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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루토 Jul 07. 2023

누군가 이유없이 지속적으로 나를 갈군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결점을 외면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공무원으로 일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가지고 왔다.


  2018년부터 2019년까지 1년 간 내 옆자리에서 나를 한 시도 못살게 군 사수가 있었다.


  그녀는 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과 생각을 일거수일투족 참견하고 고치려 들었다.

  그런 그녀는 내게 ‘업무’는 알려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단 한번도. 혼자 머리를 싸매다가 어쩌다가 겨우 용기내서 물어보면 냉소를 머금곤 딴청을 피웠다.


  당시 내가 의문을 품었던 것은 이것이다. 사수나 선배라는 타이틀은 왜 있는 것이며, 그녀의 업무분장에 ‘타 직원에 속하지 않는 업무’ 라는 글자는 도대체 왜 존재하는 거냐?



  내가 야근하고 있을 때, 운동을 끝낸 그녀는 어김없이 내게 카톡했다.

[플루토, 나 김밥 한 줄만 사서 내 자리에 놓아 줘.]

  그럼 나는 어떻게 했냐고? 군말없이 그녀의 저녁밥을 사다가 대령했지. 뭘 몰랐으니까!


  물론 업무시간 이외 카톡은 기본옵션이다.


  이쯤에서 누군가는 궁금해할지도.

  내가 일을 안 했거나, 혹은 못 했냐고? 묻어갔냐고? 아니, 당연히 신입이므로 처음 하는 업무들이 서투를지언정 다른 직원(그녀 포함)에게 누를 끼치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어차피 그 곳에는 신입을 책임지고 내 일을 수습해줄 이는 눈 씻고 찾아봐도 단 한명도 없었기 때문에.


  난 공직에서 6년을 일하고 퇴사했지만, 시야가 넓어진 지금 시점에 와서 생각해 봐도 그 때의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1인분은 했었다.


  그럼 그 사수는 나를 ‘가르친 것’이 아니라 ‘갈군 것’이라는 결론이 도출될 수밖에 없다. 원래대로라면 내게 업무를 가르쳐 주어야 할 사수가, 내 인신만 파괴했다.


  나는 당시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를 자책했고, 하루하루 출근하기가 너무나 버거웠다.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고 옆자리의 내 전용 cctv같은 그녀를 감당하기가 너무 힘이 들어서.


  머리가 더 크고 나니, 나는 그런 그녀에 대해 비교적 명확히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객관적인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 하며, 엄청나게 자기중심적인 기분파 인간이었다. 이는 곧 일을 못 하는 인간과 일맥상통한다.



그녀에 관해 기억나는 것 몇 가지는 이렇다.


혼자 일을 다 하는 줄 안다.


한두 달에 한 번은 인간관계와 관련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다.


혼자 엄청 진지하다가 발랄하다.(무한 반복)


  인상 깊은 사건이 하나 있다. 그녀는 개인 사정으로 사무실에서 오열을 한 적이 있다. 옆 부서까지 울음소리가 다 들리도록. 다른 직원들은 곤란한 표정으로 그녀를 달랬다.


  그 장면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단 하나였다. '뭐 때문에 우는진 관심 없고, 시끄러워 죽겠다. 제발 나가서 울면 좋겠다.' (나는 그녀를 그만큼 싫어했나 보다)


  이 일화만 봐도 알겠지 않는가? 얼마나 감정적인 인간인지.


내가 생각하는 당시 그녀의 일하는 방식은 이렇다.


  그녀는 항상 일을 해결하지는 못할지언정 키우고, 자기 선에서 끊어내지 못하며, 그러니까 일이 많아질 수밖에 없고, 그런 자신의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항상 예민하다.


  자기가 일을 못 하니까 좀처럼 잘 풀리는 게 없고, 만만한 후배나 바보같은 팀장에게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혹시 지금도 자신의 감정을 애꿎은 누군가에게 그런 방식으로 해소하고 있진 않은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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