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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RI Dec 29. 2020

겁쟁이 쫄보 고양이 삼색이 임시보호 04

2020 코로나, 그리고 재택근무가 가져온 색다른 일상


삼색이를 돌보다 잠시 라섹수술로 며칠 집을 비운 후 집에 돌아오던 날이었다. 아직은 살짝 불편한 눈으로 카톡을 봤는데 삼색이가 탈출을 했다는 메세지가 와 있었다.


작업실에 온 삼색이는 사람이 있는 환경이 낯설고 무서워 처음에는 작은 케이지 구석에만 쪼그려 있었다. 밥을 주러 가도, 똥과 오줌을 치워주러 가도, 마치 자기는 그 자리에서 한 번도 안 움직였다는 표정으로 구석에서 쳐다만 보고 있었다. 사람이 있는 시간에는 움직이지도 않고 망부석처럼 가만-히 있다가 아무도 없는 저녁이 되면 그때서야 살금살금 움직이면서 일도 보고, 밥도 먹고, 물도 마시는 것 같았다. 고양이가 아무리 액체처럼 이리저리 유연하고, 자기 몸보다 작은 박스에 들어가 있길 좋아한다고 해도 하루 종일 그렇게 쭈그려 있으면 발 저리지는 않을지 걱정이 될 정도로 삼색이는 한 자리에만 있었다. 그 모습이 답답해 보이고, 배변패드와 같이 넣어준 모래상자에도 통 배변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여 좀 더 큰 케이지를 사서 연결해줘보았다. 밥과 화장실용 모래상자는 큰 케이지에 두고, 삼색이는 그대로 작은 케이지에 둔 채로 며칠 지내보았는데 삼색이가 얌전하게 새로운 환경을 잘 이용하는 것 같아 마음을 놓아버렸던 것이 문제였다.

이제 밥과 약을 잘 먹고 힘과 용기가 충전된 삼색이는, 작은 케이지와 큰 케이지 사이의 틈을 발견해 버린 것이다. 그 구멍을 막아보려고 올려둔 책을 넣은 박스 정도야 발로 툭툭 치면 치워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채 버린 것이다. 그리고는 고요한 밤의 작업실을 살금살금 돌아다니다가 우리가 찾기 가장 어려운 구석 중의 구석으로 숨어버렸다.


눈을 보호하기 위해 선글라스를 끼고 돌아온 나는, 작업실에 도착하자마자 안경을 벗고 작업실 친구들과 어딘가로 숨어버린 삼색이를 찾기 시작했다. 창문은 다 닫혀있어 실내에 있는 것은 확실한 것 같아 숨을만한 구석은 하나하나 다 살피며 찾아보아도 찾을 수 없었다. 한참을 이 구석 저 구석 뒤진 후, 여기는 너무 좁아서 절대 고양이가 들어가지 못할 거야,라고 생각했던 나무 소파 밑 작은 공간에 바짝 엎드려있는 (찌그러져 있다는 표현이 어쩌면 정확할지도) 삼색이를 드디어 발견했다. 우리가 발견했다는 것이 의외라는 듯, 여기서 날 꺼내지 못할 걸 장담이라도 하는 듯, 눈만 동그랗게 뜨고서는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전쟁은 사실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세상 겁 많고 사람이 제일 싫고 무서운 삼색이를 이제 어떻게 잡아서 케이지로 다시 들여보낼 것인가.


한 동안 “고양이를 부탁해”라는 집사 교양 프로그램에 빠져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 프로그램에서는 성질이 엄청 고약한 고양이가 나오기도 하고, 다른 고양이와 혈투를 벌이는 고양이가 나오기도 하고, 주인에게 분리불안을 느끼는 고양이가 나오기도 했다. 대부분은 고양이가 지내는 환경과 고양이를 대하는 집사의 태도가 바뀌면 문제가 해결되고는 했다. 그리고 예민하고 공격적인 고양이를 터치해야 할 때의 냐옹신 선생님과 미야옹철 선생님의 방법은 “담요를 덮어 눈을 가려라!”였다. TV 프로그램으로 고양이 문제 해결 솔루션을 배운 나는 삼색이도 그렇게 하면 잡힐 줄 알았다. 담요를 들고 삼색이에게 다가가자, 삼색이는 엄청난 속도로 파바바바밧하고 기어서 또 다른 구석으로 도망갔다. 책장 구석에 숨어있는 삼색이에게 담요를 덮어 잽싸게 잡아 올리고! 싶었지만 우리는 겁이 너무 많았다. 삼색이도 겁이 많았다. 삼색이는 온 힘을 다해 발톱으로 책장을 부여잡고는 절대 떨어지지 않았다. 찰나의 순간 삼색이를 잡았다,라고 느끼는 순간 삼색이는 필사의 힘을 다해 다시 도망쳤고, 싱크대 밑으로, 책상 뒤로, 에어컨 위로 올라가 삼색이는 사람의 손에 닿지 않기 위해 발톱 공격과 도망치기를 반복했다.

세 판 정도의 엎치락 뒤치락을 반복한 끝에, 엄청난 심장 두근거림만을 서로 남긴 채 휴전을 선언하게 되었다. 우리의 어설픈 몸짓으로는 삼색이를 잡을 수 없었다. 결국 병원에 전화해  SOS를 요청했더니, 카라 사무국에서 포획틀을 빌려가서 잡아보라고 하셨다. 오늘 안에 삼색이 잡기는 글렀구나,라고 생각하며 삼색이가 숨어있는 싱크대 앞에 포획틀을 설치해 보았다. 그리고 2시간 정도 흘렀을까, 아까의 전쟁이 무색하게도 삼색이는 포획틀 문이 닫히지도 않은 상태로 포획틀 안에 얌전히 들어가 있었다.(??)


이 날의 소동으로 우리는 삼색이가 사람을 정말 무서워한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거의 박쥐처럼 날아다니며 도망치는 삼색이를 보며, 사람과 가까워질 수 있을까,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마음을 열어줄 수 있는 걸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탈출극이 끝나고, 다시 케이지에 돌아와 모래 위에서 굳어버린 삼색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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