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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하 Jul 04. 2020

반추하는 INFP

나의 일주일 소심하게 돌아보기

먹구름 가득한 일주일이었다.

지은 죄가 많아 부끄러운 태양은 회색 사이로 숨다 사색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저지른 잘못이 나도 적지 않다.

아니, 사실 잘못이라면 셀 수 없이 많다.


나의 첫째 잘못은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집에만 박혀있던 것.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고독이 지나치면 우울에 치이고 만다. 그것은 정신부터 시작해 서서히 신체까지 잠식하는데, 신기하게도 블루로 물드는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다. 내 열등함을 인정하고 자존심을 내려놓으면 비참한 꼴이라도 눈물이 토닥여준다. 차가운 것 같다가 금세 포근해지는 그 말랑한 기분을 좋아한다. 꼭 노란색 스펀지가 된 느낌이랄까. 다만 이 과정이 습관으로 자리 잡는다면, 언젠가 나에게 남은 친구는 외로움이 유일할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한주는 달콤한 우울에 푹 빠져 산 일주일이었다.


오히려 나답게 존재한 시간이었다 해야 하나?


두 번째 잘못은 매운 음식을 너무 많이 먹은 것.


원래 청양고추도 먹지 못하는 자타공인 '맵찔이'였던 나는 홍콩에서 접한 사천요리를 시작으로 '마라 사랑'을 쭉 이어왔다. 청양 고추는 아릿한 고통의 매운맛이라면, 마라는 진한 향과 함께 한자 그대로 얼얼한 매운맛으로 혓바닥을 간질간질 마비시킨다. 더 이상 고통을 느낄 수 없는 혀는 끊임없이 음식을 맞는데, 몸은 정직한 양의 땀을 쏟으며 내가 매운 국물을 마시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특히, 매운 우육면에 새우 볶음밥을 곁들여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 쌀알에 적당히 밴 식용유의 느끼함, 고추기름과 두반장의 알싸함은 멈출 수 없는 폭식 기관차에 쉴 새 없이 더해지는 연료 같은 것이다.

매콤 얼얼 우육면이 그리운 날

내가 이렇다. 지난 한 주간 저지른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는 시간에, 먹는 이야기를 신나게 늘어놓는다. 여하튼 정리하자면, 이번 주에만 라 샹궈를 세 번, 매운 갈비찜을 두 번, 진짜 매운 낙지볶음을 한번 먹었다. 21세기 현대인들은 매운 음식 섭취를 적당히 조절해야 하는데, 우선 먹은 다음날 후폭풍이 상당하다. 또, 매운 음식은 보통 기름진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위장과 혈관에 각종 질환을 유발한다. 매운 게 얼마나 맛있는데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라면 충분히 감수할만한 것 같다고?


격한 동의를 보낸다.


마지막 잘못은 새벽에 잠들어 한낮에 일어난 것.


전역에 즈음하여 한 가지 다짐을 했는데, 건강한 취침 패턴을 유지하자는 것이었다. 매일 반복 숙달한 극단적 새나라 어린이 수면법 덕택에 전역한 뒤에도 2주 동안은 시간을 어느 정도 지킬 수 있었다. 21시만 돼도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06시만 되면 눈이 절로 떠졌으니. 이대로라면 아침형 인간도 도전해볼 만하겠다 싶었다. 물론 시차 적응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대략 15일 정도?


새벽은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어 넘치는 감성을 글로 녹아내기 최적인 데다가, 인터넷은 흥미로운 것들이 넘쳐나 24시간이 모자라다. 다시 말해, 해가 떠있을 때 할 수 없던 것들을 새벽은 가능하게 한다. 아침잠은 또 어떤가. 8시 해가 뜬 것을 확인하고 다시 눈을 감는 것은 엄청난 해방감을 선사한다. 알람이 주는 기상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나 내 아침의 오롯한 주인이 되어보는 것.


이것이야 말로 워라밸로 가는 의미 있는 첫걸음 아닐까?




이쯤 되면 이 글은 절대 자기반성을 위한 것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보기보다 자기애가 강해서 반성보다는 합리화를 좋아하는 편이다. 누구와 어떤 음식을 먹고 몇 시쯤 잠들지를 다른 기준에 맞춰 계획한다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해 보이기도 한다.


뭐, 그래서 결론은 난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다. 절대 내가 잘났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나로 살았을 뿐. 이 글이 반성이 아닌 반추로 시작하는 도 같은 맥락에서다.


안 그런 척 해도,

다음 주가 내심 기대되는 INFP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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