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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뚱이 Nov 19. 2023

오손조손 여행기-목포 2

여행을 통해 알게 되는 것들


할머니의 재발견_엉뚱하지만 착한 할머니



여행을 하다 보면 평소 잘 알고 지낸 사람의 몰랐던 면모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을 제대로 알고 싶다면 그 사람과 여행을 함께 가보라는 말도 있다. 나 또한 목포 여행을 통해, 할머니의 숨겨졌던 모습을 보게 되면서 그 말에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할머니는 mbti를 검사해 본 적은 없지만 I, S, J. 이 세 가지는 확실하지 않을까 할머니 관찰자이자 기록자로서 감히 99퍼센트 확신한다. 할머니는 내향적인 현실주의자로, 쓸데없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으신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할머니 기준에 쓸데없어 보이는 나의 소중한 물건들이 종종 사라지곤 했다.) 그밖에 장을 보러 가실 때면 삐뚤삐뚤 글씨로 사야 할 물건들, 예를 들어 무시, 계란 등등을 쪽지에 미리 적어두시고, 내일 할 일은 전 날밤에 미리 계획하신다. 평소에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라는 주의를 지닌 내향적이고 계획적인 이성주의자 할머니에게 엉뚱한 면모를 이번 여행에서 발견한 것이다.


카페에서 나와 목포 평화공원에 갔는데, 무섭다며 바다에서 멀찍이 앉아 계시던 할머니께서 한참을 바다를 멍하게 보시더니 “저거… 사람 아니냐?”라고 심각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엔 부표가 둥둥 떠있었다. 동그란 부표였는데 이끼 같은 게 머리카락처럼 쌓여있어 흡사 사람 머리처럼 보이긴 했다. 급기야 할머니는 바다 가까이 다가가시고는, 그 부표를 향해 “거기 물어 빠졌어요? 빠졌으면 말을 해봐요. 내가 구해줄게”라고 외치는 것이었다. 아무리 봐도 부표인데, 할머니는 엉뚱하게도 그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심지어 전혀 손이 닿을 리 없는 멀리 떨어진 그 부표에 손을 내밀기도 하셨다. 사람이 아니고, 바다에 떠 있는 부표라는 우리의 말에도 할머니는 미심쩍어하시다가 조금 시간이 지난 후 납득하시고 다시 멀찍이 떨어져 있던 본래 자리로 가셨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양 시치미를 떼시고. 우리 할머니는 생각보다 엉뚱하고, 착했다. 바다를 향한 무서움을 극복하고 곤경에 처한 낯선 사람(같은 부표)을 구하기 위해 허둥지둥 다가가실 정도로.


- 오션뷰와 욕조, 집에는 없는 것


부표 사건(?)을 겪고, 한참 바다 구경, 사람 구경을 하다가 저녁 먹고 숙소로 갔다. 행정구역 상 영암에 속한 곳이었지만, “목포, 참 좋다”는 문구가 있을 정도로 목포를 방문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다. 할머니와 여행을 한다는 것은 집에서 평소에 할 수 없는 것들과 할머니께서 하실 수 있는 것들의 교집합을 찾는다는 것과 같다. 그 미묘한 줄타기에는 항상 호텔이 큰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믿고 가는 호텔. 집에서 볼 수 없는 오션뷰와 몸을 담글 수 있는 욕조, 거기다 침대에 언제든지 누울 수 있다는 점이 금상첨화이다. 바깥에선 내내 긴장모드이다가 창밖으로 바다를 보며, 우리도 할머니도 짐과 함께 마음도 푼다. 시내와 연결하는 통행량이 많지 않은 다리와 운행을 안 한 지 오래된 것 같은 배 몇 척이 떠 있는 고요한 바다는 약간은 쓸쓸한 느낌을 주기도 했지만, 텔레비전과 웃음소리로 금방 적막함이 채워졌다. 집에서 보던 주말 드라마를 호텔에서 보니 색다르면서 더 빨리 익숙해지는 기분이었다. 호텔 구경하고, 편의점 구경하고, 사진 찍고, 뒹굴거리고, 충분히 충전했다. 바다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등, 이젠 호텔을 갈 때마다 내심 기대하게 된, 그리워질 그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아침이 시작됐다.



-산 넘고 바다 건너, 해양케이블카


목포의 여행의 둘째 날이자 마지막 날은 유일한 관광 일정이 잡혀 있었다. 바로 해양케이블카. 보통 관광객들을 겨냥한 관광지들의 경우, 정작 현지인들은 이용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해상케이블카 같은 경우에는 택시 기사님께서도 여러 번 타봤다고 하셔서 내심 기대가 되었다. 유달산도 지나고, 바다도 볼 수 있는 산 넘고 바다 건너 풍경이었다. 해양케이블카는 처음이라 살짝 긴장했는데, 우리끼리만 <목포는 항구다> 노래도 틀어보면서 보는 풍경은 짧은 평화였다.



빵사냥과 귀환


케이블카 왕복 후엔 목포 유명한 빵집으로 빵사냥을 갔다. 아이스크림도 먹고, 빵도 사고. 할머니가 첫째 날에 맛있게 잡수셨던 콩국수 콩물도 포장해 오고, 최대한 가볍게 하고 온 가방은 금방 꽉 찼다. 여행의 수확물은 두 번째 여행이다. 여행은 여운은 이어진다. 어렸을 때는 눈이 휘둥그레졌을 정도로 봉지 가득 빵을 사 오고, 낙지 요리 먹고 남은 걸 포장해서 목포의 맛은 집에서도 즐겼다. 여행지에서 먹는 것도 즐거웠지만, 여행지에서 가져온 음식들을 편안한 집에서 먹는 것은 또 다르다. 이상하게도 어떤 때에는 집에서 뭘 먹어야 진짜 맛있게 느껴질 때가 있다. 비록 현지에서 먹을 때의 따끈하고도 생생한 향은 없어도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기분으로 오순도순 모여서 먹는 맛은 여행의 두 번째 기쁨이다.  



별 특별할 일 없는 일상 같은 여행이었지만, 그 빈자리들은 에피소드들로 채워졌던 목포 여행. 이상하게 전주 여행보다도 더 기억이 나지 않는 목포 여행. 기억은 시간을 기준으로 내림차순 되는 게 아니라 강렬함을 기준으로 재정렬되는 것 같다. 하지만, 강렬하지 않다고 해서 더 좋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잔잔하고 평화로운 여행도 필요하다. 삼삼한 것들이 주는 기쁨이 있다. 목포 여행하면 떠오르는 것은 소소한 에피소드와 맛들. 남도 맛 지역답게 맛있는 음식들의 향연. 콩국수, 낙지 요리, 빵들 무엇보다 할머니가 정말 맛있게 잡수셔서 보람찼던 여행이기도 하다.


여행은 사실 먹는 것, 보는 것, 쉬는 것 등 여러 가지 여행을 즐겁게 하는 요소 중에 하나만 충족되어도 충분한 것 같다. 가끔은 모두 다 누리겠다는 욕심에 오히려 여행을 의무로 만들어 재미를 소거하는 것 같다. 오히려 기대가 없어서 그런지 잘 다녀왔던 여행이기도 하다. 바다에서의 평화, 케이블카에서의 평화. 사실 여행을 가기까지 글에 다 담지 못한, 우여곡절이 많지만, 역시 다녀오고 나선 다녀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여행은 이어달리기처럼 그다음 여행을 위한 계기가 되어준다. 여행은 그다음 여행을 부르고, 목포 여행은 1년 후 부산 여행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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