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chard Windbichler(울산현대)
사람은 누구나 다 외롭다. 하물며 바다 건너 낯선 나라에 온 외인(外人)들은 조금 더 외롭지 않을까? 비단 푸른 잔디 위에서는 강인한 전사처럼 보이는 축구선수들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엇비슷한 생김새의 사람들 사이에서 어딜 가든 눈에 띄기 마련이고, 경험해보지 못한 문화와 환경에서는 작은 안락함도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이질적이기까지 한 음식과 언어, 사람들의 입으로 들어오는 것도, 입에서 나가는 것도 생경하기 짝이 없다.
그런 곳에서 축구라는 매개체를 통해 사람들의 매력을 사고 인정받는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일까? 꿈을 찾아 왔든, 생활을 위해 왔든, 한국의 K리그를 통해 그들과 우리는 하나로 연결되고 있다. 제법 특별한 인연이다. 그들에게서 한국에서의 삶과 꿈, 그리고 그 사이에 놓여 있는 축구에 대해 들어본다. 축구장 밖에서는 분명한 외국인이지만, K리그 경기가 펼쳐지는 그라운드 위에서 국적이라는 아이덴티티는 90분간 사라진다. K리그라는 세계, 이른바, ‘K리그 문디알(Mundial)’을 이루고 있는 한 사람의 ‘K리거’일 뿐.
Q 안녕하세요? Kleague.com입니다. 울산에서는 이제 제법 많이 알려진 유명인사이지만, 아직 리차드 선수를 잘 모르는 한국 축구팬들에게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올해부터 K리그의 울산 현대에서 뛰고 있는 리차드 빈트비흘러입니다. 올해 스물여섯 살이 됐고, 미혼이고 아직 아이도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보통 이렇게 자기소개를 하는 게 맞죠?(웃음) 저는 유럽의 오스트리아에서 왔습니다. 듣기로는 제가 K리그 역사상 최초의 오스트리아 선수라고 하더군요. 더 많은 오스트리아 선수들에게 기회가 이어질 수 있도록 좀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에 오기 전까지는 오스트리아에서만 살았고, 선수생활도 수도 빈(비엔나)에서만 했어요. 해외 리그를 경험하는 것도 아시아에 와본 것도 생전 처음이라 모르는 게 많았습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아 이제는 한국 생활에 거의 다 적응이 됐고, 울산이라는 도시도 집처럼 편안하게 느끼고 있어요. 그런 기분, 심리 상태가 경기력으로도 나타나는 것 같아요. 시즌 초반보다는 후반으로 갈수록 더 나은 퍼포먼스가 나오는 듯합니다. 축구선수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여러모로 성장하는 한 해를 보내고 있어요.
Q K리그 등록명은 리차드인데, 오스트리아에서도 같은 발음으로 불리나요? 빈트비흘러 같은 성을 등록명으로 했어도 독특하고 인상적이었을 것 같은데, 리차드라는 이름으로 등록한 이유가 있나요?
A 기본적으로 오스트리아는 독일어를 써요. 그래서 제 이름을 영어식으로 리차드라고 발음하는 사람은 없죠. 리하르트, 리하트, 리핫트 같은 발음이에요. 그런데 등록명을 그렇게 했으면 한국인들이 발음하기도 어려웠을 거고, 축구팬들에게 다가가기 조금 불편한 이름이지 않을까 싶어서 그냥 편하게 ‘리차드’라고 등록했어요. 구단도 리차드라는 이름을 권해줬고, 영어권 국가에서는 다들 그렇게 부르니 어색한 건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 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플레이로 인정을 받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Q 오스트리아에서 청소년 시절 연령별 대표를 두루 거쳤지만, 아직 성인 대표팀 데뷔는 못하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아시아의 먼 나라로 이적을 결정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A 물론 쉬운 결정은 아니었죠. 전 1년 전만 해도 아시아 그리고 한국이라는 나라에 와서 축구를 하고 있을 거라는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거든요. 저 역시 유럽의 많은 선수들처럼 잉글랜드, 독일 같은 빅리그에 진출하겠다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링크가 있을 때마다 이상하게 부상이 발목을 잡더라고요. 특히 한국에 오기 전까지는 거의 6개월 정도 경기 출전을 못할 정도로 몸상태가 좋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제 기량을 믿어주고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준 울산 구단이 고마웠습니다.
저에게는 저 스스로를 냉정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평가하고 판단하는 장점이 있는 것 같아요. 커리어에 있어서 더 큰 리그, 더 큰 클럽을 꿈꾸는 것은 다소 한계가 있다고 봤어요. 26세라는 나이가 유럽에서는 그리 어린 나이가 아니기 때문이죠. 하지만 꾸준히 경기에 출장하면서 몸상태만 끌어올리면 어디서든 좋은 결과를 내고, 사람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정도는 모험이라고도 생각했지만, 이 기회를 감사히 받아들이고 도전해보자고 다짐했습니다. 나에 대한 선입견이 없는 리그, 구단에 가서 오로지 실력만으로 평가받겠다는 의지가 있었어요.
Q 그럼 K리그 울산으로 이적하면서 마음 속에 품은 가장 큰 목표는 무엇이었어요?
A 이 변화 자체가 성장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변화를 통해 축구선수로서, 인간으로서 성장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어요. 미국, 캐나다 등 MLS 클럽에서 뛰는 것도 고려해봤지만, 유럽과 북미는 다른 점보다는 비슷한 점이 많을 것 같았습니다. 여행 경험을 통해 느낀 바도 그렇고요. 그런데 완전히 다른 문화권에서 새로운 환경, 언어, 음식, 사람들을 접하면서 분명히 배우는 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제가 결혼을 했거나 아이들이 있는 상황이라면 한국행을 택하기 쉽지 않았을 거예요. 가족의 선택과 의사도 중요하니까요. 하지만 저는 저라는 사람의 성장만을 생각하며 이 결정을 내렸습니다. 물론 그 생각의 중심에는 축구가 있었죠. 축구선수로 더 실력을 키우고, 더 많은 이들의 인정을 받는 것을 정말 간절하게 열망했습니다.
Q 얘기를 듣다 보니 리차드 선수는 선수생활을 완전히 끝마친 후에 결혼을 할 것 같네요.
A 꼭 그렇게 할 거라는 계획이 있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그럴 것 같기도 해요. 물론 당장 내일 아침에 운명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은퇴를 하고 결혼하는 게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실 인생에 있어 그렇게 먼 미래를 내다보며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는 타입은 아니에요. 그때 그때 순간의 감정에 충실하며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 좋거든요. 그런데 어쨌든 지금은 축구가 첫 번째인 삶을 살고 있고, 이런 인생에 만족합니다. 큰 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어요.
Q K리그에는 브라질 그리고 동유럽 출신 선수들이 많아요. 그들은 대개 먼저 K리그를 경험한 동료들로부터 K리그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이적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리차드 선수는 K리그 최초의 오스트리아 선수라서 상황이 많이 달랐을 것 같아요. 어떠셨나요?
A 네, 맞아요. K리그행에 대해 조언을 해줄 만한 사람이 주변에 많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제가 일단 뭔가 결정을 내리면 주위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하는 편은 아니어서 그냥 마음 편히 구글만 들여다봤죠. 한국, K리그, 울산이라는 클럽, 울산이라는 도시… 다 마음에 들고 좋았어요. 특히 바다가 있다는 것이 끌리더라고요. 알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오스트리아는 바다가 없거든요…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헝가리 등 여러 나라들에 에워싸여 있어 바다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 울산에서는 5~10분 거리에서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게 정말 좋아요.
Q 그럼 울산 이적 후에는 이런저런 정보나 노하우를 공유해줄 사람을 만났습니까?
A 네, 다행히 정말 다행스럽게도 좋은 친구이자 형 같은 팀메이트를 만났습니다. 지금은 FC서울로 이적한 코바인데요. 제가 한국에, 울산에 적응할 수 있도록 정말 많이 도와줬어요. 외국인들이 자주 찾는 음식점, 카페는 물론 생활에 필요한 이모저모, 울산의 핫플레이스, 한국 사람들과의 관계 등등 정말 많은 부분에서 도움을 줬습니다. 한국에 오기 전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에서 상대팀으로 함께 경기한 적이 있어서 어느 정도 친분이 있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가까워질 줄은 몰랐어요. 특히 시즌 초에 한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우울했을 때 코바가 정말 큰 위안이 됐습니다. 독일어로 대화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좋았고, 늘 유쾌하고 밝은 친구여서 더더욱 힘이 되었어요. 서울로 이적하는 바람에 5~6개월 정도밖에 함께 생활하지 못해 슬펐지만, 지금도 서로 자주 연락하고 잘 지냅니다. 축구선수들은 이적이라는 이별에 익숙한 편이거든요.
Q 오스트리아와 K리그의 수준은 비슷한 편인가요? 어떤 차이가 있나요?
A 리그 시스템이나 규모는 전반적으로 비슷한 편이에요. 수준도 거의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어느 한 쪽이 더 우수하다거나 떨어진다고 얘기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정말 비슷한 레벨처럼 느껴지거든요. 그래서인지 황희찬, 이진현 같은 한국 선수가 현재 오스트리아에서 활약하고 있고, 수원을 이끌고 있는 서정원 감독이 과거에 오스트리아 리그에서 맹활약했던 것도 잘 알고 있어요. 제 기억에 그는 당시 리그에서 가장 인기 많은 선수 중 한 명이었어요.
리그의 플레이 스타일은 많이 달라요.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는 전술적인 축구를 하는 팀이 많지만, K리그는 선수 개개인의 피지컬이 경기에 더 많은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아, 한 가지 재미있는 차이가 있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비디오 분석을 할 때 대부분 자신들의 영상을 봐요. 우리가 잘 한 점, 잘못한 점을 돌아보는 거죠. 그런데 한국은 상대팀에 대한 비디오를 훨씬 더 많이 보더라고요. 그게 정말 신기했어요.
Q 국내에 가장 많이 알려진 오스트리아 선수는 아무래도 다비드 알라바, 마르코 아르나우토비치나 케빈 비머 선수일 텐데요. 다들 리차드 선수와 비슷한 연령대라 어렸을 때 함께 뛰거나 상대로 경기한 적이 있을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같은 게 있나요?
A 네, 다들 한두 번씩 경기해본 적은 있어요. 친구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다 잘 알죠. 청소년 대표팀에서 함께 생활을 하기도 했으니까요. 하루는 경기가 다 끝나고 밤에 케빈 비머랑 카지노에 놀라갔던 일이 있어요. 그때 케빈은 5달러 정도 걸어서 5달러를 더 땄는데, 10달러쯤 되는 돈을 손에 쥐고는 세상을 다 얻은 사람처럼 기뻐했던 게 생각나요. 그런데 몇 년 후에는 독일 분데스리가, 영국 프리미어리그에 뛰면서 수백만 달러의 연봉을 버는 선수가 됐죠. 인생은 누구도 모르는 것이지만, “나 5달러 땄다” 하면서 해맑게 웃던 케빈의 표정을 떠올리면 미소가 지어져요.
Q 수비수와 수비형 미드필더를 주로 소화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렸을 때부터 수비적인 포지션을 선호했나요?
A 선수 생활을 통틀어 80% 정도는 수비수로만 활동했던 것 같아요. 그것도 중앙에서만요. 아주 어렸을 때는 공격수를 맡은 적도 있었지만, 성장하면서는 수비수로만 뛰었습니다. 수비적인 역할을 선호했다기보다 공격수보다는 제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포지션이라고 판단했어요. 유럽에서는 특히 오스트리아에서는 다들 키가 크고 신체조건이 좋은 공격수를 원하거든요. 제 키(183cm)가 작은 건 아니지만, 공격수로 두각을 나타내기에는 좀 모자랐던 것 같아요. 제 신체 사이즈는 수비수에 좀 더 잘 맞고, 유럽보다는 아시아와 한국에서 좀 더 강점으로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Q 40번이라는 등번호는 축구에서 그리 인기 있는 숫자는 아닌데, 오래 전부터 주로 40번을 달았어요? 등번호에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A 그런 건 아니에요. 제가 40번을 택한 이유는 아무도 이 번호를 달고 있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어요. 제가 합류하기 전부터 울산에는 이미 30여 명의 선수가 스쿼드에 있었기 때문에 낮은 숫자의 번호들은 다들 주인이 있었고, 다른 선수와 한 백넘버를 두고 괜한 소모전을 벌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냥 40번을 원한다고 얘기해서 달았어요. 그런데 올 시즌 이 등번호를 달고 좋은 성과를 냈으니 내년에 더 좋은 번호가 비더라도 번호를 바꾸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Q 오스트리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선수들은 모두 듀라셀 토끼처럼 플레이한다고 평한 적이 있어요. 어떤 면에서 그렇게 느꼈어요?
A 그 표현을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는데, 절대 부정적인 뉘앙스로 한 얘기는 아니었습니다. 한국 선수들은 모두 에너지가 넘쳐요. 그라운드 위에 어떤 선수도 잠시 쉬어가는 법이 없어요. 드리블로 한 선수를 제쳐도 그 선수가 다시 나타나고, 월패스로 선수를 따돌려도 벗겨낸 그 선수가 다시 옆에 따라붙습니다.
사실 유럽 선수들은 그렇게까지 많이 뛰지 않거든요. 특히 수비수들은 자기의 포지션에서 벗어나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면서 틈틈이 쉬기도 하고요. 그런데 K리그에서는 모든 선수가 볼을 뒤쫓고, 그러면서도 사람을 놓치지 않아요. 그런 모습이 수비적으로, 소극적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그만큼 절박하고 절실하게 승부에 임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선수들은 그렇게 한 경기를 마치고도, 또 다시 한두 경기를 더 치를 수 있을 것처럼 쌩쌩해요. 김치를 먹기 때문일까요?
Q K리그에서 가장 막기 어려운 공격수는 누구인가요? 상대하고 싶지 않은 선수가 있다면요?
A 일단 질문에 답하자면 수원의 26번(염기훈) 선수인데, 상대하고 싶지 않은 건 아니에요. 저는 저를 상대로 강하게 도전해오면서 위기로 몰아세우는 선수들과 경기하는 걸 좋아합니다. 그게 더 재미있고, 집중력을 유지하는 것에도 도움이 되거든요. 염기훈 선수는 K리그의 어느 누구보다 축구 지능이 높은 윙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수비진의 라인 컨트롤을 무너뜨리려는 예리한 킥을 몇 번이나 시도하죠. 언젠가 한 번쯤 같은 팀에서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흥미로운 플레이어예요. 과거 울산에서 뛰었다는 얘기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어요.
Q K리그의 발전을 위해 외국인 선수로서, 축구팬으로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지 궁금해요.
A 이런 얘기를 싫어하고 불편해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한국 축구에 애정이 있는 사람으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기는 합니다. K리그는 경기장의 분위기가 너무 경직되어 있고, 어린 선수들과 나이 든 선수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는 것 같아요. 우리 팀의 어린 수비수가 상대팀의 베테랑 공격수에게 강한 몸싸움이나 태클을 걸면, 그라운드에 이상한 분위기가 생겨요. 물론 반대의 경우도 비슷하고요.
저는 한국 사람들이 예의를 중시하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그런 문화는 매우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축구 경기에 있어서 그런 모습은 진정한 리스펙트가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런 식이라면 어린 선수들은 늘 벤치를 지켜야 하고, 선배 선수들에게 패스를 해야 하고, 볼을 빼앗겨야 하고, 골을 먹어야 하나요? 그라운드 위에서는 정정당당하게 실력만으로 승부를 벌이는 것이 상대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존중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Q 페이스북에 한글로 번역한 포스팅을 자주 올리는 게 인상적이에요. 한국어도 이제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되었나요?
A 읽는 건 이제 거의 다 되는 것 같아요. 발음도 나아지고 있는 것 같고요. 다만 뜻을 모를 뿐이죠. (웃음) SNS에 올리는 글들은 박용수 통역관이 많이 도와주고 있지만, 어느 정도는 제가 쓰기도 해요. 제일 좋아하는 한국어 표현은 ‘걱정하지마’입니다. 저는 이 말이 제일 좋아요. 의미도 좋고, 어감도 좋아요. 울산 팬 분들에게도 걱정하지 말라고 얘기해주고 싶네요.
Q 이제 시즌이 거의 다 끝나가는데, 한국에서 보낸 1년을 정리해본다면요?
A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지금까지는 거의 모든 부분이 완벽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구단이 저에 기대한 바를 증명해낼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고, 2017 K리그 클래식 베스트 11 후보에도 오른 사실이 뿌듯하고 자랑스럽습니다. 그런데 FA컵 우승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의 만족감도 다 날아가버릴 것 같아요. 지금은 남은 FA컵 결승을 잘 치러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것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축구선수로서 우수한 개인 성적을 남기는 것보다 팀의 우승에 기여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고 의미 있는 과제입니다.
Q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구단 관계자들 얘기로는 울산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YOLO 스타일의 외국인 선수라고 하던데, 시즌 잘 마치고 오스트리아로 돌아가기 전에 한국 여행도 좀 즐기셨으면 좋겠네요.
A 감사합니다. 사실 제가 여행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새로운 문화와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아하고요. 그렇지만 저는 축구를 하기 위해 한국에 왔어요. 한국이 저를 부른 이유가 ‘축구’였고, 제가 한국에 온 이유도 ‘축구’였으니 한국에서는 가능한 축구만을 생각하고 싶습니다. 저는 책임감이 아주 강한 사람이에요. 지금 제가 가장 큰 책임감을 느끼는 부분은 축구 그리고 제가 속한 클럽 울산입니다. 그게 제가 선택한 삶이고, 저는 그 삶을 살아가는 것이 좋아요. 여행 속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축구가 더 중요합니다. 저는 제가 YOLO족이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주위에서 그렇게 본다면, 지금은 ‘축구 YOLO’가 맞을 것 같네요.
INTERVIEW & PHOTO BY SPORTS TOURISM EDITOR DANIEL KIM FOR KLEAGU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