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사진 ⓒ othcomma
요즘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많이 듣는다. 적게는 하루에 두 시간, 많으면 다섯 시간씩, 침대에 누워서, 달리면서 듣는다. 이어폰을 꽂고 우레탄 위를 내달릴 때 음악을 듣는 게 내심 불편했다. 다리 뻗기도 힘든데 음악을 받아들이기 위해 뉴런 세포를 부리는 게 피곤하기도 하고 뭣보다 반복되는 플레이리스트가 지겨웠다. 길게, 오래 달리면 정신을 몸과 두 다리, 흔들리는 팔과 풀리는 주먹에 붙들어 놓아야 했다. 그런 모든 면에서 팟캐스트는 편했다. 중년의 두 남자가 떠드는 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되니까.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음악을 듣는 것보다 확실히 수월했다.
『이동진의 빨간책방』은 2012년부터 2019년까지 7년간, 수백 편의 녹음을 진행했는데 나는 그중 내가 아는 책, 읽었던 책이 주제거나 좋아하는 작가가 출연한 녹음본만 골라 들었다. 김애란 작가님이 본인의 단편집 『비행운』 편에 직접 출연한 회차를 듣는데 기분이 묘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지만 목소리를 듣는 건 처음이었다. 내가 멋대로 상상해 온 그 사람의 태도나 몸짓, 성격, 농담, 웃음, 표정 같은 게 전부 부서지는 듯했다. 김애란이라면, 1년 365일 타인의 고통에 끙끙 앓으며 시름시름 지낼 것만 같았는데.
나중에 최은영, 김금희 작가 편을 들었을 때도 그랬다. 최은영 작가님은 아주 얇은 살얼음판 같은 사람일 줄 알았는데, 녹음을 들어보면 맹랑한 데가 있었다. 김금희 작가님은 영화광인 줄 알았더니 어렸을 때만 많이 보았다고 한다. 정말이지 경거가 망동했던 셈이다.*
2013년의 팟캐스트를 들으며 생각한다. 2013년,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던 바로 같은 시간 다른 공간에서 누군가는 이걸 녹음하고 있었구나. 일단 생각이 거기에 이르면 기분은 대책 없이 좋아진다. 내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시간에 대한 기대가 차오른다.
그런 기대에 관한 이야기라면 다른 것도 많다. 중학생 때 친했던 민성이라는 친구네 집에 놀러 갔을 때다. 그날 민성이 방의 벽에 붙은 오아시스 포스터는 단번에 나를 사로잡았다. 이국의 팝 밴드를 좋아하는 14살 아이는 흔치 않았으니까. 싸움도 못 하고 유별나지도 않은 내가 오아시스를 사랑하면 한여름에도 눈이 푹푹 나릴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나를 보고 민성이가 틀어줬던 게 ‘돈 룩 빽 인 앵거’다. 손사래 치며, 노래가 참 별로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뒤로 오아시스를 다시 찾아 들은 건 작년이니까 대충 십 년이 흘렀다. 내가 그때, 민성이네 방에 갔었던 날부터 오아시스를 들었다면 나는 지금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지금은 정말 좋아하는 오아시스의 『Don’t Look Back in Anger』를 열네 살부터 듣던 민성이는 지금 어떤 아이가 되었을까. 그 노래를 라디오로 들었을 젊은 부모님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내가 어릴 적 김영하의 『퀴즈쇼』에 나오는 하이텔 영퀴방에 들어갔더라면(어차피 없었겠지만), 은희경이나 하루키의 소설을 아주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그 모든 시간들이 궁금해진다.
내가 메여 있던 모든 과거와 관습의 조각을 바꾸어보고 싶다. 그것은 퍼즐과 도미노 중 어느 쪽일까? 두 개의 퍼즐 조각을 맞바꾼다고 풍경이 크게 변하지는 않는다. 도미노 조각은 조금만 잘못 손보아도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내가 믿는 나비효과 인생론은 도미노에 더 가깝다. 넷플릭스 시리즈 『러브, 데스 + 로봇』의 <Alternate Histories> 편에 나오는 것처럼, 소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의 도서관처럼, 내 과거의 기회비용을 들여다볼 기회가 온다면 나는 과감히 보는 쪽을 선택하겠다.
* 김금희 소설 『경애의 마음』의 등장인물 ‘일영’의 말투. “유비가 무환이네, 풍전이 등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