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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뚱이 Dec 10. 2023

오손조손 여행기_부산1

부산 여행기_따뜻한 부산

올해 가족여행은 부산!

어느 새 겨울과 함께 연말이 다가왔다. 늦가을부터 찾아온 추위는 모든 걸 꽁꽁 얼려놓을 기세다. 모든 것이 움츠러들고, 시간마저도 수축하는 것 같은 겨울. 이렇게 추운 날들엔 자연스레 따뜻한 것들을 찾게 되는데, 따뜻한 기억도 마찬가지다. 따뜻하다 못해 뜨거움을 느꼈던 올해 여름 가족 여행은 소소하지만 훈훈한 기억을 가득 품고 있어 꺼내볼 때마다 입꼬리 근육이 나도 모르게 풀어지는 기분이 든다.


2021년부터 시작된 이래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점점 발전하는 가족여행, 올해의 여행지는 부산이었다. 올해 6월, 여름 휴양지 하면 떠오르는 부산에 조금은 이른 휴가를 다녀왔다. 부산은 연고가 거의 없었지만, 나는 회사 동기 모임, 친구와 여행 등으로 부산에 다녀온 경험이 있던 터라 나름 익숙했고, 좋은 인상이 남아 있어서 적극 찬성이었다. 누가 먼저 부산을 제안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큰 이견 없이 우리나라 제2의 수도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이번에도 목포 여행처럼 버스를 타고 세 가족이 출동했다. 이제 익숙해진 우등 좌석 세 자리를 나란히 점령한 모습. 사상 터미널에 도착해 어김없이 일단 화장실부터 온 가족이 출동한 후 따로 볼일이 있어 가족들과 갈라졌다. 내가 지하철을 타고 약속 장소로 갈 동안, 할머니와 닭은 내가 부산 지인 찬스를 활용해 얻은 맛집 정보들을 바탕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가족 중 길잡이로서 인간 내비게이터를 자처한 터라 약간은 걱정이 됐다.




 광안리에서 다시 만나다

몇 시간이 지나고, 잠시 흩어졌던 가족이 상봉한 회합의 장소는 광안리. 할머니와 닭은 무사히 광안리에서 식사를 마치고, 해변이 보이는 카페에 앉아 있었다. 허둥지둥 광안리를 헤매다 카페테라스에 있는 할머니와 닭을 발견했는데 평소에 볼 수 없는 광경이라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가족을 밖에서, 그것도 낯선 공간에서 만날 때 더 반가운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할머니는 (할머니 기준) 자유분방하고 젊음이 가득한 여름 해수욕장의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그동안 봤던 여느 바다보다 가장 큰 바다의 규모에 신이 나 보이셨다. 앉을 곳이 많다는 점만 해도 합격 목걸이를 충분히 받은 광안리에서 사진을 찍으며 한낮을 즐기고, 해가 주춤해졌을 무렵 본격적인 관광에 돌입했다.



미포와 지팡이 만남


본격적인 관광이란 스카이캡슐 탑승. 택시 내린 곳에서 스카이캡슐 미포 정거장까지 조금 걸어야 했다. 조금이라도 걸을 일이 생기면 우리는 조마조마하다. 할머니를 업어드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우리 집 몸무게 최고봉), 우리에겐 정말 코앞인 거리도 할머니에겐 천 리 길이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마조마해하며 매의 눈으로 최대한 중간중간 앉을 거리를 찾아가며(할머니는 웬만한 것들을 앉을 거리로 만드는 능력을 갖추고 계신다) 온 가족이 힘겹게 앞으로 나아간다. 할머니의 지팡이가 더 힘을 내길 응원하며 걸음과 걸음 사이 간격들을 생생히 느꼈다. 다가오는 케이블카 예약 시간에 약간은 초조함을 느꼈다.


미포정거장 가는 길 바로 옆엔 아기자기한 동네가 있었다. 관광지에서 으레 하듯, 여기서 주민으로 사는 일상은 어떨까 가몁게 상상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는데, 맞은 편에서 익숙한 소리가 났다. 젊은이가 많은 관광지에선 잘 들리지 않는 지팡이 소리. 맞은 편에서 한 고령의 할머니께서 지팡이에 의지한 채, 하지만 비교적 꼿꼿하게 걸어오고 계셨다.


아니나 다를까, 지팡이는 지팡이를 알아봤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반가운 대화의 기류가 자연스럽게 흘렀다. 지팡이 하나면 아주 오랜만에 만난 이웃 혹은 자매가 되기 충분했다. 할머니와 미포 할머니는 손까지 마주 잡아가며 다정스럽게 대화를 나눴다. 미포 할머니께선 할머니보다 꽤 연상(94세)이셨는데, 내가 궁금했던 그 일상을 살고 계신, 미포 지역 주민이셨고, 산책을 하고 계신 거였다. 할머니가 점점 지치시던 차라 나는 그 의외의 만남이 반가웠다.


두 분은 원래부터 알고 지내던 것처럼, 서로 반갑게 건강히 지내라고 덕담을 나누며 헤어졌다. 할머니만이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는 할머니만의 고충이 있다. 특히 더 이상 위에 어른을 찾아보기가 힘든 할머니에게 필요한 건 성님(형님=언니) 할머니들이 아니었을까. 그렇기 때문에 한참 얼라인 나는 뒤로 빠져서 할머니들끼리 회포를 푸는 시간을 흐뭇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우연이 만들고, 지팡이가 실행한 그 만남을. (하지만 헤어지고 나서, 할머니가 나지막하게 미포 할머니 춤(침)이 튀었다고 살짝 투덜거리셔서 나의 아름다운 환상이 와장창 금이 가기도..우리 할머니는 MBTI T가 아닐까…)



북적북적한 정거장과 황송한 양보

할머니는 종종 우울해하신다. 이제 죽을 날만 받아두었다고. 하지만 본인보다 더 한참 언니이신 분이 건강하고 즐겁게 살아가시는 모습을 보며 힘을 다시 얻으신 듯했다. 다시 힘차게 케이블카를 향해서 가는데… 아뿔싸.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 일요일이긴 했지만, 예약을 해놨기 때문에 서서 대기하는 시간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식은땀을 흘렸는데, 구세주 같은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로 북적이고, 노약자석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닌 대기 장소인데도, 할머니를 보시자마자 어떤 분이 자리를 양보해 주신 것. 심지어 할머니는 차례가 올 때까지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면서 여러 차례 양보를 받으며 무사히 스카이캡슐을 탈 수 있었다.




그만큼의 감사함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나도 언젠가 받은 배려를 다시 베풀 것을 다짐하며, 부산에 반할 수밖에 없었다. 택시 기사님도 그렇고, 뭔가 와일드해 보이지만, 정이 많은 곳. 아직 관광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도 아닌데, 스카이캡슐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 우연한 만남, 배려, 감사한 마음을 얻게 해줬다는 점으로도 충분했다. 이미 많은 것을 받았고, 지금까지도 그 마음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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