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련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RI May 09. 2021

야매채식주의자의 요리선생님

정수련의 단련일기

트위터 레시피를 보고 요리해 본 '브로콜리 찌개'. 원작 '브로콜리 찌개'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지만 맛은 있었다고 한다.



나는 야매 채식주의자다. 채식 위주의 식단으로 바꾸려고 마음먹고 시도한지는 2년 정도 되었지만, 회사 회식 자리에 가서는 소고기도 먹고 엄마가 차려준 밥상에 올라온 갈비찜도 먹는다. 내 의지로 고기를 사먹지 말자 정도의 수준이라서 내가 장 볼 때엔 고기를 안 사지만 설 연휴에 엄마가 챙겨준 냉동실 고기는 가끔 꺼내서 마라샹궈를 해먹거나 크림파스타를 해먹을 때 쓴다. 그래도 재택근무를 하면서 외식이 줄다보니 자연스레 고기를 먹는 일이 줄었다.


육식을 줄이는 것은 다른 종을 착취하지 않고 공존하는 일과,
나와 나의 소중한 사람들 또는 혹시 있게 될 지 모를 자손의 미래를
지키는 것 둘 다를 위해 필요한 일이다.
그러니 부디 모두 원래의 먹던 방식만 고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기를 안 먹고도 잘 살아온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 많이 있다.

최미랑, <섭식일기> 중에서

채식을 완벽하게 하고 있지는 않지만 주변 사람들과 육식을 줄이자는 이야기는 해보고 싶어 회사 팀세미나에서 ‘채식’을 주제로 자료를 찾다가 읽게 된 구절이다. 한 명의 완벽한 비건보다 열 명의 비건 지향의 사람들이 동물복지와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에 동감한다. 완벽한 비건이 되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비겁한 변명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양 극단에서 사람들이 서로 싸우기보다는 다양한 범주의 사람들이 사이좋게 좀 더 나은 세계를 위해 한 걸음씩 걸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죄책감이나 의무감에 사로잡히지 않고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채식을 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채식을 시작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쉽고 간편한 채식 레시피를 트위터에서 찾는다. 140자 안에 설명되는 레시피라면 부담 없이 쉽게 도전해볼 수 있을 것 같아 한두 번 시도해봤는데 성공률이 높아서 자주 해먹고 있다. 처음 시도해봤던 트위터 레시피는 '가지구이'였다. 숭덩숭덩 썰어둔 가지를 프라이팬에 기름도 두르지 않고 구운 후에 쯔유와 마요네즈만 두르면 되는, 요리라기에도 송구스러운 간단한 레시피였다. 엄마가 해주던 물컹한 가지무침만 먹다가 안주로도 안성맞춤인 가지구이를 한 번 해먹고 나니 트위터 레시피에 신뢰가 가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감자 바질 샐러드, 토마토 수프, 간장 버섯볶음국수, 두부 소보루 볶음밥, 토마토 냉파스타 등 쉽고 간편한 채식요리 레시피를 트위터에서 찾았고, 실패 없이 잘 먹고 있다. 트위터엔 원래도 맛집이나 맛있는 메뉴 리뷰가 많이 올라오고 있었고, 요즘엔 비건 트위터리안도 많아져서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문득 왜 유튜브나 블로그가 아니고 트위터에서 레시피를 찾아보는 걸까라고 생각해 보니 재료와 양을 한 번에 보기 쉬운 것이 트위터이기 때문인 것 같다. 유튜브는 전 과정을 영상으로 찍다 보니 요리를 할 때 재료와 순서가 나온 부분을 타임라인에서 찾기가 번거롭다. 블로그처럼 스크롤을 계속 내려가며 보지 않아도 되는 트위터는 요리 중간중간에도 쉽게 들여다볼 수 있고, 따로 스크랩하지 않고 검색하거나 '마음만 찍어두면' 찾기가 쉽다.

 

이렇게 익힌 채식 레시피는 밥을 면으로 바꾸기도 하고,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추가하거나 나에게 없는 재료는 과감하게 제외하면서 나만의 레시피로 바꾸어간다. 요즘 새롭게 시도했던 가장 신박한 레시피는 ‘브로콜리 찌개’이다. 브로콜리를 샐러드나 파스타에 넣어서 양식 느낌으로만 먹는 게 지루했던 요리책 만드는 편집장  @ageha47 님이 만들어낸 고춧가루가 들어간 한국식 브로콜리 요리법으로, 국물이 아주 시원하다. 처음에 요리했을 때는 브로콜리를 너무 많이 넣어 남겼다가 나중에 먹을 때 다시 끓였더니 물러져서 브로콜리의 아삭한 맛이 사라져버렸다. 브로콜리와 같이 넣었던 양배추, 봄동, 두부, 버섯도 국물을 잘 내는 것 같길래 다음번에는 아예 브로콜리를 빼버리고 쌈 배추, 두부, 팽이버섯만 넣고 같은 양념으로 끓여 보았다. 브로콜리 찌개와는 맛이 살짝 달랐지만, 같은 양념 베이스로 이렇게 만들어 먹으니 또 색다르게 먹을 수 있어 좋았다.


트위터 채식 레시피는 채식 요리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춰주고, 가볍게 시도하면서 작은 성공의 경험으로 채식을 계속 이어나가게 하고 있다. 어쩌다 보니 트위터 예찬론으로 마무리가 되는 이상한 분위기인데... 트위터에서 좋아하는 식재료의 레시피로 검색해서 마음에 드는 레시피를 찾아서 요리 한 번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생활의 크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