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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새작가 May 14. 2024

슬픈 자화상

프리다 칼로

 <상처 입은 사슴, The Wounded Deer, 1946> 은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1907~1954)'가 그린 유화작품으로 그녀의 자화상이다.

그녀는 47세에 죽음을 맞이하였지만 짧은 생을 살면서도 늘 도전하면서 자신의 삶을 승리로 이끄는 힘을 지녔다.

프리다 칼로의 출생 당시는 멕시코가 대전환기를 맞아 민주적인 선거를 앞두고 있었다.

그녀의 탄생은 혼돈과 희망이 교차되는 시기로 두 가지 삶의 가치를 겪는 상황에서 자라게 된다.

10대 시절에 그녀가 겪은 치명적인 교통사고로 신체적 장애를 얻었다.

그녀가 활동했던 1900년대 초의 멕시코는 스페인의 식민지 시대가 끝나고 멕시코 혁명(1910~1921)이 발발했던 시기였다.


 그녀는 사고 후에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멕시코의 리얼리즘 미술이었던 벽화를 그리는 천재 화가, '디에고 리베라(1886~1957)'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었고, 21세의 나이차를 극복하며 그와 결혼을 한다.

그러나 그녀는 디에고 리베라와 결혼 후 유산의 아픔을 겪었으며, 디에고 리베라는 외도를 하였다.

프리다 칼로에게 디에고 리베라는 남편 그 이상의 존재였으며 사랑과 증오, 희망과 절망, 기쁨과 고통, 연인이며 적이었다.

디에고 리베라와 작품 활동도 여러 번 했지만 그의 여성 편력으로 이혼과 재결합을 반복하며 결국에는 이혼을 한다.

 프리다 칼로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끊임없이 고통을 받으면서 그림을 그렸다.

삶의 고통의 순간을 드러내기 위해 자신의 내면세계의 상징적인 특징으로 자화상을 화폭에 담아냈다.

<상처 입은 사슴>은 그녀의 고통을 표현한 상징적인 작품이었다.

대부분의 화가들이 그리는 자화상은 삶의 중요한 순간이나 격정적인 감정을 드러내기 위해 그린다.

그 대표적인 예가 그녀가 그린 <상처 입은 사슴>이었다.

숲 속에서 여러 개의 화살을 맞아 상처를 입은 수사슴이 피를 흘리면 아주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럴 때 출혈(피)이 갖는 의미는 초등학생도 다 아는 심각한 상황이다.


Frida Kahlo, The Wounded Deer  , 1946 /  사진출처 - 위키디피아


 그녀 <상처 입은 사슴>에서 울창한 나무들에 둘러싸여 그 속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포위당했다.

더구나 화살을 맞아 피를 흘리며 슬퍼하는 사슴의 아픔을 표현한다.

적막함이 가득한 숲 속에서 무심히 정면을 응시하는 사슴의 눈빛이 맑아 보인다.

사슴의 눈만큼은 매우 투명하고 강한 빛을 내뿜는다.

붉은 피를 흘리고 있는 사슴의 얼굴은 바로 프리다 칼로의 얼굴이었다.

숱한 상처로 고통받았던 그녀의 삶을 사슴의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자신을 사슴으로 표현함으로써 자기가 모든 생명체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게 한다.

초현실적인 표현방식으로 삶에서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은 현상을 '자화상'으로 표현했다.

모든 자연물의 묘사가 적대적이었다.

그림 속에는 폭풍우와 번개가 치지만 저 멀리 빛나는 하늘도 보이고, 그 하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가 아닐까?

그러나 사슴은 결코 그곳까지 이르지 못할 것이다.

사슴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들은 생명이 없는 죽은 나무이거나 부러져 있기 때문이다.

그림의 왼쪽 아래에 쓰여 있는 ‘카르마’라는 글씨가 쓰여있는데 ‘숙명’이라는 뜻이었다.


상처 입은 식탁, 1940 /사진 출처 - 위키디피아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프리다 칼로의 그림 중에 <상처 입은 식탁>이 있다.

식탁 중앙에 예수님이 앉아 있는 자리에 프리다 칼로가 앉아있다.

유다에게 배신당한 예수님처럼 자신도 디에고 리베라에게 배신당했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자신의 옆에는 링거를 걸고 는 그녀 자신의 눈썹과 같은 진한 눈썹을 한 기괴한 모습의 인물을 그려놓았다.

예수님과 유다의 자리에 자기 자신을 그려놓았던 것이다.

예수님처럼 가까운 사람을 위해 헌신하였지만 그에게 배신당했음이다.


 프리다 칼로는 육체적인 심각한 고통 속에서 평생 후유증을 앓지만 자신의 꿈을 펼치면서 살아갔다.

소아마비로 왼쪽 다리는 11곳을 골절당했으며, 오른발과 왼쪽 어깨는 탈골되어 일생 동안 척추수술을 일곱 번을 하였다.

총 서른두 번의 수술과 오른쪽 발가락을 절단, 무릎 아래 절단, 세 번의 유산이 프리다 칼로의 병원 총기록이었다.

화가는 작품을 통해서 화가의 느낌과 생각을 자기 자신의 삶을 투영시켜 나타낸다고 한다.

사슴의 삶은 아름답고 평화롭게 살고자 했지만 현실에서 살아가는 일 자체가 그녀에게는 고통이었고, 몸에 박힌 화살이며, 부러진 나뭇가지였던 것이다.

화살이 몸에 박힐 때마다 다가오는 끔찍한 고통으로 "나는 죽기 직전이야"라고 외치며,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의 모습을 그렸던 것이다.

그녀의 마지막 일기장에는 '행복한 퇴장이 되기 바란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적는다.

그녀는 죽는 순간까지 그림을 그렸다.

오로지 살기 위해서.......


프리다 칼로, 떠 있는 침대, 1932 / 사진출처 - 위키디피아


 그녀의 그림들은 서로 관계를 맺고 연결되어 있는 '윤회사상'을 떠올리게 다.

프리다 칼로는 "내가 그리는 것은 꿈도 악몽도 아니다. 나는 다만 내 현실을 그린다."라고 했다.

상처 입은 사슴이 향나무에 몸을 비비는 것을 보고 인디언들은 이 나무에 항균 성분이 있음을 알게 된다.

멕시코인들은 사람이 한 명  태어날 때마다 동물도 한 마리가 태어나고, 사람의 운명은 탄생일을 상징하는 동물의 운명과 연결되어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프리다 칼로의 몸은 그 어떤 것도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멕시코 원주민들에게는 생명에 대한 일상적 접근 방식이었다고 한

프리다 칼로의 작품의 명제는 바로 '초현실주의''멕시코'였다.

그녀는 사후에 멕시코에서 그녀의 모든 작품을 국보로 지정하였다.

그녀는 멕시코의 전통에 근간을 둔 초현실주의 화가로서 그림의 소재는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비사실적인 초현실주의 작품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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