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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사람 박코리 Mar 02. 2018

'뭘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들 때,

손으로 빵 만드는 그를 만났다. 사워도우@Lodge Bread

기술을 있어야 먹고 산다는 아빠의 말-

대학에 합격하고 나서 맞은 첫 겨울 방학이었다. 아빠는 밥상에서 내게 뭘 먹고 살 거냐고, 문과는 앞으로 점점 힘들어진다는 말을 했다. 기술이나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면서 문과니 회계사 시험을 보라고 했다. 역효과가 나서 필수였던 회계원리, 재무관리 수업만 하나씩 듣고 나선 그 후로는 회계나 재무 수업을 듣지 않았다.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 만끽하게 된 자유를 누리고만 싶었다. 어른이 되고 나서의 일은 나중 일이니 미리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일단 경영학과 전공을 하긴 했으나, 철학을 복수 전공했다.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게 공부라니! 철학 수업이 열리는 학관에 가는 길엔 신이 나서 늘 하늘을 나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도 후회는 없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모르는 채로 뭘 먹고 살지를 고민할 수는 없었으니깐.



그래, 그럼 나는 대체 뭘 하면서 살게 될까?

아빠가 걱정한 대로 나는 실용 기술을 전혀 갖추지 못 한 문과 졸업생이 되었다. 기자가 되겠다, 로스쿨을 가겠다 팔랑팔랑 거리다 수험 공부를 하는 게 싫어서 취업을 하기로 했다. 세 번의 취업과 퇴사를 한 후, 결혼을 해서 LA로 이주했다. 부부가 맞벌이를 하는 게 일반적이어서 일하지 않고 집에서 살림을 한다는 걸 만나는 사람마다 신기해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할 거냐고, 계획이 있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잘 모르겠다며 겸연쩍은 웃음을 짓는 일이 반복됐다.


물론 회사를 다닐 때부터 비밀스럽게 하고 싶은 일이 있긴 했다. 아주 작아도 좋으니 내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지만, 실제가 될 때까지 여기저기 떠벌리고 싶지 않았다. 브런치에 간간이 독백같은 포스팅을 쓰게 된 가장 큰 이유다. 누구에게 말하긴 그렇고, 놓고 싶지 않아서 내가 나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여기, 브런치에 쓴다.



비밀은 없다. 기본을 다 하는 동네 빵집, Lodge Bread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할 때 인스타그램을 통해 Lodge Bread를 알게 됐다. 인스타그램 피드에 누가 뽀글뽀글 발효 중인 밀가루 반죽이며, 큼직한 기공이 보이는 빵 단면 사진을 매일 같이 올리는 거다. 삼시세끼 한식만 먹으면 물려하는 남편 때문에 빵집을 찾고 있었는데 마침 집 근처다. 텅 빈 플라자 구석에 빵집이 조그맣게 하나 있는데 아침 일찍부터 줄이 길게 서있었다. 마트에 가면 빵이 넘쳐나는데도 굳이 이 작은 빵집에 사람들이 줄을 서는 게 신기했다.

미국의 흔한 마트 풍경- 빵이 선반마다 잔뜩 쌓여있다.

배고픔 반, 궁금함 반으로 자연 발효빵, 사워도우 컨트리 브레드를 하나 사 왔다. 남편이 쓱쓱 썰어서 치즈에 토마토를 얹어서 주는데 신 맛이 살짝 돌면서 쫄깃쫄깃한 속살이 일품이었다. 종이 맛이 나는 허연 마트 빵이 싫어서 찾아간 건데  지금까지도 그 때 그 빵 냄새와 맛이 기억날 만큼 남달랐다.

얼른 먹고 싶은 마음에 방울토마토 꼭지도 안 떼고 서빙한 남편- 빵에 토마토, 치즈를 얹었을 뿐인데 최고의 한 끼였다.

그때부터 Lodge Bread에 주기적으로 들려 빵을 사먹었다. 일체의 방부제 없이 직접 빻은 통밀가루, 물, 약간의 소금으로만 만든 빵이다 보니 한번에 몰아서 사다 두면 금방 상했다. 자주 가는 수밖에 없었다. 동네의 빵집에 가는 일은 성가시기보다는 참새가 방앗간에 들리듯 즐거운 일과가 되었다.

Lodge Bread의 두 오너 베이커 중 한 명인 Alexander Phaneuf가 직접 클래스를 진행했다.

토론토로 이주를 결정하면서 Lodge Bread에서 사워도우 원데이 클래스를 듣기로 했다. 친구들과 놀러 갔다 오느라 수업 시간에 아슬아슬하게 맞춰서 도착했는데 모두가 열중하고 있었다. 사워도우를 만드는데 특별한 비밀 같은 건 없었다. 밀가루를 물에 갠 후 온도를 맞춰 발효를 시키고 오븐에 굽는 작업의 반복이었다. 비결은 따로 없다고, 자주 굽다 보면 잘 굽게 된다는 말을 하는데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밥도 짓다 보면 능숙하게 짓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시판 밀가루 브랜드 제품과 직접 빻는 통밀가루를 비교하는 중이다.

별 다를 것 없어 보이는 Lodge Bread의 빵 맛은 왜 특별할까? 빵은 어디에서나 팔지만, 종이 맛이 나지 않는 하드 크러스트에 쫄깃한 속을 가진 빵다운 빵을 찾기가 쉽지 않다. 미국 마트에서 파는 대부분의 빵 성분표를 보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온갖 화학물질 리스트가 한가득이다. 이와 달리 Lodge Bread의 빵의 원재료는 유기농 통밀가루, 물, 소금이 전부다. 심플하다. 온갖 화학물질과 첨가물을 넣어 빵 비슷한 물질(저널리스트 Michael Pollan의 표현에 따르자면, 'breadlike substance')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고대부터 그랬듯 통밀을 빻아 물을 넣고 손으로 치대 만들었기에 진짜 빵 맛이 나는 거다.

수업이 끝나고 다같이 손으로 뜯어먹은 country bread


관점이 먼저, 기술은 익힐 수 있다.

Lodge Bread는 Or Amsalam과 Alexander Phaneuf, 두 명이서 시작한 작은 베이커리이다. West Hollywood의 어느 펍에서 쿡으로 일하던 둘은 빵을 배우러 학교에 가는 대신 구글에서 사워도우 레시피를 검색, 둘이서 매일 빵 만드는 연습을 하다가 결국엔 빵집을 차린다. Lodge Bread의 빵을 먹을 때마다 이 사람들은 어디서 빵을 배웠을까, 궁금했는데 그냥 둘이서 빵다운 빵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매일 빵을 구운거다. 거창한 과정 없이 빵을 굽고 또 구워서 친구와 이웃들에게 나눠주고, 파머스마켓에 트럭을 끌고 나가고 그러다 빵집을 연 거였다.


Lodge Bread의 이야기를 듣고 여유가 생겼다. 기술이 없는 문과생이자 뭔가를 새로 배우기엔 늦은 삼십대라는 생각에 힘이 빠질 때가 종종 있었다. 우주에 로켓을 쏠 것이 아닌 이상 사는 데 유용한 생활 기술은 지금부터 일상을 살면서 천천히 익혀가면 되는 게 맞다.  세상에 없던 새로운 걸 만들어내려는 게 아니다.  



나의 오늘을 살며,

내일의 '내 일'을 그려나가고 있다.


지금은 토론토 사는 박코리, 오늘도 자유롭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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