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의 수용만이 해법의 길인가?
지금 한국 정치에서 나타나는 양극화 현상을 단순한 정당 경쟁으로만 보면 핵심을 놓치기 쉽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한국의 주요 정치 지지 집단은 점점 정책을 둘러싼 경쟁 집단이 아니라 일종의 ‘신념 공동체’, 곧 종교 집단에 가까운 형태로 변하고 있다. 한마디로 정치적 부족주의(Political Tribalism)와 확증 편향 증후군이 전염병 수준으로 창궐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우연이 아니라, 현대 한국 사회의 구조와 인간 심리가 결합해 만들어낸 결과다.
먼저 현재의 갈등 구조를 보면, 특정 정치인에 대한 평가가 사실 검증의 문제가 아니라 도덕적·정체성적 판단으로 이동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한쪽에서는 이재명을 개혁의 상징, 나아가 나라를 구할 메시아로 보고, 반대편에서는 그를 매우 위험한 인물로 규정한다. 또한 윤석열에 대해서도 정반대의 평가가 존재한다. 이미 법의 심판을 받았지만 나라를 구하려다 실패하여 고난을 당하는 순교자로 보는 것이다. 문제는 이 상반된 평가가 단순한 의견 차이를 넘어, 선과 악을 가르는 종교적 서사 구조로 굳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단계에 들어서면 정치적 토론은 사실상 기능을 잃는다. 상대는 더 이상 틀린 사람이 아니라 “잘못된 존재”로, 곧 존재하지 말아야 할 사람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 현상은 전통 종교의 구조와 매우 유사하게 작동한다. 종교는 본래 세계를 해석하고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 전통 종교의 영향력이 약해지면서, 그 빈자리를 정치적 신념이 채우는 경향이 나타난다. 정치가 종교처럼 작동하기 시작하면 세 가지 특징이 강화된다. 무엇보다도 먼저 각 진영의 지도자가 상징화된다. 지도자는 단순한 정치인이 아니라 집단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비판이 배신으로 간주된다. 내부 비판은 합리적 토론이 아니라 공동체를 해치는 행위로 해석된다. 끝으로 객관적 사실보다 이념적 서사가 우선한다. 그래서 자신이 속한 집단에 유리한 정보만 받아들이고, 불리한 정보는 무시하거나 음모로 해석한다.
이러한 한국 사회의 구조는 역사적으로 낯선 것이 아니다. 유럽에서 벌어진 30년 전쟁이나 백년전쟁은 표면적으로는 종교나 왕위 계승 문제였지만, 실제로는 정체성과 권력, 그리고 신념이 결합된 장기적 갈등이었다. 오늘날 한국의 상황이 그 정도의 물리적 충돌로 이어진 것은 아니지만, 구조적 유사성은 분명히 존재한다. 곧 “누가 더 나은 정책을 제시하는가?”가 아니라 “누가 우리 편인가?”가 중심 기준이 되는 순간, 갈등은 타협 불가능한 형태로 고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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