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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장윤석 Jan 03. 2024

[한국철학과 녹색] 아시아의 조화들

2023.12.29 아시아의 친구들과 함께한 일주일



태국의 한 아쉬람에 아시아의 친구들이 모였다. 방콕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윙사닛 아쉬람(Wongsanit Ashram)[1]은 참여불교 사회운동가 술락 시바락사 박사가 40년 전 만든 수행과 교육 센터다. 무성한 초목 사이로 식당 하나, 도서관 하나, 공동 공간 둘, 숙소가 있는 단출한 공간이 참 분위기가 좋았다. 밤이면 별이 가득하고 반딧불이가 보이고, 해가 뜨면 연꽃이 피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가득 찼다. 1970년대 멕시코 쿠에르바카나에서 탈성장과 반개발 이론의 뿌리가 되었던, 이반 일리치와 그들의 공동체 CIDOC(문화교류문헌자료센터)가 이런 느낌이었을까 생각했던 것 같다.


<공동체 의식의 전환을 위한 기후정의 리더쉽 워크숍 Climate resilience Training of Trainers Program: Climate Justice from Collective Consciousness>[2]이라는 장(場)에 기후정의를 테마로 활동가, 연구자, 농부, 선생님, 댄서, 번역가, 식당 사장, 수행자까지 다양하게도 모였다. 이 글에서는 우리가 함께한 일주일, 인상에 남았던 이야기들을 적어보려 한다. 




우리는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첫 대화에서 자기소개와 함께 어떤 기대를 가지고 이 자리에 왔는지 질문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카드를 한 장씩 뽑았는데 내 카드에는 조화(Harmony)가 적혀있었다. 놀랐다. 하루 내내 말했던 낱말로, 조화롭게 풀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이어지는 여정의 마지막을 이 장에 함께하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녹색 혹은 생태학/생태주의(Ecology)는 여러 갈래와 결로 나눌 수 있겠고 나뉘고도 있지만, 나는 각각 중점을 두는 감성, 이성, 영성에 따라 기후정의, 녹색전환, 생명평화로 살핀다. 이들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가 화두이자 숙제였다.[3] 마냥 철학적인 고민만은 아니다. 기후위기를 접하고 살았던 지난 몇 년 가장 힘들었던 건 이 안의 갈등이었다. 한국의 녹색운동에서 나는 팽팽한 긴장과 갈등을 보아 온 것 같다. 그리고 우리에게 어떤 차이는 가능성의 영역이라기보다 갈등과 균열의 계기이자 요소가 되기 십상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이 떠날 때는 일이 고되거나 관계가 지칠 때다. 지난한 논쟁과 날 선 말하기, 적대적 문법 속에서 피로함, 회의감, 실망감을 느끼고 떠나가는 이들의 뒷모습을 보았던 기억이 남아있다. 누군가의 말처럼 한국 사람들은 사회적이지만, 관계적이지는 못한 것 같다. 연일 토론회가 열리는 우리의 대화는 듣기보다 말하기에 치중되어 있는 것 같다. 대화 방식과 태도에 대한 재고와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내가 맞니 네가 맞니,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집중해 온 관성이 우리 사회를 더 야박하게 만들었지 않나 싶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데, 그 지점에서 우리의 운동과 사회는 점차 살아남기 힘들어 지려나 싶어서 답답했다. 그런 점에서, 기후정의와 공동체 의식을 함께 내건 이 장과 여기 모인 사람들을 보고 싶었다. 우리는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어떤 충분성이고 누구의 충분성인가?


첫 번째 필드 트립으로 갔던 곳은 Mab Aung Center라는 불교 기반 공동체였다. 충분성의 경제(Sufficiency economy)라는 철학이 이곳을 가로지르고, 이에 따라 음식과 약, 그리고 지식을 공동체에서 자급자족하는 삶을 추구한다. 이 공동체는 콕넛나(Kok Nong Na Model)라고 농지와 습지와 산지와 주거 공간을 지역의 풍토와 기후 지리에 맞게 3:3:3:1 비율의 원칙에 따라 조성하는 모델을 구상했다. 대표 스님의 인상적인 강의를 듣고 동남아시아의 토착적 지혜에 바탕을 둔 생태경제 모델이 개발되고 적용되는 과정을 보면서 간만에 설렘이 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유토피아 같던 수행 센터를 벗어나자 마음의 경계가 시작되었다. 센터에서 나와 이동한 공간은 거대한 분수와 풀빌라가 즐비한 고급 리조트 같은 곳이었다. 핸드폰 대리점에 자주 보이는 풍선 인형(?)이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다. 반짝반짝한 유리 통창에 방금 전에 부딪혀 죽은 새가 채 온기를 품고  죽어있었다. 친구들이 웅성거리고 질문이 이어졌다. 서머가 새의 죽음과 죽임 방지에 대한 질문을 하자, 여기에는 다양한 새가 많다는 동문서답이 돌아왔다. 이어서 아파트 모델하우스처럼 태국의 웬만한 노동자(그리고 우리도)는 꿈도 꿀 수 없는 가격의 집들을 둘러봤다. 아시아의 토착적 맥락과 모델들이 개발의 마수에 너무 쉽게 무너지고 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시아에서 지속가능한, 대안적인, 탈성장 모델은 정말 어려운 걸까 하는 고민이 다시 일었다.


실망감에 화도 나고, 허탈함에 우울해하고 있었다. 하루의 마무리에 있는 리포트 시간에 판이 말을 꺼냈다. 이 공간을 본 우리들의 머리와 마음이 복잡해졌을 것 같아. 충분성의 원리에 대해서 배웠지만, 도대체 어떤 충분성이지? 그리고 누구의 충분성이지? 싶을 거라고 생각해. 남은 하루 동안 우리에게 충분성은 어떤 것이고 어떤 맥락에 있는지 같이 고민하기를 제안해. 다들 고개를 끄덕였고, 서로의 공감이 일었다. 아쉬람에 돌아가는 길 다양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 공간의 그린워싱과 녹색자본주의 구조에 대해서, 아시아에 존재하는 개발과 성장의 열망에 대해서, 동시에 그럼에도 살펴볼 충분성 철학의 의미에 대해서. 우리가 보고 듣고 방문하는 여러 사례와 현장들 중에서 완벽한 곳이 있을 수는 없다. 글과 이론이 아니라 현실에 위치한 사람과 공동체에는 복잡한 모순과 역설이 즐비하다. 그러나 대개 보고 싶은 것만 보거나, 보기 싫은 것에 눈을 가리게 되는 것 같다. 이날은 그 입체적이고 양면적인 모습들을 못 본 체하지 않고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호기심이 없다면 불가능할 것들이었던 것 같다.


당신의 트라우마는 무엇입니까?


아무래도 어떤 공간의 진가를 나타내는 장면은 갈등 상황에 묻어있는 것 같다. 매일 이어지는 워크숍에는 다양한 활동가와 연구자가 패컬티로 초청되어 함께했는데, 그중에 특히 논쟁적이었던 장이 있었다. 인도 동북부 씨켐의 선주민(Indigenous)이자 여성, 풀뿌리, 생태, 심리를 다루고 연구하는 립 선생님이 여는 장이었다. 립 선생님은 아침에 탈식민주의와 생태여성주의 등을 망라한 강의를 마치고, 우리에게 밖에 나와서 연결된 자연물을 가져올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한 명씩 마음 내킬 때 원 가운데로 나와서 왜 그 사물을 골랐는지, 스스로(I)를 그것(It)이라고 여기고, 그것을 자신의 위치에 놓고 특성을 말하도록 권했다. 예컨대 돌멩이를 골랐으면, 아이엠 스톤 앤 스트롱 식이다. 얼핏 보기에는 어려울 것 없어보이지만, 자신을 돌멩이로 여기고 ‘나는’이라고 말문을 여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대부분 입에 붙지를 않아서 잇 이스 하고 실수했는데 립 선생님은 단단한 목소리로 예외 없이 말을 끊고 아이 엠 하고 수정했다. 립 선생님의 강경한 교정에 클래스 분위기가 사뭇 얼어붙을 정도였다. (이날 외에는 모두 더할 나위 없이 자발적이고 편안한 형태로 이어지는 클래스였다.) 그렇게 모두의 갑작스럽고 어려운 연극이 끝난 후 감상과 질문을 묻는 시간이 이어졌다. 캄보디아에서 온 수판이 날카로운 어조로 말했다. 나는 뭘 느낀지도 모르겠고, 이걸 왜 해야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이게 어떤 쓸모가 있죠? 립 선생님은 대답했다. 여러분이 겪었던 어려움과 불편함이 이 프로그램의 취지입니다. 우리는 쉽게 연결되어있다고 말하지만, 무언가와 연결된다는 감각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이 공간에 일주일이나 있었지만 이 공간에 있는 수많은 생명과 사물들을 살피고 연결되었나요? 무심히 지나치지는 않았나요?


점심을 먹고 난 후, 우리는 다같이 씨켐의 댐 건설과 저항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봤다. 그 지역에 생태학살(Ecocide)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 선주민들의 땅을 수몰시키거나 말라붙게 하는 광범위한 파괴와 변화를 일어났다. 그리고 저항은 댐을 막지 못한 채 끝났다. 영화가 끝나고 서로 돌아가며 감상과 각자의 현장에 대해 이야기했다. 역시나 각종 비극이 즐비했다. 그러던 중 다시 수판이 다소 격정적인 어조로 말을 했다. 캄보디아에서도 댐 건설 같은 사고와 사건을 말하라면 수백 개도 말할 수 있어요. 더 말하기가 지긋지긋해요. 우리가 여기 모인 이유는 각자 온 곳에 가져갈 솔루션과 방법들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댐을 막지 못한 사례 다큐를 우리가 같이 보는 이유는 뭐죠. 성공한 사례는 없나요? 인도네시아에서 온 알도 비슷한 말을 이어갔다. 이 지점은 나도 마음이 많이 갔다. 수많은 생태학살 사건, 사고, 사업을 일렬로 이야기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누가 누가 더 어려운 것을 겪었는지 비극 말하기 대회도 아니고 말이다. 자본과 싸워 지켜내고 막아낸 사례는 사막에서 바늘 찾기다. 도대체 우리가 이런 비극을 말하고 나누는 것은 어떤 맥락에서 어떤 의미가 있나 고민이 들었다. 립 선생님은 답으로 과정에 대해서 말했다.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은 실패와 성공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다친 사람들과 동료들의 마음을 살피고, 그 속에서의 자신에 대해서 고민하고 돌아보는 일이라고. 그리고 이어서 우리의 트라우마에 대해서 그리고 나누자 제안했다.


한 시간 동안 그림을 그리고 서로 돌아가면서 이야기했다. 파푸아에서 팜플랜테이션, 젠더 기반 폭력 문제에 맞서온 엘라가 말을 꺼냈다. 엘라가 겪어온 어려운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자 립 선생님이 조용히 옆으로 가 그녀를 안아주며 토닥였다. 엘라는 감정을 추스르고 말을 이어갔다. 자신이 얼마나 파푸아를 사랑하는지, 지금의 동료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 과정에서 수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동료들과 작은 걸음이나마 한 발짝씩 나아가는 게 얼마나 행복하고 자랑스러운지. 나는 수업이 끝나고 그녀에게 가서 진심으로 너를 존경한다고 말을 건넸다. 모두에게 저마다의 마음에 남아있는 고민과 상처가 있다. 그리고 동시에 무언가를 디뎌내고/넘어가고 만들고/나아가고/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이 어려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참 감사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하루의 마지막까지 마치고나자 하루 내내 다이내믹하고 의아했던 립 선생님과 이 장의 취지에 대해서 좀 알 것 같았다. 마지막에 수판은 웃으면서 프로그램의 의미를 뒤늦게 알았다고, 화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전했다. 그 쿨한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저녁 세션에서는 모두가 돌아가며 노래 부르고 춤추며 대환장 파티를 즐겼다. 립 선생님의 동물 형상의 평화 기원 춤이 기억에 남는다. 나름의 해피엔딩이었다. 다음날 인도로 돌아가는 선생님을 배웅했다. 립 선생님은 계속 연락하자고(Keep in touch), 어깨에 너무 많은 짐을 지지 말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배운다는 것, 조화롭다는 것


놀랄 만큼 좋은 장이었다. 기획단의 고민과 준비가 깊었던 것은 물론이다. (심지어 준비 과정에서 북반구와 남반구 참여자에 대한 경제적 형평성의 고려와 관련한 장학 제도도 있었다.) 대개 기획자의 의도와 목적이 과하여 일정에 여백이 적으면 말들은 많지만 남는 게 없다. 하지만 이 시간들은 무언가에 몰입하는 집중의 시간과, 긴장을 풀고 비우는 여백의 시간이 황금 비율로 함께했다.


말뿐 아니라, 마음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는 뜻이다. 모든 수업에 짤막한 명상 시간이 있다. 처음부터 소개를 이어서 기후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장이 있었다. 분노, 두려움, 슬픔, 공허함을 상징하는 네 가지 자연물을 가운데에 두고 돌아가며 말을 이었다. 다르지만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어떤 마음들을 공유하고 시작하니 이야기가 훨씬 잘 풀렸던 것 같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서로 맞추면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첫날 방글라데시에서 온 승려 라바가 정오 전에 밥을 먹어야 하는 계율을 따르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우리는 그에 맞춰서 사전에 짜온 일과 시간을 바로 바꿨다. 더해서 함께 지킬 규칙을 같이 만들었고, 불편함이나 감사함을 나눌 수 있는 태스크보드를 만들었다. 원형의 공간 배치도 기억에 남는다.


언어도 빼놓을 수 없다. 영어로 진행되는 다양한 국제 컨퍼런스에 참가해 봤지만, 이 자리처럼 모두의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자리는 처음이었다. 모국어가 아닌 말로 대화를 할 때 얼마나 어렵고 유한한지 아는 이들의 대화는 느리고, 사려깊고, 손짓발짓에 번역과 통역을 섞어서 편하고 유쾌했다. 영어에 익숙한 사람과 어려운 사람이 갈리지만, 결국에는 그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내는 게 인상적이었다.


이런 교육 프로그램을 그동안 제대로 배워본 적 없었다. 서로 주고받는 배움의 장 없이, 그냥 달려가기만 했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대학의 교육 과정과 같은 제도적 교육 외 수많은 다른 배움들이 우리를 구성하는데, 그것을 서로 주고받고 하는 과정에 익숙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관계와 만남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어쩌면 거의 전부일 수도 있다. 우리는 서로 배운다. 대학수능교육에서 배우는 지식은 일정 이상은 죽은 지식에 속한다. 배우고 나누는 전통과 맥락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살아온 것은 아닌지, 어떤 ‘일’을 해야 하고 해내야 한다는 압박과 무게가 우리를 너무 강하게 짓누르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든다.


마치고 난 뒤 왜 이 자리에서는 조화가 함께했을까 생각을 한다. 서로의 다른 배경과 맥락, 수많은 차이들이 왜 적대와 갈등의 구도가 아닌 충만한 교류와 관계로 기능하고 이어갈 수 있었을까. 사람은 공동의 것을 기대하게 되면서 서로에 대한 기대가 커진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완전한 같음은 없다. 그것을 알고 인정하고 받아들인 상태에서의 만남이 지닌 귀함이 있는 것 같다. 관계에 대해서 진심이었던 것 같다.



한국 아니 아시아 철학과 녹색


아시아란 넓고 제각각의 풍토에 저마다의 향신료까지 같다고 말하기엔 다른 게 너무 많지만, 그럼에도 아시아로 엮이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아시아의 역사 감각, 사고 방식, 대화 방식, 감정의 결 같은 공통의 것이 있는 것 같다.


여정과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사라지지 않고 곳곳에 새겨져 있는 오래된 제국의 식민 지배 상흔들이다. 이 역사는 지금도 형태만 달리해, 전 지구적 세계화의 한가운데에서 아시아를 새로운 수탈과 착취의 사슬로 엮어놓는다. 수탈과 빈곤에 맺힌 한은 성장의 마음을 낳고, 미래를 어디로 데려다 놓을지 모르는 채 무분별한 개발로 치닫고 있기도 하다. 그렇게 아시아의 풍경은 해가 다르게 바뀌어가고 있다. 오랜만에 찾은 인도의 델리가 숨쉬기 힘든 스모그에 덮여있고, 내가 살던 실롱의 학교와 집이 쇼핑몰과 오 층 빌라로 바뀐 것처럼. 베트남과 태국의 수도에서도 새 공항과 높은 건물 등 물질적 성장의 징후를 계속 살피게 되었다. 88올림픽 때의 서울처럼 건물과 도로가 우후죽순 깔리는 빠르고 정신없고 무지막지한 경제성장의 속도다. 부디 한강의 기적에 눈이 멀어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같은 빨리빨리의 비극 전철을 안 밟았으면 좋겠는데, 그대로 따라가는구나 싶기도 했다. 아시아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아시아에서 온 친구들 모두가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이 있다. 현재의 개발이 토착적인 것들을 ‘잃게 하고’ 특히나 농적 기반을 파괴한다는 문제의식은 모두에게 중요하게 함께했다. 물론 탈성장이 받아들여지는 맥락은 한국과는 상이하다. 이미 성장이 거의 과도기를 달리는 한국과는 다르게, 오히려 성장의 과실이 북반구로 가는 수탈적 경제 체제의 불평등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루었다.


한편, 아시아에서 한국의 위치에 대한 생각이 오래 남았다. 나는 그래도 논의해 볼 지점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한국은 명실상부 북반구로 분류된다. 내가 처음 나갔던 시위는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였는데, 그 당시 한국은 미국의 압박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이 주권의 문제를 겪는 남반구의 지정학성을 지녔던 것 같다. 2003년 WTO(세계무역기구) 앞에서 농업개방협상을 반대하다 자살한 한국 농민도 있었다. 지금도 유럽 지역과 미국에 대비할 때 한국은 안에서는 그 지역들을 중심으로 여기고, 그 지역들에서는 변두리로 위치한다. 비록 물가며 집값에 모든 값이 북반구의 반열을 넘어섰지만, 이게 좋고 자랑스러울 것인지는 의문이다. 한국의 이 묘한 위치/위치성에 대한 생각을 계속 하게 된다.


내가 하고 싶었던 한국 철학이 넓게는 아시아 철학이고 더 넓게는 남반구 혹은 비서구 철학이라 생각한다. 주류의 자리에 올라서지 못했고 지워졌지만, 오래된 토착적 역사에 뿌리를 두고, 다양성의 총체로 남아있는 철학들. 이 철학에는 생태적 지혜가 담겨 있다. 태국의 콧넛나처럼 한국에도 윤작이나 휴경과 같이 땅을 다루는 생태경제적인 생각의 실타래들이 있는 것처럼. 이것들을 발굴하고 연결짓는 데 오래된 희망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성장의 마음에 휩싸여 질주해 오며 만신창이가 된 우리에게 필요한 애도이자 회복의 길이라고 본다.


만남이 지나간 후, 한국에 돌아와 약 한 달간 간간이 그리워하며 그때 생각을 한다. 끝나고 후기를 남기는데, 이 자리에서 얻은 것을 내 삶과 일에 어떻게 녹일 것인지 질문이 주어졌다. 한참을 고민하고 있다. 근래 몸에 힘이 없고 마음에 의욕이 없었는데, 이상하게 하고 싶은 것이 많아지고 있다. 아시아와 관련된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우리는 서로에게서 힘을 얻는다. 아시아의 친구들과 이 이야기를 읽어준 분들에게 새해 복 여실히 짓기를 권한다.



[1] 윙사닛 아쉬람에 대해서는 다음의 홈페이지를 참고. https://ecovillage.org/ecovillage/wongsanit-ashram-0/

술락 시바락사에 대해서는 다음의 글을 참고 (민정희, 2023, 술락 시바락사(1933~ ) : 참여불교운동을 이끄는 사회운동가, 불교평론, https://www.budreview.com/news/articleView.html?idxno=20362)


[2] 이 프로그램은 ICE(Inter-Religious Climate and Ecology Network)에서 주관하고 Bhutan Soul Farmers, Towards Organic Asia (TOA)이 함께하였다.


[3] 펠릭스 가타리는 저서 「세 가지 생태학」에서 자연생태, 사회생태, 마음생태로 생태학/생태주의를 구분하고 철학자 신승철은 각기 환경관리주의, 사회생태주의, 심층생태주의에 조응한다고 말한다. “'자연 생태'라고 언급되었던 환경관리주의는 환경 보전과 보존, 기업에 의한 환경오염에 대한 견제와 감시 등의 움직임을 의미한다. '사회 생태'라고 언급되었던 사회생태주의는 사회 변혁과 과학기술의 재전유를 추구하는 움직임이다. '마음 생태'라고 언급되었던 근본생태주의는 생명 파괴적인 삶의 방식을 거부하고 삶의 변화를 추구하며 생태 영성에 따른 대안적 삶으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이다. 이 세 가지 영역은 주체성의 문제, 사회적 관계의 문제, 자연과 인간의 관계의 문제 등을 각각 의미한다(신승철, 2011, “아, 지금이야말로 녹색당이 필요한 때다!”, 프레시안).”


* 이 글은 2023년 12월 29일 다른백년 [한국철학과 녹색]연재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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