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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 Mar 03. 2024

내 삶의 주도권 갖기

책임을 다할 때 자유가 폭발한다


나는 너를 사랑하는데, 너는 항상 일 얘기만 하는구나



2019년 연말, 늦게 퇴근 후 편의점 앞에서 맥주 한 캔씩 마시는데 남자친구가 말했다. 그 당시 다니던 첫 회사의 팀은 연말에 해체될 예정이었어서 몇 군데에서 최종 이직 오퍼를 받아 놓은 상태였다. 불란서에서 온 남자친구는 변변한 직업을 구하지 못한 채 비자 만료일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날 밤, 인생 최대의 갈림길 앞에서 밤새 홀로 고민을 했다. 당시 머릿속에는 가지 선택지밖에 없어 보였다.




첫 번째 길은, 붙은 회사로 이직하고 최소 3년쯤 다니면서 틈틈이 롱디를 하고 유학 준비를 하는 거였다. 이 경우, 왠지 새로운 회사로 옮기고 나면 쌓여가는 안정성 때문에 지금의 남자친구와 헤어지게 될 것 같았고, 그러면 나는 너를 사랑하는데, 너는 항상 일 얘기만 하는구나 라는 말을 80세가 된 미래의 내가 계속 떠올리면서 해보지 않은 도전에 대한 후회를 하게 될 것만 같았다. 



두 번째 길은, 퇴사를 하고 유학 준비에 돌입하여 2020년 여름, 파리로 출국하는 거였다. 2번 선택지의 경우, 온전히 유학 준비에 박차를 가해 유학 및 해외취업이라는 기존의 버킷리스트를 하나 지울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붙는다는 보장이 없었고 너무 위험했다.






제프 베조스의 후회 최소화 프레임워크를 적용해 보기로 했다. 80세가 되었을 때를 가정하고, 지금이 그때 시점이라면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어떤 선택이 후회를 최소화할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 결과 1번 49, 2번 51로 마음이 기울어서 선 퇴사 후 유학준비를 하여 합격을 했지만, 코로나가 와서 진짜 낙동강 오리알 될 뻔했었다. 4년 전으로 돌아간다 해도 같은 선택을 내렸을 것 같지만 배수의 진을 치지는 않고 조금은 더 영리하게 처신을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같은 결과가 나왔으리라고는 보장할 수 없다.




한국에서 현재의 남편이 된 그 당시의 남자친구를 만나기 훨씬 전부터 나는 미국 공대 석사 유학 및 해외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막상 실행으로 옮길 용기는 부족했다. 내 관점에서 90%의 준비가 되면 행동으로 옮기려고 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잇따른 외부 환경의 변화가 삶을 뒤흔들었고, 핸들이 고장 난 8톤 트럭처럼 전에는 옵션에도 없던 프랑스로 용감무쌍하게 오게 되었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바로 그 시기에 불어 무식자가 사랑 80%, 커리어 20%의 비중으로 무모하게 프랑스로 유학을 왔다. 사랑에 콩깍지가 씌워 버린 나머지 이 과정이 한국에서 자리를 잡을 때의 4배 이상의 에너지가 소요된다는 '이민'이라는 것을 간과했었다. 사소한 다툼과 어려움에도 쉽게 휘청거렸고 화와 우울에 잠식당하곤 했다. '내가 너 때문에 한국에서의 모든 걸 희생하며 말도 안 통하는 파리까지 왔어'라고 내 삶의 주도권을 내어줄수록 이곳에 오기로 결심한 것은 내면의 소리에 따른 선택이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나는 너를 위해 희생했다'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은 자책감 유발제로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자책감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기 위해 사용되는 요긴한 방법이다. 자신이 휘둘리고 있는 상황에 화풀이를 하기도 좋을뿐더러 자책감의 초점을 자신이 아닌 내 인생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에게 돌리기도 쉽다. - <행복한 이기주의자> 중





프랑스에 오고 나서 처음 2년 동안 꽤나 다채로운 역할들이 생겼다. 데이터 과학자, 프랑스어가 서툰 이방인, OO 이공계 그랑제꼴 동문, 아내, 딸, 며느리. 새로운 게임의 법칙이 적용된 정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부여된 여러 가지 역할들의 충돌, 그 사이에서 균형감각을 잃고 불안감이 증폭되었던 이민 초창기였다. 쏟아지는 변수들을 정면으로 맞는 와중에 모든 걸 잘 해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엄격한 태도를 취하면서




다양한 역할들의 통합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던 적응기였기에, '왜 프랑스에 왔느냐'에 대한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스스로를 지치게 했다. 커리어와 사랑을 양자택일의 편협한 관점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을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어려운 공대 석사 과정을 빠듯하게 따라가고 수십 군데 인턴십을 구하기 위해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보며 멘탈이 탈탈 털릴 때마다 애꿎은 현재의 남편한테 화를 표출하거나 타인이 나의 힘듦에 위로와 공감을 해주기를 기대하며 미성숙하게 기댔다하지만 그 시절의 찌질함과 아픔이 있었기에 더 단단해지고 주체적인 자세를 이곳에서 가질 수 있었으니 삶은 참 아이러니하다.



저에게는 여러 가지 역할이 있습니다. 엄마, 아내, 딸, 며느리, 정신과 의사, 병원 원장, 방송인, 저술가 등... 저는 각각의 제 모습을 볼 때 어색하지 않습니다. 어느 역할에서는 좀 잘하는 것 같지만, 다른 역할에서는 좀 어설프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모습들이 서로 충돌을 일으켜 제 안에서 불안을 일으키지는 않아요. 제가 저 스스로에게 갖는 감정들이 대체로 잘 통합되어 있어서 각 역할들도 편하게 느껴져요. 이것을 자아 조절 기능에 의한 정체성 통합이라고 합니다. 
너무 지나치게 완벽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역할이 몇 가지 안 될 때는 누구나 잘할 수 있어요. 하지만 역할이 많아지면 그만큼 못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역할이 많아지면 자아의 조절 기능이 약해지면서 혼란스럽고 불안해질 수 있어요. 그럴 때는 자신에게 너그러워야 합니다. 그래야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에게도 너그러워질 수 있어요. - <오은영의 화해 304p>






프랑스에서 번뇌가 사라지고 건강한 추진력이 생긴 시점은 바로 해외 살이 뿐만 아니라 인생은 결국 자기가 주도권을 갖고 자기 책임을 키워나가는 여정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부터였다. 내 꿈과 사랑을 위해 말이 통하지 않는 프랑스로 용감하게 내돈내산 유학을 온 스스로의 결단력과 추진력을 칭찬해. 외국인이 해외에서 유학을 하고 현지인들과의 경쟁을 뚫고 전공을 살린 직업을 찾는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에 몇 곱절로 힘이 들 수밖에 없는 거야. 이 과정을 겪어낼수록 자존감, 자신감 및 자아효능감이 높아지고 그릇이 큰 사람이 되며 결국 스스로의 삶에 대한 주도권을 갖게 되겠지. 옆에서 격려와 지지를 해주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감사와 사랑을 표하며 그렇게 함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거야. 혼자, 그리고 또 함께.




결혼이란 평등한 자립과, 상호 의존과 상호 보완적인 의무로 맺어진 남녀 간의 관계다. - <행복한 이기주의자> 중




이후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닌 철저히 나 자신의 성장과 독립을 위해 넘어져도 일어나 피리를 불었다. 매일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들에 하나씩 도전해 왔고, 지금도 그 과정 중에 있다. 안전지대를 떠나 과감하게 부딪히며 성장 마인드셋을 개발해 왔고, 그 덕분에 무언가를 잘 모르거나 잘하지 못하는 것이 일시적인 상태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지금까지 성취했고 경험했던 모든 성공과 실패가 자랑스럽다. 실패를 한다 해도 언제든 나는 다시 일어났고, 앞으로도 시간이 걸릴지언정 적합한 방식으로 다시 일어날 수 있음을 믿는다.




과거에 겪었던 시행착오들 덕분에 이제는 일이 잘 풀릴 때 지나치게 들뜨지 않고, 일이 안 풀릴 때 지나치게 슬퍼하지는 않는다. 기분이 바닥을 찍는 날에도 허리를 꼿꼿하게 편 채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운동을 한 후 커피를 마시며 정돈된 일상을 유지할 수 있고, 또다시 인풋, 세상으로부터의 피드백, 아웃풋의 선순환을 그리며 또 다른 챕터가 펼쳐질 것을 알고 있다. 어려운 시기를 겪으며 과거의 인연들이 겪었을 어려움에도 이제 조금은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책임을 다할 때 자유가 폭발한다는 말의 뜻이, 어떤 일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모조리 떠맡으라는 뜻인 줄만 알았다. 이제는 조금 알겠다. 이 말은 '자기 삶의 주도권을 가져라'는 뜻이었다. 조금은 너그럽고 관대하게 나 스스로를 토닥이면서, 한 발짝 두 발짝 그렇게 조금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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