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 오늘 나눈 이야기를 적어보려고 한다. 매번 푸념장에 미주알 고주알 알아볼 수도 없이 적어놓고 흐트려트리기보다, 조금 자세 잡고 잘 적어두고 싶어졌다. 자기에 대한 어떤 정성과 돌봄의 일환이지 싶다.
도 상담사 님과 처음 전화가 닿은 게 6월 이었고 상담을 시작한 게 8월 이니 이번이 최소 일곱 번째 만남이겠다. 순례길을 걸으면서도 두 번 화상으로 얼굴을 뵈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 연결이 쉽지 않았지만 유연하고 편안한 도 님 덕에 어찌어찌 우당탕탕 마음 살피기가 이어졌다.
아빠는 자주 올해가 삼재인가봐요 하고 말하고 다니는데 나도 다를 바 아니다. 큰일이 올해 너무 많았다.관계의 문제, 생명의 문제, 직장의 문제..를 가로지르는 여러 이야기들이 있는 것 같다. 마음이 달 별로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사월의 마음 칠월의 마음은 아릿하게 남는다. 할머니와 선생님이 돌아가시면서 더 말할 수가 없게 되었다. 아무래도 현대판 장례식은 너무 빠르고 답답해 애도하기에 충분치 못한 것 같다. 잔여된 마음이 가슴 한복판에 계속 남아있다. 이렇게 죽음은 나의 행보를 다르게 인도하지만, 그 전에 미처 자기를 살피지 못하고 온 동네방네 뛰어다니며 무언가를 막고 만들려 다녔던 활동가와 연구자 사이의 삶, 그리고 그 삶을 둘러싼 관계들은 아직 고민의 대상이다. 이사, 입대 혹은 입소 문제, 퇴사 같이 굵직한 것들을 마주해야 했으니, 미처 정리하고 돌아보지도 못하고 독일행 비행기에 오르는 맘이 참 가시밭길이었던 것 같다. 돌아온 지금, 꿈 같던 여정이 지나가고 깨어진 직후 나는 어디에서 뭘 하고 있나 계속 생각중이다.
오늘은 주로 여행과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최근에 내가 잡고 가던 연구의 화두가 정리되어 세 죽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나의 문제가 사회 혹은 세상의 문제와 동떨어져 있지 못하고, 그것을 집단학살 - 생태학살 - 존재학살로 보려고 한다고. 단적으로 충분히 애도되지 못한 죽음들이 한으로 남을 때 그것이 어떻게 대대손손 사람들 사이를 건너다니는가 살피게 될 것 같다. 그러나, 사회과학을 주로 본 내가 자꾸 나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살피려는 이 관성은 회피성이 포함되어 있다.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회의 이야기를 주로 담고 하게 된다(많는 상담사들이 사회학도를 제일 힘들어한다고).
군대를 연기했고, 따라서 나에게 네 달이라는 황금같은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돈도 없고 일도 없고 막막하다면 막막할 따름이지만, 이 시간은 내가 나에 대해서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하는 시간들이다. 그 시간을 잘 보내고 싶어졌다.
내가 가장 힘든 건 자기 불만족으로 찾아오는 괴로움이다. 갓생을 살지 못했다는 데에서 오는 현타 같은 거라고 할 수도 있고. 내가 고작 이런 것도 못하면서 뭘하지도 맞고. 아 오늘까지는 무조건 했어야 했는데 염치가 없다도 맞고. 그런데 하루를 무언가에 집중하지 못하고 보냈다는 것이 가장 크다. 자기에 집중하지도 관계에 집중하지도 일에 집중하지도 못한 어정쩡한 하루. 뭔가를 해야지 생각해야지 돌봐야지 등 거리들은 넘쳐나지만 손대지는 못한 그런 것들. 그것들이 주는 괴로움에서 조금 살 길을 열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게 내가 가야 할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