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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와 나, ChatGPT와 나

이미 온 미래, '인간의 한 수'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by 버들

대학교 3학년, 전역하고 첫 학기였을 거다. 다녔던 학교에는 30~40명씩 묶어서 반처럼 만드는 ‘팀’ 제도가 있었다. (담임선생님처럼 팀 교수도 한 명씩 정해 주는 식이다.) 당시 우리 팀 담당은 인공지능, 그중에서도 딥러닝을 전공했다는 전산학 교수님이었다. 그땐 인공지능이 뭔지 다들 잘 모를 때였고, 나 또한 딥러닝을 전공하셨다는 이야기만 듣고서, ‘HER’라든지, ‘엑스 마키나’ 같이 로봇 나오는 영화 몇몇을 떠올렸을 뿐이었다. 우연찮게도 첫 팀모임 날이 알파고와 이세돌의 첫 대국이 있는 날이었다. 서른 명이 넘는 학생들과 교수님과의 첫 만남이니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고, 누군가 손을 살포시 들고 이렇게 얘길 했던 것 같다. 교수님, 알파고랑 이세돌이랑 붙는 거 누가 이길까요?


교수님은 확신에 찬(적어도 나는 그렇게 들었다)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알파고가 이기려면 30년은 걸리리라고 봐요. 그 말이 끝나고 3시간 뒤, 알파고는 이세돌에게 불계승(바둑에서 계가, 즉 집 세기를 하지 않고 승리하는 것)했다. 결과를 보고선 놀랐다. 무려 교수님(!)이 예상한 결과가 이렇게나 빗나가다니. 30년이 아니라 3시간밖에 안 걸렸다니. 교수님 부끄러우시겠다. 이런 류의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헛웃음이 지어지지만, 당시 분위기로서는 교수님의 의견이 중론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바둑과 인공지능, 분야를 가리지 않고 거의 모두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지 못할 거라 예상했다. 이세돌 본인도 5:0 완승을 확신했으니 더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첫 대국이 끝나고 충격과 공포에 빠진 인간(?)은 우려 담긴 뉴스를 쏟아냈다. ‘인공지능의 충격적 승리’부터 ‘인간이 기계와의 대결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에 이르기까지 충격과 공포에 휩싸인 기사들이었다. 기시감이 들지 않는가? 그건 지금도 여전히 나오는 기사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것을 ‘직접’ 사용하게 되었고, 그러니 영향을 받게 되었고, 이제는 분리할 수 없게 되었다는 차이는 있겠지만.. 여하튼 그때도 있던 “인공지능이 30년 안에 일자리의 절반을 대체할 것”이라는 기사를 보고서는 교수님의 호언장담(?)을 떠올렸다. 그리고선 이렇게 생각했다. 아마 그렇게 오래 안 걸릴 걸?



ChatGPT에게 이 글을 모조리 넣고, 썸네일을 만들어 달라 했다.



바둑에는 딱히 흥미가 없지만, 인공지능과 그것이 가져오는 변화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아주 많은 편이다. 이 시대를 사는 누가 안 그렇겠냐 싶겠지만, 자기는 인공지능 쓸 일이 없고 자기 일이 아니라 여기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다. 당신도 그런가? 그렇다면 장강명 작가의 <먼저 온 미래>를 읽어 보길 권한다. <먼저 온 미래>는 알파고와 이세돌 대국 이후 바둑계에 일어난 변화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 변화를 통해 내가 몸 담고 있는 분야나 산업의 미래가 어떨지 추측해 볼 수 있다. 실제로 장강명 작가는 그 변화들을 끊임없이 ‘문학계’에 대입한다. 하루에 소설을 100개씩 쓰는 인공지능이 나타난다면? 베스트셀러의 모든 특징들을 조합해 베스트셀러와 유사한 책들을 수없이 만들어내게 된다면?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베스트셀러가 된다면? 자기 정체를 숨기고 유수의 문학상을 휩쓴 뒤 인공지능임을 공개한다면? 바둑계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희망(?)은 있는가? 인공지능이 바둑계를 주름잡은 이후, 여성 리그와 시니어리그가 더 주목받게 됐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분명하다. 실력만 놓고 보면, 인간은 인공지능을 절대 이길 수 없다. (이세돌을 비롯한 프로기사들의 평가가 그렇다.) 인간에게만 있는 건 뭘까? 창의성을 많이들 떠올리고는 하는데, 창의성이라는 것을 정의하기엔 그 개념이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뚜렷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20명이 넘는 바둑 프로기사를 인터뷰한 장강명은 이를 ‘서사’로 정리한다. 시니어 기사들의 경우 집중력이나 기억력의 저하로 인해 남성 프로기사들에 비해 실수가 잦은 편이고, 여성 기사들 역시 비교적 공격적인 게임을 하는 편이기 때문에 실수가 많이 나온다. 합리적으로 접근하면 둬서는 안 될 수를 두게 된다는 것이다. 서사는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본인의 실수를 깨닫고 느끼는 좌절, 표정으로 드러나는 당혹감, 그럼에도 바로잡는 마음, 심지어는 그것을 극복해 내고 승리를 거머쥐는 강인함. 이 모든 것은 인간만이 가지고, 또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승리를 위해 설계된, 합리성의 총체인 인공지능이 서사를 만들기란 여간 쉽지 않을 것이다. 유튜브 ‘최성운의 사고실험’에 출연한 황석희 번역가 또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비합리성’과 ‘불합리성’이라 말한다. 인간이 불합리한 존재이기 때문에 낼 수 있는 결과가 분명하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인간이 양(Quantity)이나 합리로 인공지능을 이길 수 있는 시대는 지난지 오래다. 의도적인 오역이 필요한지도 모르는 일이라는 말이다.



이세돌이 불계승한 알파고와의 4국에서, ‘신의 한 수’로 평가받는 이세돌의 78수는 알파고 관점에서는 둘 일이 없는, 즉 ‘비합리적’인 수였다. 알파고가 그 수를 둘 가능성을 계산해 보니 0.007% 였다고 한다. 바둑의 신 알파고도 두지 않을 수이니 말 그대로 ‘신의 한 수’일 것이다. 나만 만들어갈 수 있는 서사는 무엇일까. 나란 인간이 합리적이어봤자 얼마나 대단히 그럴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내가 스스로에게 용인해야 할 불합리가 조금은 더 넓어져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요즘의 나를 사로잡고 있다.


글을 쓰다 보니 생각이 나, 교수님 이름을 구글에 검색해 보았다. 아직 학교에 계시네. 가히 인공지능의 시대답게 여기저기 강연도 다니고 하시는지, 이름과 사진이 검색 결과창 여기저기 흩날린다. 역시 사람은 꾸준히 하고 봐야 해. 요즘에도 첫 팀 모임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할 수 있을까요?” 같은 질문을 받으면 여전히 당당하게 답하고 계실까? 그보다는 ChatGPT 돌려 과제하는 학부생들 리포트 채점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계시겠지… 어쨌든 내게 교수님은 서사로 남았으니 오래 기억되리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인간의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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