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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장윤석 Dec 18. 2023

2023.2.28 무제

       

2월의 마지막 날이다. 아이쿠.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됐나. 2022라 쓰고 획하나 추가하는 게 습관이 될 것 같은 무렵인데, 어느덧 복격적인 해맞이가 시작되겠다. 나의 이 부유하고 갈등하는 심장이 나를 어디다가 데려다 놓을지 궁금하다. 괜스레 보고 싶어지는 얼굴들이 많다. 사람 마음이 참 모르겠다. 사람 같은 건 꼴도 보기 싫다가도, 사람 사람이 그리워서 마음 붙잡고 어쩔 줄 모른다. 아, 연결되어 있구나. 그래서 끊어질랑 말랑 너무 멀어지면 팽팽해진 그 끈이 사람을 당기고 마는 것이구나. 죽임에 가까워진 우리의 행성이 나를 이끌었던 것도 같은 이야기겠다.      

나를 끌어당기는 공간들이 있다. 가장 먼저 인도 북부의 어느 실롱 마을. 고작 10살 때 외따로 떨어져 살았던 그 마을이 요새 나는 미친 듯이 끌린다. 가만보면 기후활동가로 나를 소개할 때 늘 꺼냈던 이야기였다. 나의 살던 고향이 유난히 극심한 기후변화와 해수면상승으로 거주불능 지역이 되었다는 이야기. 슬픈 표정의 그 소녀를 볼 때면 나는 어딘지 모르게 댐 속에 마을이 가라앉은 수몰민 심정이 되어버리곤 했다. 강의 때는 열심히 갖다붙였지만 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이다. 상처다. 그래서 오래 기억이 남았는지도 모른다. 하필 현장을 잡아도 베트남에 있는 석탄발전소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굳이, 삼척도 있고 당진도 있는데. 이 비극이 그 감각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필 연구를 해도 에코사이드, 생태학이냐. 뭔가 부서져 버린 마음을 그렇게라도 표현하지 않고서는 살 길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 우리 세대가 죽음에 끌리는 까닭이 무엇일까 물었다. 굳이 답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우는 마음이 덧없다.      

다음으로 전라도의 김제, 지난 주에 오랜만에 김제를 다녀오면서 내가 이렇게 아름다운 공간에서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는 것에 더할 나위 없이 감사했다. 그러나 그 감사함도 잠시, 슬프게도 나오는 길에 나는 또다시 비극을 만난다. 내가 오미자(오늘은, 미쳐라, 자전거에)라는 자전거 동아리를 하며 누비고 누볐던 길들에 이런 시골마을에 어울리지 않는 어떤 이상한 고속도로가 놓이고 있었다. 이게 웬 말이냐 싶었더니, 새만금-목포 고속도로가 지어지고 있었다. 새만금? 하필 또 새만금이다. 황윤 감독의 수라를 울면서 봤다. 새만금에 물이 밀려올 때 돌아가신 한 활동가를 보면서 그 옆에 마음이 갈갈이 찢어진 사람들을 생각했다. 지금 내 선배이자 선생인 이가 새만금 쪽을 그 뒤에 바라보지 못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 마음을 겪은 적도 없으면서 알 것 같았다.      

그 다음으로 파주. 1998년에 태어난 나는 1998년에 만들어진 파주출판단지(*정식 명칭은 도시인데 나는 단지가 좋다)가 끌린다. 거진 20년이 지난 이 곳을 가면 마음이 새로워진다. 지금도 마음이 나를 여기로 데려왔다. 모든 도시는 그 전의 것들을 죽임으로서 건설되고 s한다. 죽지 않기 위해 죽음을 먹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필수적인 비극이다. 파주출판단지는 내 생각에 그 죽임이 가장 덜했고, 조화를 이루려고 애썼던 흔적이 있다. 그래서 심학산 기슭 바로 아래 있으면서도 경관이 거슬리지 않는다. 나에게 앞으로의 고향이 될 것 같은 곳이다. 기후를 말하는 동지들과 이곳을 찾았더 적이 있다. 친구가 많이 아펐더. 아픔이라는 게 실료 명료한 게 우선순위가 바뀐다. 이전의 대으니 사명이니 하는 흩어진 말들이 얼마나 초라하게 느껴지던지. 그것도 벌써 두 해가 지났다. 돌봄과 살림을 운동과 생활의 가장 먼저에 올리려고 했던 우리의 시도는 이어지고 있을까. 기후 핑계로 눈 앞에서 치워 버렸던 질문들을 다시 찾아가려고 했던 때 였을 것이다.      

새들을 보면 마음이 이상하다. 또 흑두루미 생각이 났다. 그렇게 기후가 원망스러우면 이 판을 뜨면 되지 않녀는 반문이 솔직히 인다.       

  “오늘은 하루종일 흑두루미 생각을 했다. 무슨 놈의 흑두루미냐고. 같은 생각이다. 지역의 정의로운 전환과 녹색일자리를 연구하려 경남 창원에 갔다가 지역의 활동가들이 슬프고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간 몇 년에 걸쳐 가까스로 지자체와 주민들과 환경운동가들과 노동자들이 석탄발전소를 폐쇄하기로 합의해냈다. 하지만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다. 석탄발전소 문을 닫으면 거기서 일하는 이들과 그 주변의 이들은 어떻게 할까. 나랑 동갑이었나, 산재로 죽었던 노동자 김용균이 생각난다. 미래가 없다면서 자살한 석탄발전소 노동자도 있었다. 타의든 자의든 계속 죽는다. 인근 산업 단지 부지는 텅텅 비어있고 지금은 거기에 LNG발전소를 대신 짓는 것을 두고 논의가 정체되어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논의가 평행선을 그리던 와중에 흑두루미 떼가 찾아왔다. 같이 있던 이들 모두가 탄식을 내뱉었다. 흑두루미는 멸종위기 종 2급으로 전 세계에 있는 개체군의 6할이 한국으로 월동하러 온다. 기후변화로 한국이 주된 보금자리가 된 상황이다. 흑두루미를 보고 온 그는 말했다. 이 광양만 갈사만을 순천만과 같이 흑두루미 보존 특구로 만들면 어떠냐고. 막막해졌다. 지역의 노동자들 갈 곳도 없어진 상황에 팍팍하고 막막한 상황에 찾아온 흑두루미 떼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심지어 흑두루미들은 일본에서 AI 조류독감 인플루엔자 유행에 서식지 감소에 고초를 거치다가 찾아온 게 여기란다. 같이 간 연구원은 처음 야생동물 조사를 하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처음에는 아무 감흥 없을 줄 알았는데 그 살기 팍팍한 곳에서 새끼를 낳고 키우는 새들을 보면 쟤가 나 같고 내가 쟤 같아서 마음이 참 저릿하다고. 석탄발전소가 폐쇄되고 갈 곳 없는 노동자들이나, 러시아 몽골부터 여기까지 날아와서 살아가는 흑두루미나. 그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만 하는 나나. 지역의 전환은 실전이다. 내가 제안하는 녹색일자리 전환 정책에 그 노동자들과 흑두루미가 모두 들어 있을까. 우리는 모두 같이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또 새가 날아간다. 나에게 상처를 준, 나에게 상처를 받은 나의 교장선생님이자 첫 교무님에게 법명을 받았다. 성화(誠和). 정성성, 평화화 지이다. 보자마자 나에게 온 이름인 걸 알았다. 내가 받은 이름이 아마도 날 살려가기를 기도한다. 사람의 기억과 실제는 참 다르구나 싶었다.      

인연을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맺겠는가. 줄곧 불가항력을 느낀다. 가족과 같이, 늘 감도는 애증과 함께 그저 같이 살아가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내가 만ㄴ난 공간들도, 내가 만난 사람들도, 내가 겪은 불완전하나마 모종의 공동체들은 그것이 좋든 싫든 삶과 함께 간다. 어쩌면 기억에 오래 남는 것들은 다 상처가 깊은 것들이다. 이상하게 좋고 재밌는 기억들은 참으로 금세 휘발되는지도. 슬피게도 인연이 남긴 그 성장통 같은 고민들은 지우려 애써도 끝끝내 사라지지 않고 나름의 방식으로 현재진행형이 된다. 열심히도 도망쳐왔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한 요즘이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마음에 이렇게 한이 가득찰 리가 없으니까.      

그 못남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참 어렵고 중요한 과제인데, 참 버거운 일이다. 말들은 조금만 노력하면 깔쌈하게 보란 듯이 있는 듯이 지껄여진다. 하지만 그 말들 뒤에 있는 저마다의 깊은 응어리, 한들은 그렇게 가볍지가 않다. 역설의 세계 속에 살고 있는 것은 알았지만, 아토록 그걸 체감할 지는 몰랐을 것 같다. ADHD나 양극성 장애는 아마 많은 이들이 겪고 있을 것 같다.      

생태법 세미나는 여러모로 참 귀하고 아팠다. 원주에 다녀오면서 내가 집중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알았다. 책을 끝까지 못 읽은 것 뿐 아니다. 그저 말들에 시들해졌구나 하는 생각이다. 관계망에 대한 이야기를 줄곧 하고 그것에 바탕을 두고 이어져온 모임이었다. 이 세미나의 성격이 그랬던 건지, 지금 내 정신이 다른 데 가 있어서 그런 것인지, 귀하고 아팠다. 살아갈 힘은 서로가 주고받으면서 간다. 


*2023.2.28 청년기후긴급행동에서 생태법세미나와 원주기행을 다녀와서 나눈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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