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대학 선배들의 발표를 볼 일이 있었다. 두 명의 숫기 없는 형이 나와 쭈뼛거리다 끝낸 발표였다. 본과 내 프로젝트에서 영상팀장을 하겠다고 나온 형들이었다. 어영부영하던 도중 강의실의 스크린에 ‘1,000’이라는 숫자가 크게 떴다. 제가 살면서 영화를 본 시간입니다. 키가 큰 형이 말했다. 일천 시간. 나는 그 숫자에 압도당해 그 뒤의 발표는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영화를 많이 본다는 건 어떤 일일까. 일천 시간의 영화는 내 삶을 조금 다르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기술 비평’이라는 미개척 분야를 일구고 계신 교수님의 영화 강의 첫날. 문학과에서 열리는 영화 수업이라니, 게다가 내가 3년 동안 졸졸 따라다닌 교수님의 강의라니. 들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교수님은 익숙한 솜씨로 경직된 강의실의 분위기를 주무르고, 한 학기 동안의 여정에 관해 설명한다. 우리는 이번 학기가 끝날 때까지 휴대폰 카메라만으로 단편 영화 1편을 만들어야 한다. 기교는 넣지 않아도 된다. 본인이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든다. 무협이든 로맨스든 스릴러든 생각을 현실화하면 된다. 그 영화는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들어 본 영화가 되겠지.
교수님은 자기소개를 대신해 자리에서 일어나 한 명씩 가장 좋아하는 영화의 제목과 그 이유를 말하라고 지시한다. 내 차례는 꽤 뒤였어서 고민의 시간이 충분했다. 영화를 많이 본 거 같진 않은 학생이 마블 영화 이야기를 한다. 교수님은 끄덕인다. 영화를 정말 많이 본 듯한 다른 학생은, ‘존 말코비치 되기’ 이야기를 한다. 교수님은 맞장구를 치고, 그건 너의 컬트 영화야, 라고 말해준다. 내 차례가 되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뭘까? 얼마 전에 본 ‘셰이프 오브 워터’를 말했는데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판타지 장르에서만 구현할 수 있는 화법을 사용한 것이 인상적입니다. 어렵게 말을 뗐다. 교수님은, 그게 무슨 뜻이지, 더 자세히 설명해 봐, 라고 말한다. 나는 더 자세한 이야기는 할 수 없다. 그 교수님은 추궁하는 유형의 사람은 아니다. 질문을 말하는 목소리의 속도와 그 말투로 미루어 보아 내가 그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지 아닌지 헷갈리고, 내가 말한 이유가 얼마든지 더 깊어질 수 있는 사유임을 꿰뚫어 본 듯하다. 나는 자리에 앉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뭘까.
자기소개가 끝나고 교수님은 자신의 고등학생 때 이야기를 꺼낸다. 고등학생 교복을 입은 오영진 교수님은 교실 구석에서 두꺼운 영화 이론서를 펼쳐놓고, 수업하는 교사는 아랑곳 않고, 그저 영화 공부에 전념했다. 주말이면 충무로의 씨네마떼끄라는, 온종일 영화를 틀어놓고 영화광들이 영화 이야기를 하는 공간에 갔다. 촬영 현장에도 갔다. 고등학생 오영진은 학교 공부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지만 영화 이론서만큼은 뚫어지게 쳐다볼 줄 알았고, 서울 어느 대학의 극작과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는다. 연구자가 된 지금의 모습과는 간극이 있지만 왜 영화의 꿈을 그만두신 걸까, 상상하는 일은 즐겁다.
“그 시절의 영화는 지금의 영화와 다른 개념이었습니다.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영화가 아니었지요. ‘영화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강력한 믿음이 있었어요. 영화에 역동성이 있었고, 그것을 믿는 사람들이 주말마다 충무로에 모였어요.”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그렇게 믿었던 극작과 학생 오영진은 연구자가 되었다. 주말마다 충무로에 모이던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버스비로 영화를 보고 집까지 걸어가던 어린아이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런 걸 상상하는 일은 즐겁다. 강의실의 구석에 앉아서, 추억을 회상하는 교수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교수님은 두 번째 강의 날에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안개 속의 풍경’을 틀어주며 굉장한 영화다, 해석하려 하지 말고 그냥 느껴라, 고 했고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꾸벅꾸벅 졸았다. 군에 입대하기 위해 그 뒤로 영화 수업은 나가지 않게 되었고, 내 첫 영화는 여전히 만들어지지 않았다.
(*소설「경애의 마음」스포일러 포함)
5월이었다. 당시 나는 전역을 앞둔 말년병장이었고, 운이 좋게 5일짜리 훈련에서 빠지게 되었다. 부대가 모두 출동하는 훈련에서 빠지는 건 병장인 나에게도 처음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부대에 남은 병사들은 소속을 가리지 않고 같은 생활관에서 지내야 했다. 마찬가지로 잔류한 상관의 통제하에 두기 위해서다. 스무 명 남짓 한 잔류병의 식사를 위해 취사병도 몇 명 남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취사병을 도우러 식당에 갔다가, 침대에 누웠다. 그러다 점심을 짓고, 침대에 눕고, 저녁을 짓고, 침대에 눕는 생활이 5일 동안 계속되었다. 얘기 나눌 친구들이 모두 훈련에 가서 나는 책 읽기에 열중했다. 김금희 작가의 ‘경애의 마음’이라는 두꺼운 장편소설이었다.
공상수와 박경애. 반도미싱이라는 회사에서 팀장과 팀원으로 만난 둘은 같은 친구를 잃었다. 고등학생 때, 인천 호프집 화재 사건으로. 친구의 이름은 E다. 상수와 E는 같은 반 친구, E와 경애는 PC통신 ‘영화퀴즈방’에서 만나 서로에게 조심스레 다가가던 사이다. 경애는 E가 캠코더로 찍은 단편영화 속 상수의 뒷모습을 보았다. 상수는 E가 만나는 사람이 생겼음을 지레짐작했다. 그날은 영퀴방 사람들이 호프집에 모여 맥주를 마시는 날이었고, E는 경애에게 상수를 소개해주기로 했다. 상수가 도착하기 전에, 경애가 잠깐 건물에서 나간 사이, 건물은 불에 타고 E는 죽는다. 경애와 상수는 서로의 존재를 끝끝내 모른 채 E의 죽음을 애도한다.
E는 영화광이다. 데이빗 린치의 열렬한 팬이다.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 했다. 용돈을 모아서 산 캠코더로 영화를 찍던, 곧 개봉할 데이빗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애타게 기다리던, 영퀴방에서 밤을 새던 E는 ‘시네마 키드’였다.
나는 그 소설에 완전히 매료되어 이틀 만에 모두 읽었다. 시네마 키드. 영화가 세상을 바꿀 거라고 믿던 아이 중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연구자가 되었으며, 누군가는 소설을 썼다. 거대한 퍼즐이 맞추어지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나는 한동안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초여름, 나는 군에서 전역해 학교가 열리는 9월까지 울산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때 이 영화를 봤다.
영화에 대한 영화. 사람들이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영화는 무엇일까. 영화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영화는 무엇이 되었을까. 우리들의 영화는 어디에 있을까.
주인공 찬실(강말금 분)은 조감독으로 일하다 자신이 따르는 감독이 술자리에서 돌연사하여 일자리를 잃는다. 벌이가 끊긴 찬실은 그제서야 자신의 위치를 실감한다. 벌어놓은 돈도, 집도, 남자도 없다.
“아 망했다. 왜 그리 일만 하고 살았을꼬?”
여기까지가 찬실의 1막이다.
찬실은 월세를 낮추기 위해 달동네 하숙집으로 들어간다. 주인집 할머니(윤여정 분)는 정이 넘친다. 찬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친한 배우 소피(윤승아 분)의 가사 도우미로 일한다. 소피의 불어 선생님 김영(배유람 분)에게 반한 찬실은 착실히 관계를 이어 나간다. 그런 찬실의 주위로 자신이 장국영이라 우기는, 미친놈인지 귀신인지 분간할 수 없는 한 남자(김영미 분)가 배회한다.
장국영이라. 찬실은 장국영을 분명히 안다. 그건 어떤 상징성이다. 그건 어떤 각인이다. 우리 모두가 장국영을 봤다. 영화가 세상을 바꿀 줄 알았던 그 세상에서.
주인집 할머니는 찬실에게 죽은 딸의 방에 들어가도 좋다고 한다. 그곳에는 많은 짐이 있다. 필요한 게 있으면 갖다 쓰라고. 찬실은 카세트 테잎을 집는다. 오래된 라디오에 테잎을 돌리자, ‘정은임의 영화음악’이 흘러나온다. 테잎에선 정성일 씨와 정은임 씨의 대화가 흘러나온다. “‘베를린 천사의 시’가 떨림이었다면 ‘집시의 시간’은 눈물입니다.”
영화가 개봉한 2019년 봄, ‘찬실이는 복도 많지’가 상영되던 스크린 위에 그 모든 것들이 있었다. 영화를 연출한 감독 김초희가 자라며 보고 들은 것들. 우리 모두가 보고 들은 것들. 장국영의 흰색 메리야스와 넘긴 머리, 정성일의 음성, 정은임의 영화 음악이 있다. 김초희의 추억에 ‘베를린 천사의 시’, ‘집시의 시간’, 그리고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들이 있었다면, 지금 그녀의 작품을 보는 젊은 우리들의 추억엔 김영이 좋아하는 크리스토퍼 놀란이 새겨질 것이다. 옳고 그름은 없다. 위아래도 없다. 영화를 좋아하는 누군가의 마음만이 있다.
여기까지가 찬실의 2막이다.
찬실의 3막은 영화가 끝나고 비로소 시작된다. 영화 없이도 잘 살아야 한다. 벌이도 남자관계도, 가장 좋아하는 영화 일도 모두 끝난 찬실이지만 잘 살 수 있다. 웃을 수 있다. 이 영화를 보고 일상으로 돌아온 우리는 상상한다. 찬실이는 어떻게 지낼까, 잘살고 있을까. 그리고 읊조릴 것이다. *‘명우는 복도 많지.’(*왓챠피디아 ‘지우’님 코멘트 中)
영화를 본 나의 머릿속에 다시 한번 스파크가 인다. 시네마 키드 중 누군가는 죽었고, 누군가는 살았으며, 누군가는 소설을 썼고, 누군가는 정말 영화를 찍었다. 그리고 정말 많은 아이들이 영화 없이도 잘살고 있다. 인터넷에 ‘시네마 키드’라던가 ‘키노’, ‘영퀴방’을 검색하면 영화를 좋아하던 어린 날을 회고하는 중년들의 달그락거리는 블로그 글을 볼 수 있다.
나는 학교로 돌아와 본과 전공 수업에서 한국광고총연합회가 주관하는 공모전에 참가했다. 주제는 ‘지역 경제문화 활성화를 위한 지역재생(로컬브랜딩) 전략과 홍보방안’이었다. 4명의 조원이 인사를 나누고, 각자 재생이 필요한 공간과 그 이유를 찾아오기로 했다.
나는 충무로의 대한극장을 떠올렸다. 피카디리, 단성사, 서울극장을 떠올렸다. 그곳을 살려야 한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해 조모임에 가져갔다. 너희 시네마 키드라고 아니,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거야, 그렇게 믿었던 사람들이 있어. 그들 중 누군가는 죽었고, 누군가는 잘살고 있어. 누군가는 소설을 쓰고 있어. 누군가는 영화를 찍고, 누군가는 은행에서 일하고 있어. 그 사람들의 가슴을 다시 두근거리게 만들 수 있어. 포시러운 자녀의 손을 잡고, 친구들을 불러 모아서, 극장으로 돌아올 수 있게. 우리 이거 살려야 돼.
교수님의 말에 따르면, 내 아이디어는 쉽게 말해 가망이 없었다. 아이디어는 좌절되었지만 나는 퍼즐을 완성했다.
얼마 뒤 친구와 동네를 산책하다가 내가 말했다. 재밌는 얘기 해줄까.
재밌는 얘기. 난 재밌는 얘기를 팟캐스트로 들을 때마다 술자리에서 써먹는 날을 고대하며 그것들을 수집한다. 예를 들면 독일 사람들은 겨드랑이털을 안 민다든가, 총기 난사 사건 가해자의 어머니가 겪은 이야기가 있겠지만 그 날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건 영화 이야기였다. 누군가 죽고 누군가는 살아남은 이야기. 영화를 좋아했던 아이들의 이야기.
친구에게 신나게 그 이야기를 떠들어대는 밤거리에 거울은 없었지만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내 눈빛은 강렬하게 반짝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