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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지 May 12. 2021

오뚜기를 먹으며 받았던 따듯한 고향의 위로

변해버린 일상 속 변하지 않는 우리의 맛


 2019년 가을날, 홀로 캐나다 밴쿠버로 어학연수를 떠났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족의 품을 떠나 느껴본 자유에 마냥 설레고 즐거웠죠. 홈스테이에서 매일 아침으로 먹게 된 샌드위치, 점심으로는 파스타, 저녁에는 맥주 한 잔과 함께 외국 친구들과 먹은 햄버거까지.. 처음에는 이러한 식문화가 새로웠고 나름 잘 적응을 했기에 제 입맛이 현지화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캐나다에서의 생활이 적응될수록 한국에서의 익숙한 생활에 대한 갈증이 커져갔습니다. 그중에 가장 그리웠던 것은 한국의 맛과 향, 따뜻한 집밥이었습니다. 그때 마침 엄마께서 택배 상자에 차곡차곡 담아 보내주신 정성들을 잊지 못합니다. 택배를 열고 마주한 종류별로 쌓여진 오뚜기 컵밥들, 쇠고기미역국 라면, 혹시나 고추장마저 없을 까 봐 밥과 비벼 먹으라고 보내주신 볶음 고추장, 한국 과자들을 보고 눈물이 나리만큼 좋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엄마가 직접 밥을 해주지 못하니까 컵밥을 종류별로 사 보냈으니 좋아하는 맛으로 챙겨 먹으렴”의 쪽지도 상자 속 한 켠에 자리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눈길도 잘 가지 않던 컵밥이 이렇게 감동적인 음식일 줄이야. 평소 아침에는 학원에 가기 전 간단하게 빵에 잼을 발라 먹고 부랴부랴 나가기 바빴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날 설레는 마음으로 일찍이 일어나 한국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던 ‘제육덮밥’ 컵밥을 꺼내 먹었습니다. 어쩜 이렇게 따뜻하고 맛이 있던지 엄마께서 학교 가기 전에 해주셨던 따뜻한 집밥이 생각났습니다. 그동안 간편식 제품들은 맛과 퀄리티가 떨어질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러한 편견이 싹 사라지게 된 계기였습니다. 이런 한국의 깊은 맛을 외국 친구들에게도 소개해주고 싶어 점심시간에 가져가서 나누어 먹었습니다. 컵밥 20종이니 한국에서 맛있다 하는 음식 종류들은 다 있었죠. 진짬뽕밥, 톡톡김치알밥, 불닭마요덮밥 등 매운맛의 컵밥이 많아 외국 친구들이 먹기에 맵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혀에 부채질을 하고 침을 꼴깍 삼키면서도 맛있게 잘 먹는 모습에 괜시리 뿌듯했습니다. 외국인 친구들은 특히 불닭마요덮밥이 신기하면서 맛있는 맛이라며 좋아했고, 제 입맛에는 ‘참치마요덮밥’이 잘 맞았습니다. 참치 소스에 고소한 마요네즈 그리고 그 위에 살포시 얹어진 야채 이 세 박자가 고루 갖춰진 맛은 마치 타지 생활을 하면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공에 맴돌던 저의 입맛을 돌아오게 하는 그런 맛이었습니다. 정말 감사하게도 밴쿠버 다운타운에 위치한 한인 마트에서 비싼 가격이지만 한국 컵밥들을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가격은 한국의 두배였지만 다른 어떤 음식보다도 소중하고 따뜻했습니다. 마트에서 종종 참치마요덮밥을 사 먹으며 맛있게 즐기는 저만의 법을 터득해 재미를 찾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집 가는 길에 산 영혼의 단짝 떡볶이와 함께, 내일은 비닐장갑으로 뭉쳐서 만든 참치마요 주먹밥을 아침으로, 또 어떤 날은 외국인 친구의 홈파티에 가져가 먹으며 재미와 추억을 나눴습니다. 어느새 컵밥은 한국 친구들에게는 고향을 추억할 향수가 가득한 음식이, 외국 친구들에게는 한국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음식이 되었습니다.


엄마가 보내주신 쇠고기미역국 라면을 꺼낸 건 한국 친구의 생일날이었습니다. 요리에 문외한 저는 친구에게 미역국을 끓여주고 싶은 마음은 한 가득이었지만 만들어 본 적이 없어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때 마침 엄마가 보내주신 쇠고기미역국 라면이 떠올랐습니다. 마치 부엌 찬장에서 MSG를 꺼내 듯이 엄청난 걸 발견한 기분이었죠. 빨간 국물의 라면에 익숙한 저는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웬걸 기대 이상의 맛이었습니다. 엄마께서 생일날 아침에 끓여 주신 미역국의 맛을 그대로 재현한 맛이더군요. 이것이 라면계의 혁명인가요? 따뜻한 미역국 국물에 꼬들꼬들한 라면 면발, 그리고 라면의 재료라고는 믿을 수 없는 과분한 쇠고기의 존재까지 그야말로 환상의 궁합이었습니다. 맛있게 먹는 친구의 즐거운 표정을 보고 안도감에 웃을 수 있었고, 친구도 타지에서 먹는 미역국의 맛에 감동을 했던 행복한 추억입니다. 친구는 아직도 타지에서 생일날 먹었던 미역국라면의 맛을 잊지 못한다고 하네요. 이토록 간단하지만 알찬 음식이 또 있을까요?


요즘 저희 가족은 새로운 취미를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 19로 멈춰버린 일상도 잠시, 아버지께서 집에 계시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주말마다 맛있는 음식들을 싸 들고 캠핑을 떠납니다. 가족과 함께 있어서 안전하고, 모닥불 앞에선 자연스런 이야기 꽃이 피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캠핑을 즐기며 지친 일상을 달랩니다. 오손도손 고기를 구워 먹으며 술을 한 잔하고 난 다음날 아침, 쓰린 속을 달래는데 쇠고기미역국 라면과 컵밥만 한 음식이 또 없더군요. 엄마가 미역국 라면을 끓이시면 저는 옆에서 참치마요덮밥을 동글동글 먹기 좋게 주먹밥으로 만듭니다. 엄마가 끓여 주시는 미역국라면은 괜히 더 따뜻한 맛이 느껴지고, 자연을 보며 먹으니 더욱 건강한 맛이 납니다. 음식과 자연이 만나면 참 매력적인 취향이 만들어지는 것 같네요.


저에게 오뚜기 간편식은 맛있는 음식에 따뜻함과 정성을 한 스푼씩 넣은, 그런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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