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다 (2020)
짜파게티 먹을래요?
서울 여의도의 한 서민아파트.
준우(유아인)가 끓는 물에 짜파게티 면을 넣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시각, 건너편 동에 사는 유빈(박신혜)도 끓는 물에 짜파게티 면을 넣고 있는데요, 특이하게도 두 사람은 아파트 거실에서 가스버너를 이용해서 조리를 하며 산악등반용 무전기로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라면은 끓일 줄 아냐'는 유빈의 구박성 질문에 '라면 못 끓이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반박성 대답을 하는 준우. 아니 근데, 아파트 맞은편에 살고 있으면 직접 만나서 함께 라면을 끓여 먹을 것이지 왜 각자의 집에서 따로따로 라면을 끓이고 있나 의아하죠? 그 이유는 바로 그들이 살고 있는 집 바깥 세상엔 좀비들이 득시글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로 인해 좀비가 창궐한 세상에서 어쩔 수 없이 집안에만 고립된 지 20일째. 외로움과 배고픔에 지친 준우가 삶을 포기하려던 순간, 건너편 아파트에서 그를 지켜보던 유빈이 준우를 살렸고, 그 후 두 사람은 드론과 산악용 밧줄을 이용하여 서로가 가지고 있는 음식을 나눠먹는 특별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아끼고 아껴왔던 짜파게티를 끓여먹기로 한 거죠. 물론 각자의 집에서 따로 따로 말입니다. 그런데 짜파게티 물 양 조절에도 두 사람의 취향은 정말 다릅니다. 준우는 '나중에 밥도 말아먹게 라면물을 졸여 자작자작하게' 끓여먹는 편인데 유빈이는 '누가 짜파게티에 밥을 말아 먹냐'며 이해불가 리액션을 취합니다.뜻밖에 반응에 잠시 삐쳤던 준우는 그러나 금새 화가 풀린 듯 또 다른 취향 한 가지를 더 얘기하는데요, 그건 바로 '짜파게티 면에 너구리 딱 넣어서 먹는 짜파구리'였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방금 전 짜파구리 면에 너구리 면을 투여하던 유빈이 뜨끔해집니다. 식량이 없는 준우에게 짜파게티를 보내주긴 했지만 차마 너구리까지 보내줄 순 없었던 유빈이는 시침 뚝 떼고 '많이 드시라'고 딴청을 부립니다. 그러자 '많이 먹을 거'라고 응답하는 준우. 그후 두 사람이 짜파게티와 짜구리를 먹는 장면이 영화 속에 나오지는 않는데요, 서로의 입맛은 좀 달라도, 비록 같은 식탁에 마주 앉아 얼굴 보면서 먹진 못해도, 그날 두 사람이 먹은 짜파게티와 짜파구리는 그들이 지금까지 먹어본 짜장라면 중에 가장 맛있었을 것입니다.
영화 <#살아있다>(감독 조일형)는 원인 모를 바이러스로 좀비들이 창궐한 세상에서 아파트에 홀로 고립된 두 남녀의 절박한 생존기를 그린 스릴러 영화입니다.
영화 <살아있다>의 원작 시나리오 제목은 '혼자'라는 뜻의 #Alone이었는데요, 조일형 감독이 '살아있다'는 뜻의 "#Alive"로 바꾼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영화 초반 주인공인 오준우는 집 밖에는 무서운 좀비들이 득실거리고 집안에는 식량이 별로 없다는 상황 때문에 너무나 힘들어했는데요, 며칠이 지나자 두려움과 배고픔보다 준우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는 지독한 외로움이었습니다. 가족들마저 영원히 집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자 준우는 더 이상 살아남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파트 맞은편에 누군가 살아있다는 사실은 삶을 포기하려던 준우에게 새로운 삶의 희망을 갖게 해 주었습니다.
오준우) 유빈 씨 아니었으면 저 여기 없었을 거예요. 죽을 뻔했으니까, 아니 죽으려고 했으니까.
준우의 이 대사엔 이 영화의 메시지가 담겨있는데요, 준우는 '혼자' 살아남는 데는 실패했지만 유빈과 '같이' 살아남으려고 결심하면서부터 삶의 의지를 불태우고 변화해 나가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을 떨치고 용기를 내서 집밖으로 나가 좀비들과 싸워가며 먹거리를 구해왔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혼자만 먹지 않고 유빈과 같이 나눠먹는 준우. 물론 그것은 준우의 목숨을 구해주고 먼저 소중한 식량을 나눠주었던 유빈으로부터 배운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절박한 상황이라 해도 너무나 구하기 힘든 음식이라 해도 그것을 혼자만 먹지 않고 나의 말을 들어주고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상대방과 같이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사람. 바로 그런 사람만이 진정으로 "#살아있다"라는 해시태그를 달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이영화가 우리에게 전하려는 희망의 메시지가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