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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콘이 사는 법 Jul 05. 2018

소녀, 엄마가 되다.

유니콘&바오밥


 사람들은 각자 이루고 싶은 것들이 존재한다. 나에게는 '무지개 유니콘'이라는 목표 리스트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중국 ‘구채구’에 가보는 것이었다. 목표 작성 당시에는 당장이라도 떠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어느새 직장인이 되어버린 나는 구석지 한편에 내 모든 걸 구겨 밀어 넣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 어떠한 것도 돌아볼 겨를이 없었지만 일주일에 한 번 엄마와 전화통화만큼은 빼먹지 않았다. 평소 통화를 하면 주로 회사에서 힘들었던 이야기 또는 내가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해서만 끊임없이 말하는데 어느 날 한 번은 엄마께서 대화 주도권을 잡으시더니 통화 내내 여행에 관한 이야기만 하신 적이 있었다. 딱히 어디를 가자고 말씀하시지는 않았지만 ‘엄마가 어딘가 떠나고 싶어 하시는구나’라는 마음의 소리를 캐치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 엄마는 해외여행과 거리가 먼 아빠 덕분에 53년간 국내를 벗어난 적 없는 분이셨다. 평소 자식들에게 부탁 이라고는 해보신 적 없으신 엄마인데 오죽하면 나에게 속마음을 내비치셨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찡했다. 그래서 나는 여름휴가를 엄마와 보내기로 결정했다. 내가 익숙한 나라를 가야 어려움이 없을 것 같아 오래전부터 계획을 짜둔 ‘구채구’를 선택하였다.  


 엄마는 내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무조건 고!”라고 외치셨고 그렇게 우리는 뜻밖의 계획으로 부터온 설렘을 안고 청두로 날아갔다. 청두는 쓰촨 성의 성도인 만큼 크고 깔끔하며 야경은 상해 못지않은 화려함을 가지고 있었다. 높은 층에서 바라보는 야경이 마음에 드셨는지 한참을 바라보시다가 “딸 덕분에 이런 데를 다 와보네”라며 웃으시는 엄마와 꿈에 그리던 구채구를 볼 수 있다는 나의 설렘이 까만 하늘 같던 내 마음에 반짝이는 별이 되어주었다.


나의 꿈

  드디어 구채구를 본다는 설렘에 엄마를 잡고 어찌나 호들갑을 떨었는지 진정 하라며 내손을 꼭 잡아주셨다. 여기까지 오는데 4년 3개월이 걸렸고, 청두에 도착하여 구채구 입구까지 오는데 3일이 걸렸다. 들어가는 길목부터 "그래요, 제가 구채구입니다."라고 이야기하듯 마을에 흐르는 흙탕물과 구채구에서 내려오는 영롱한 물색은 서로 섞이지 않은 채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신기함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곳은 관광지 보호가 철저하게 이루어지는 곳이라 하루 판매하는 티켓 수량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발 디딜 곳 조차 없이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구채구 풍경 , 필터 없음
진주탄

 구채구는 Y자 코스로 이루어져 있는데 우리 모녀는 가장 먼저 '일촉 구'부분으로 향했였다. 이동하는 동안 주변 물빛 장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엄마! 엄마! 저기!! 우와!! 엄마 저기도요!" 내가 가리키는 모든 곳은 맑고 투명한 파란 물들이 자연의 거울이 되어 하늘을 비추고 있었다. 셔틀버스는 한 정류장에 멈추어 섰고 내가 그토록 바라던 모습이 '오화 해'에 펼쳐지고 있었다.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없는 색을 가진 이곳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정하 시인의 '낮은 곳으로'라는 시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혼자 욕심 내어 나만 가지고 싶은 그런 풍경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자연이 만들어낸 위대한 작품 그 이상의 경관이었다. 물이 함께하는 산책길을 따라 어린 다람쥐 마냥 엄마 팔짱을 끼고 폴짝폴짝 내려가는 길에서는 ‘진주탄 폭포’를 보았다. 쏟아져 내리는 폭포에서 튀어나오는 물방울들이 진주 모양으로 어찌나 둥글고 투명한지 손바닥을 내밀면 내손에 또르르 모여들 것만 같았다. 진주탄이라고 이름을 붙인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 이만한 이름을 찾기 힘들 것 같았다.  


오화해

 한 장소를 볼 때마다 여기보다 더 멋진 부분이 있을까 하고 의심하면 그런 나를 놀리듯 또 다른 멋진 장소들이 나타났다. ‘일촉 구’의 반대 부분인 '측사와 구' 에있는 ‘오채지’와 ‘장해'가 그러했다. ‘오채지’는 마치 이 세상에 정말 선녀가 있다면 이 곳에서 목욕을 할 것만 같은 곳이었다. 조명이 비추고 있는 물도 아닌 것이 보는 각도마다 물색이 어찌나 화려하게 변하는지 방문객들 모두 좀처럼 자리를 뜨지 않는 장소였다. 그리고 ‘장해’는 설산들 사이로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가 정말 바다와 같이 길었다. 색은 짙은 파란색이지만 부분 부분은 옅은 하늘색을 띠기도 했으며 마치 호수 괴물 ‘챔프’가 뛰어올라 올 것만 같은 아찔한 아름다움의 매력이 있는 곳이었다.     

           

장해

 

3,500m라는 고도에 가끔 이명이 오기도 했지만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장소였다. 그 자리에 서서 하염없이 더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하늘은 우리가 떠나야 하는 순간을 말해주듯 먹구름을 드리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오래 있고 싶어 출구로 향하는 길은 셔틀버스 탑승 대신 물을 따라 걸어 내려오며 구채구에

게 안녕을 말했다.


 아름다운 것일수록 얻기가 힘들다는 말처럼 이 곳을 보기 위해 많은 인내가 필요했지만 그 결과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소중한 보물이 되었다. 사실 사진과 영상은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 별로인 것도 화려하게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구채구에 대해 조금 의심을 품기도 했었다. 그러나 직접 본 이곳은 내가 지금까지 봐 왔던 것들 중에서 현대 기술의 표현력이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자연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한마디로 표현하기가 너무나 어려운 곳이며 한마디로 표현한다고 해도 그건 구채구에 대한 엄청난 실례라고 생각될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만약 허락만 되었더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물속에 뛰어 들어갔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호텔에 돌아와서도 내 눈앞에는 아름다운 물빛이 찰랑이는 듯했다. 잠을 자야 볼 수 있는 꿈속의 동화세상이 눈앞에 펼쳐진 그 순간을 경험했다는 사실과 이런 아름다운 곳에 가장 사랑하는 엄마의 미소가 함께 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한 시간이었다.


소녀, 엄마가 되다

 꿈의 각성효과이었을까? 구채구에서는 감기 걸린 몸으로 하루 종일 뛰어다녀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긴장이 풀렸는지 기침이 심해지고 열이 떨어지지 않았다.  황룡은 해발 4,000m 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고산병을 대비해 정말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어 두었어야 했는데 내 불찰이었다.  


 약기운 때문인지 나는 창문에 등을 기대어 잠이 들고 말았다. 얼마나 잠들었던 걸까? 찻길을 따라 흐르는 거대한 물소리에 눈을 떴을 땐 옆좌석에 앉아 빠르게 지나가는 창 밖의 풍경에 눈을 떼지 못하고 계신 엄마가 보였다. 그리고는 1분에 한 번씩 주변의 사진을 찍으시기도 했다. 그런 엄마를 바라보고 있으니 차만 타면 바깥 풍경 구경에 정신없어하는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엄마와 내가 같은 부분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평소 생각해본 적이 없기에 기분이 묘했다. 엄마가 보고 있는 주변의 산들은 구름을 뚫고 올라가 정상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소프트 아이스크림처럼 그 길을 굽이굽이 돌아 올라가니 푸른 초원이 눈앞에 펼쳐졌고 야크, 염소 등 고지대에서 생활하는 동물들이 모든 땅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늘과 가까운 이곳, 형형색색의 깃발 위에 티베트어로 적힌 기도문 들의 간절함이 신에게 닿기를 바라듯 가장 높은 곳에서 펄럭이며 아름다운 색의 조화를 보여주기도 했다. 만약 지상에서 하늘의 누군가를 만나러 갈 수 있다면 그게 바로 황룡 가는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있기에 기어갈 수 있었다
대지진의 흔적

 그렇게 수십 개의 산을 지나 황룡 입구에 도착하니 고산지대의 위엄을 나타내 듯이 6월 중순임에도 불구하고 12월 초 날씨처럼 찬기운이 우리의 온몸을 감싸 안았다. 입구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약 8분 정도 이동하면 등산로가 나타나는데 등산부터 하산까지 약 4시간이 걸린다. 이동하는 길은 절대 험하지 않으며 이 높은 곳을 어떻게 이리 잘 만들어 두었는지 대단함이 느껴질 뿐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나였다. 아픈 몸을 이끌고 40분 정도는 별 이상 없이 걸었지만 1시간 반을 더 걷자 감히 인간이 신의 영역에 들어가려다 들켜 벌을 받는 것 마냥 고비가 오기 시작했다. 높지도 않은 계단을 5개 올라가다 주저앉고 또 5개 올라가다 주저앉아 엄마의 다리를 붙잡고 머리를 기대었다. 숨이 가빠지고 기압에 눌려 이유 없이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여행 계획할 당시 나보다 연세가 있으신 엄마의 고산병만 걱정했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엄마는 멀쩡하시고 나이 상관없이 나에게만 고산병이 밀려들어왔다. 이런 내가 어찌나 안쓰러워 보였는지 친절한 중국 사람들은 괜찮냐며 물을 건네주기도 하고 복식호흡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그러나 상태는 나아지지 않고 황룡은 눈앞에 보이지 않아 눈물이 날 뻔했다. 엄마도 힘들면 내려가자며 무리하지 말라고 내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하지만 그날따라 이상하게도 나는 청개구리가 되어 들것에 실려 내려가도 내 발로는 돌아가지 않을 거라며 엄마에게 내 몸의 60%를 맡긴 채 다시 걸어 올라갔다.


황룡 정상 / 해발 4,000m

 얼마나 걸었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정신이 아득해질 즈음 “딸! 다 왔다!”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내 눈을 번쩍이게 했고 숨 막힐 듯이 아름다운 절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마치 용비늘처럼 푹 파인 황색 안으로 에메랄드색의 물이 가득 고여있었다. 작명 솜씨에 놀라울 따름이었다. 구채구와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진 3400개의 물빛이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온 우리 모녀를 칭찬이라도 하듯 자기가 가지고 있는 매력을 한껏 보여주었다. 정상에서 바라본 모습은 구름의 거울 역할을 하듯 연한 하늘색 모습을 보여주었고, 길 옆에서는 조금 더 가까이서 자기를 바라봐달라며 진한 파란 물을 찰랑거렸다. 그리고 흐렸던 하늘에 햇빛이 모습을 드러내자 숨겨져 있던 보석이 나타난 듯 반짝이는 물빛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황룡을 따라 하산하는 길은 비교적 수월 했지만 서두를 것 없기에 벤치에서 쉬어가기로 했다. 엄마는 힘들 테니 좀 누워 있으라며 무릎을 내어주셨다. 초등학생 이후 처음으로 엄마의 무릎에 내 머리를 올렸는데 세상 편안한 기분이었다. 강렬한 햇살이 나무 사이로 내려와 서늘한 기운을 잡아주었고, 맑은 공기가 어지럽던 머리를 진정시켜주었다. 그때 엄마가 말씀하셨다. “사실 나는 여기에 너무 오고 싶었어, 티브이에서 봤었는데 너무 멋있는 거야! 그래서 너한테 말해주고 싶었는데 이름이 도저히 생각이 안 나서 말을 못 하였어! 그렇게 잊고 지냈는데 딸이 여기 가자고 사진을 보내준 거야! 그때 너무 기뻤어!” 엄마의 말에 나는 더 놀랐다. “그런데 왜 그때 말씀 안 하셨어요?” “그냥 너랑 같은 꿈을 꾸고 있다는 걸로 됐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 이 말을 듣자 내 눈에 눈물이 고이고 말았다.  


 엄마는 한 번도 엄마가 하고 싶은걸 말씀하신 적이 없었다. 아니, 엄마는 항상 가족이 먼저였기 때문에 말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이렇게 와보고 싶으셨던 곳인데도 내가 아프자 다시는 황룡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망설임 없이 내려가자며 나를 먼저 생각하셨 듯이 말이다. 그동안 소리 없이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셨을지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려왔다. 나는 꿈을 꾸고 목표를 가지면서 왜 엄마는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는지, 이제 내가 엄마의 새로운 시작을 이끌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아 죄송할 따름이었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 출구까지 내려오는 내내 엄마의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황룡도 이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물빛의 반짝이는 따스함이 꼭 잡고 있는 우리 모녀의 손을 감싸주었다.


 

第几次来没关系 有太多话题
비행기 처음타보는 엄마랑

 이번 중국 여행은 내 11번째 여행이다. 같은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 하지만 엄마와 함께한 청두 여행은 지금껏 여행하면서 얻게 된 것과 달랐다. 나는 생각보다 부모님을 모른다는 사실, 엄마가 황룡을 오고 싶어 하셨다는 것과 삼국지에 흥미가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것처럼 말이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아들 딸 들은 바쁜 하루 속에 부모님과 온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 사이 우리 부모님들의 손과 얼굴은 주름이 가득해지고 걸음속도가 달라져 가고 있다. 시간은 그 누구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만약 부모님과 어디를 가야 할지 모르겠다면 가까운 곳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어디를 가던지 아들 딸들이 함께라면 그곳이 곧 부모님의 꿈이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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