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엘 엔데의 동화 세계
미하엘 엔데는 1929년 독일 남부 바이에른 주에서 태어나 1995년 바이에른 주에서 생을 마친 독일의 저명한 아동문학 작가다. 초현실주의 화가였던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그는 미술에도 상당한 재능을 보였으며, 학교에서 드라마를 공부한 후에는 연극배우이자 기획자 등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엔데는 초등학교 때 성적부진으로 유급을 당했고, 중학교 시절에 왕따를 당한 경험이 있으며, 그의 가족은 나치 정권의 핍박을 받았다.
엔데는 이러한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나는 종종 혼자였다. 그리고 이 여러 해 동안의 많은 기억들이 이제 나의 동화책 안으로 스며들게 되었다.”고 회고한다. 유년 시절의 영향 때문인지, 그는 독일 폴카흐 아동 및 청소년 문학 아카데미에서 대상을 수상한 후 “아이들을 위한 문학이 별도로 존재한다는 자체가 내게는 우려할 만한 현상으로 보인다.”며 “만약 어른들을 위한 세계가 바람직하다면, 아이들에게 일종의 보호구역을 만들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엔데는 세상이 아이들에게 ‘바람직하지 못한 곳’이 된 이유로 ‘도구화된 이성’을 지적했다. 고대 소크라테스부터 뉴턴, 데카르트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문화가 융성하고 과학이 발전한 데에는 합리적 이성주의의 영향이 컸다. 그러나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 들어 이성은 오로지 성장을 위한 도구로서 사용되어 왔다.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없는 것들은 허상으로 여기며 도덕적, 미학적 가치들을 부정하였고, 이는 결국 인간 소외, 생태계 파괴라는 끔찍한 결과를 낳았다. 엔데는 이를 반(反)합리주의를 통해 이겨낼 수 있다고 보았는데, 달리말해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환상을 통해 상처받은 영혼의 치유가 가능하다고 믿었다. 낭만주의에 영향을 받은 엔데는 작품을 통해 ‘합리주의적’ 시대상을 비판하고자 노력했으며 이는 그의 작품 생애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다.
『짐 크노프』는 미하엘 엔데의 첫 번째 작품으로 1960년에 독일에서 처음 출간 된 이래로 오늘 날까지 독일에서만 매년 15000권이 넘게 팔리는 작품이다. 20개국으로 번역되어 수 만권이 팔렸음은 물론, TV시리즈, 뮤지컬, 인형극 등 다양한 장르로 각색되기도 했다.『짐 크노프 시리즈』는 메르헨(게르만 문화권의 전래 동화를 엮은 사료집 또는 낭만주의 문학을 계승한 아동문학)의 범주에 들어가지만, 시대 비판적이고 계몽적인 부분이 분명한 작품이다. 또한 『끝없는 이야기』와 더불어 제 3국에서 유년기를 보낸 엔데 자신의 경험이 가장 많이 녹아든 작품이기도 하다.
『짐 크노프 시리즈』는 흑인 고아 소년인 짐 크노프가 기관사 루카스와 함께 벌이는 모험 이야기이다. 소설 속 용의 나라 쿰머란트에선 '순혈이 아닌 용이 들어오면 사형!'이라고 쓰인 팻말이 공공연하게 붙어있고, 그 곳의 아이들은 의자에 묶인 채 강제로 산수와 읽기를 배운다. 이는 2차 대전 당시 독일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었던 '유대인 출입 사절!' 팻말과 독일의 비정상적인 교육열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바꾸지 못했던 참혹한 과거는 환상을 만나 통쾌하게 변모한다. 흑인 아이인 짐 크노프가 왕이 되고, 혼혈 용인 네포묵크가 영웅이 되는 서사 구조는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엔데는 이 작품에서 반인종주의적인 유토피아를 훌륭하게 그려내는 것은 물론, ‘현실세계로부터의 도피’라는 비난을 딛고 ‘환상’이라는 매개체를 통한 치유의 능력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엔데의 가장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모모』는 독일에서뿐만 아니라 70년대 죽어가는 모 출판사에게 모모의 출판을 강력히 권했던 차경아 번역가를 통해 한국에 처음 소개된 이래로 여전히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엔데는 비합리주의로 대표되는 예술적, 미적 가치를 믿었고, 정신적이고 본질적인 가치를 탐구하고자 하는 행위를 통해 인간소외를 이겨낼 수 있다고 보았다. 엔데는 이 과정을 예술로부터의 자극, 이로 인한 의식의 변화, 마지막으로 정치의 변화로 규정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술을 단순히 정치적인 도구로 전락시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예술이 정치적인 기능을 수행하려면 직접적인 언급 대신 다른 것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는 리얼리즘 문학을 전면적으로 반박하는 주장이자 그가 모모를 통해 가장 잘 드러낸 주제 의식이기도 하다. 또한 스위스 작가 아돌프 무슈크는 엔데에 대해 ‘시대정신을 거스르는 이야기를 기획하였지만, 그것이 오히려 시대정신의 정곡을 완벽히 찔렀고, 그리하여 그의 이야기들이 시대정신을 멋지게 구현한 것으로 보이게 되었다.’라고 평했다. 이는 ‘피로사회’ 속에서 허덕이는 현대인들에게 느긋함, 여유의 진수를 보여주는 모모라는 인물을 제시함으로써 오히려 ‘바쁨의 미덕’이라는 시대정신을 완벽히 구현한 모모를 가장 잘 표현하는 문장이다.
엔데가 죽기 전 일본에서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발간한 『엔데의 유언』에서 그는 모모는 시간과 그 시간 속에서 나눌 수 있는 우정과 사랑 대신 돈을 중시하는 현대 사회를 비판하는 작품이라고 밝힌 바 있다. 모모의 1부에서 마을 사람들은 서로 협력하며 물질적으로는 부족하더라도 정신적으로는 풍족한 삶을 산다. 그러나 2부에서 마을에 회색신사가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비생산적인 활동, 불필요한 일에는 시간을 쓰지 않기 시작한다. 때문에 음식점에는 허겁지겁 음식을 먹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집의 멋과 안전 대신 ‘얼마나 빨리 짓는지’가 중요한 세상이 된다. 결국 행복을 위해 시간을 저축한 사람들이 시간을 저축하기 위해 행복을 포기하는 가치전도가 일어나게 되고 이는 인간소외로 이어진다. 엔데는 이를 시간 그 자체이자 죽음인 호라박사로 상징되는 보다 본질적인 것, 근원적인 내면의 세계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모모』를 번역한 차경아 번역가에게 깊은 감명을 받은 엔데가 『끝없는 이야기』의 구상 단계부터 그녀에게 조언을 구했다는 일화는 아주 유명하다. 이렇듯 한국과도 인연이 깊은 『끝없는 이야기』는 엔데에게 엄청난 부와 명성을 가져다 준 작품으로, 1979년 작품이 출간된 이래로 전 세계에서 1000만부가 넘게 팔렸으며, 유명 청소년 도서상인 ‘북스테후더 불렌 상’과 ZDF 방송사 상, ‘빌헬름 하우프 상’ 등을 수상하였다.
『끝없는 이야기』는 ‘책 속의 책’이라는 모티프의 전범이 된 작품으로 주인공 바스티안이 친구들의 괴롭힘을 피해 뛰어 들어간 서점에서 ‘끝없는 이야기’라는 책을 훔쳐 읽게 되고 여왕을 구하러 책 속 세계로 들어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의 주제는 내적발견을 통한 자기성장으로 정리할 수 있는데, 환상문학임에도 불구하고 전형적인 회귀형 성장소설의 형식을 차용하고 있다. 눈 여겨 보아야 할 점은, 주인공 바스티안의 환상 속에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이 칼 융이 제시한 ‘개성화과정’과 굉장히 흡사하다는 점이다.
융은 자신의 내면의 무의식을 의식화하여 진정한 자기를 이해하고 통합해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과정은 책의 제목처럼 ‘끝없는 이야기’이며 삶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바스티안은 환상 속에서 자신의 열등감을 보상하는, 자신과는 정반대인 아트레유라는 ‘그림자’를 인식하고 현실 세계로 돌아온 후에는 자기 존중감을 가지게 된다. 또한 융은 생물학적 성과 반대되는 내면의 여성성(아니마), 남성성(아니무스)의 통합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바스티안 또한 환상 속에서 어린여왕으로 상징되는 내면의 아니마를 통합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조차 알지 못했던 섬세하고 창조적인 측면을 통합하는 과정을 거친다.
엔데는 평생을 아동 문학 작가로 폄하받으면서도 아동을 위한 글을 쓰는 데 전념하였고, 존재의 형이상학에 대해 논하면서도 언제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다. 작품의 깊이를 따지고 들면 엔데보다 더 훌륭한 작가가 많을지 몰라도, 문학적 비유로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성취한 그의 작품은 언제나 내 마음 속에 이데아로 남아 있다. 상처 받은 날이면, 언제고 쓰라린 마음을 부드럽게 감싸 안는,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미하엘 엔데.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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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출처: http://artinsight.co.kr/news/view.php?no=4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