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의 역사는 K리그에 있어 특별한 유산이다
왕조; 같은 왕가에 속하는 통치자의 계열, 또는 그 왕가가 다스리는 시대. 국어사전은 왕조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왕조’라는 낱말은 스포츠에 있어서도 꽤나 빈번히 사용되는 메타포(metaphor)인데, 특히 한국 프로야구에서 그렇다. 다른 나라 다른 리그까지는 잘 모르겠고, 확실히 국내의 다른 종목에서는 왕조라는 표현이 그리 흔하게 통용되지는 않는 것 같다. 하지만 한국프로축구 K리그에서도 역사를 되짚어보면 몇 차례 굵직굵직한 족적을 남겨온 특별한 클럽들이 있다. 왕조로 칭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게 무리하게 느껴지지 않는 누구나 다 인정할 수 있는 그런 팀이 분명히 몇몇 있다.
찬란한 과거 속에서 위대한 유산을 남겨온 클럽들 중 성남을 빼놓을 수는 없다. 물론 그들의 모든 역사가 성남이라는 터 위에서 쓰인 것은 아니지만, 그들과 한 뿌리로 이어진 이들이 쟁취한 것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성남은 분명 굳건한 왕조를 유지했던 특별한 팀이었다. K리그의 35년 역사 속에서 3시즌 연속 우승을 두 번이나 달성할 정도로 엄청난 전력을 보유했다. 그러니까 절대적인 힘을 가진 왕조가 1차(1993년~1995년), 2차(2001년~2003년)에 걸쳐 두 차례나 있었던 거다. 거기에 2006년에 한 번 더 정상에 올라 총 7회의 우승을 달성한 성남. 칠성사이다나 북두칠성을 통해 볼 수 있던 일곱 개의 별이 성남 저지의 가슴팍에도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사, 세상사에 영원한 것이 없듯이 축구사에도 변치 않는 건 없는 법. 찬란한 왕조를 구축했던 성남이 클래식을 떠나 챌린지에 몸담게 된 것이다. 이미 부산 아이파크가 과거 로얄즈 시절의 명성에 먹칠을 하며 2부리그로 곤두박질치는 치욕을 겪은 바 있으나, 성남까지 뒤이어 챌린지행 열차를 탈 것이라고 생각한 이들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챌린지로 강등되기는 하더라도 잠시 잠깐 들러 대충대충 구경이나 하다 금방 올라올 거라고 예상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을 텐데, 현 시점에서 클래식 복귀 여부는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몇 번이나 진검승부를 견뎌내야 클래식 재입성이 가능하다.
성남의 홈 탄천종합운동장의 한쪽 스탠드에는 그들이 눈부신 과거 속에서 성취한 전리품들이 검은 통천에 아로새겨져 있다. K리그 트로피 7개, FA컵 트로피 3개, 아시아챔피언스리그 트로피 2개…그렇다. 그들은 K리그를 넘어 아시아를 뒤흔들었고, 클럽월드컵에서도 나름의 성과를 거둔 팀이었던 것이다. 반도에서 대륙으로 그리고 세계로 족적을 넓히며 이름을 떨쳤던 성남이지만, 지금은 그때의 영광을 찾아보기 어렵다.
옛 성남과 오늘의 성남을 이어주는 것은 이렇게 대형 통천으로 추억해볼 수 있는 우승컵들과 관중석 스탠드의 노란 좌석(과거 성남을 상징했던 색상)들뿐이다. 그밖에 탄천종합운동장의 어떤 것에서도 성남의 연결고리로 활용할 만한 것이 쉬이 보이지 않는다. 아시아의 하늘을 호령하던 유니콘 천마는 탄천운동장의 조명탑을 기웃거리는 까치 신세가 되어버렸다. 서포터스와 함께 하는 거대 까치도 크게 위압적이진 않다. 하지만 까치에게 무슨 잘못이 있으랴… 약해진 팀이 문제인 거지.
흔히 노란색은 유약한 이미지로 쓰이고, 검은색은 강한 느낌으로 다가오나 성남의 팀컬러는 그와 반대로 작용하고 있다. 성남은 주황색, 노란색이 팀의 메인 컬러였을 때 가장 강하고 두려운 존재였으며, 올블랙 유니폼을 입은 지금은 상대에게 남다른 다크포스를 선사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성남이 과거의 왕조를 계승하고 추억하는 의미로 노란색을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잘못 사용하면 조금은 촌스럽게 보일 수 있지만, 사실 노란색 자체가 예쁘지 않은 컬러는 아니지 않은가? 브라질의 노란색, 호주의 노란색, 도르트문트의 노란색, 가시와 레이솔의 노란색을 어느 누가 촌스럽다고 우스이 여길까? 과거의 노란색과 현재의 검은색을 살려 옐로우-블랙 조합을 유니폼에 담아보면 어떨까 생각이 든다. 그러면 카카오톡을 스폰서나 파트너로 모시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가벼운 상상을 해본다.
자주는 아니지만, 일본에 여행을 갈 때면 J리그 경기장을 찾곤 하는데 나는 성남의 탄천 종합운동장에서 J리그의 중소 규모 클럽 경기장과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요코하마나 사이타마 같은 대형 경기장이 아니라 가와사키나 교토 같은 곳의 경기장이 떠오른다. 규모가 작고, 편의시설이 부족한 편이나 탄천종합운동장도 그에 못지 않은 좋은 축구장이다.
성남 그리고 분당 혹은 판교에 거주하는 축구팬들에게는 그다지 흡족스러운 스타디움이 아닐지 몰라도 결코 나쁘다고 할 수는 없는 준수한 경기장이다. 축구전용구장은 아니지만, 시야도 나쁘지 않고, 접근성도 괜찮고 경기장 안팎에 나름대로 멋스러운 구석들이 많은 곳이다. 성남이라는 도시가 가진 인구와 재정 규모, 시민들의 구매력을 생각하면 조금 아쉬운 느낌이 들긴 하지만, 1만 6천여 좌석을 연이어 매진시키는 날이 오기 전까지는 충분히 성남FC의 홈구장 역할을 해낼 수 있는 좋은 스타디움이다.
흰색과 검은색이 조화를 이루는 경기장 외관도 멋지지만, 특히 탄천을 건너기 전 멀리서 보이는 경기장 풍경은 더욱 그렇다. 축구장은 모름지기 치열한 사투가 벌어지는 전장과 다를 바 없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평화롭고 아름답다. 연인과 함께 경기장을 찾는 커플이 있다면 경기 전후에 이곳을 거닐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면 좋을 듯하다. 그날의 축구가 흥미로울지 아닐지는 누구도 단언할 수 없지만, 경기장을 나와 바라본 탄천 경기장 주변의 모습은 충분히 아름다울 것이다. 그것만큼은 단언할 수 있다.
글·사진 by 김다니엘 (스포츠투어리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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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천종합운동장
별칭: 탄천요새 / 탄필드
개장: 2002년 4월
수용인원: 약 16,200명
주소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탄천로 215 (야탑동)
교통 : 지하철 분당선 야탑역에서 도보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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