 골방의 백수일뿐.

외형적 요소가 과거 1차원적 의미에서의 디자인이라고는 하지만 정말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걸까?

디자인을 잘 모르는 친구가 "이거 두 개 표지 비슷한 거 아니야? 에이 누가 따라 했나 보네"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까. B에 관련된 인터뷰는 아니었지만 조수용의 디자인 철학을 엿볼 수 있는 글을 찾을 수 있었다. 그의 철학은 이러하였다.

'카피를 안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 브랜드에 잘 맞는지만이 중요하다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외우려고 하라'

'볼펜 디자인을 의뢰받았을 때 가장 먼저 해야 될 것은 1000개의 볼펜을 찾고 분석하는 것이다'

조수용이 정의 내리는 좋은 디자인이란 0에서 1을 만드는 게 아니라 기존 것의 'modify'에 가까운 것 같다. 

사실 맞는 말이다. 디자인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 심지어 전공자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중 하나가 디자인이 뭔가 '새로운 걸 창조하는 직업'인 줄로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들여다보면 기존에 있던 뭔가의 변형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아이폰이 그렇지 않은가?   

그는 매거진 d를 찾았고, 분석해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소화했다.

매거진 d의 레이아웃과 컨셉은 맞춤 슈트 마냥 B와 어울린다. 이런 말을 하면 외람되지만 솔직히 조수용 대표의 손을 거친 B는 디자인적으로도, 비즈니스적으로도 훌륭하다. 특히 브랜드를 큐레이션 한다는 컨셉이 너무나도 천재적인 발상인 것 같고 현재 시장 트렌드에도 잘 부합한다. 소비 트렌드가 변하면서 '브랜드'에 대한 스토리에 소비자들의 관심도는 높아졌고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매거진 B에 열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배달의 민족과 협업해 매거진 F를 창간했다는 기사를 접했을 때는 그의 확장력에 그야말로 소름이 돋았다. 음식 영역으로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는 것을 보고 그의 사업능력에 다시 한번 무릎을 쳤다.

이쯤 되면 마치 저 멀리서 나를 비웃고 있는 것 같았다.




오늘날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매거진 B는 과연 훌륭한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범주에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디자인으로 포함된 걸까.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는 나로서는 항상 딜레마에 빠진다.

피카소가 조수용을 보면 박수를 쳐 줄지도 모르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