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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장윤석 Apr 24. 2024

2024.4.24 끄적임

갑자기 그런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다. 주변의 소리가 소음이 되고, 나는 여기에서 무엇을 왜 하고 있나 싶은. 많은 것이 무상하게 느껴지거나, 내가 아주 중요한 것을 놓치고 못하고 있거나 하다는 것들을 깨닫게 되는 그런 순간. 그 순간이 찾아오는데 어떤 연고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일던 오면 오셨습니까 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조금 뒤에 내가 그이를 기다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정신없이 정신이 부유하는 가운데 잊고 있었던 귀한 손님이 있었구나 하고. 


아주 오래전부터 무언가 정리되지 않는 상태인 것이 불만이었다. 나의 층위가 있고, 너와의 층위가 있고, 우리의 층위가 있는데 그 다양한 상태와 연결지점들이 이거다 저거다 저렇다 딱 떨어지지 않는다. 하물며 나에게 영혼이 있고 몸이 있고 마음이 있는데 그들도 한데 뒤섞여 복잡하기는 매한가지다. 마침내 뭔가가 아프고, 뭔가를 알게 되고, 뭔가 아름답다고 어떤 경이를 느낄 때가 있는데 이건 또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나, 너, 우리. 영·활·학. 앓음-앎-아름다움. 이렇게 간명한 듯 정리하더라도 그것이 삶에 녹아드는 것과는 별개이자 별도이다. 


최근에 몸이 아팠다. 막 크게 아팠던 건 아닌데 다른 것들을 손에 잡을 수 없었으니까 꽤 아팠다고 봐야겠다. 그렇게 사부작 사부작 일주일이 지나가고. 뒤늦게 이게 어떤 후폭풍 같은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어느순간 찾아온 어떤 순간은 그 때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는 것 같아 보여도, 실은 이유와 맥락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의 세계가 어떤 힘들로 이뤄져 있는 탓에. 태풍이 지나간 듯, 아프고 난 뒤의 몸은 뭔가 달라져 있다. 그 전과는 감각이 다르다. 온 몸에 들어찼던 선거의 휴유증도, 세월호 10주기의 어떤 커다란 감정 덩어리도, 수많은 관계와 일들의 얼키고 설킨 무언가도 다 달라져 있다. 후련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아주 오래토록 미루어 왔던 일들이 있는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실존이라고 불렀고, 어느 때는 자아라고 썼고, 언젠가부터는 살림이라고 말하는 그 무언가에 대한 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것은 곁의 죽음들에 대한 뒤늦은 고요한 애도이며, 마음에만 남기고 계속 괴로워했던 수행되지 못한 일들-글들이기도 한 것 같다. 당장 캘린더를 꽉 채우더라도 이것들, 이 이야기들이 주욱 되지는 않을거다. 다만, 내가 내 마음이 좀 덜 아프도록 미뤄둔 과제들을 잘 헤쳐가보고는 싶다. 지금까지도 못해온 것은 아니지만, 좀 더 정직하고 싶고, 좀 더 힘을 내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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