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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솔 Nov 13. 2020

전업맘으로 살고 싶은 이유(ft. 복직이 싫다)

여보세요,

네 여기 (직장)인데요.
내년에 복직 맞으시죠?
복직원 내러 오셔야 합니다.

두둥...


복직을 미룬 이유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예정대로라면 지난 9월에 한다던 복직을 6개월 미뤘다.
어린이집을 보내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뭔가 그 어린애를 두고 일터로 나가기엔 내 마음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왠지 아이의 등하원만큼은 여유 있게 시켜주고 싶었고, 아이의 어린이집 적응기간도 필요했고, 아직은 엄마손이 많이 갈 시기라 하원 이후에 내 체력이 받쳐주는 상태라야만 아이에게 온전히 신경을 써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친구들은 아직도 날 이해하지 못한다. 말이 육아휴직이지 육아노동이라고. 애 보는 게 왜 쉬는 거냐며, 남들은 하루빨리 복직하고 싶어서 안달인데 넌 참 희한하다며.
뭐, 나 또한 의외로 복직을 하고 나면 '진작 복직할 걸'이라며 태세 전환할지도 모르겠다마는 여하튼 지금은 이렇다.


그리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지금.
(이제 나도 우리 집 살림에 보탬이 되기 위하여 돈을 벌러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하면 정말 나가기 싫지만 일정 부분 내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라는 게 아직 남아있기 때문에 그 마음 하나로 복직을 준비하자고 다짐한다.



주부 모드가 좋았던 이유(전업맘이고픈 이유)

1. 단순한 일상의 극대화
- 직장생활을 하지 않으니 하루 24시간이 온전히 내 시간이다. 물론 육아와 가사노동을 하는 시간이 있지만 충분히 계획이 가능하고 예상할 수 있는 범위의 일들이며 반복되는 일이기에 부담이 없고 늘 릴랙스 한 상태다. 조용하고 단조롭다. 난 단순한 일상이 참 좋다.


- 굳이 또 뭐가 좋은지 하루 일상을 떠올려보았다.
아침부터 일찍 일어날 필요도, 요란스럽게 단장할 필요도, 오늘 뭐 입지 고민할 필요도 없다. 여기까지만 해도 느무느무 좋다. 아침에 잘 잤냐고 아이와 안부인사를 나누는 시간도 좋다. 아주 여유롭게 등원 준비를 시키고 돌아오는 길에 장을 본다. 장본 식재료를 정리하고 집안을 청소한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조용히 청소하는 것은 힐링이다. 나의 점심과 저녁에 먹을 반찬 한 두 가지를 미리 만들어두고 씻는다. 점심을 먹고 치우고 나면 한 시간가량 자유시간이 생기는데 이때 독서를 하거나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면 딱 맞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면 도서관을 가거나 공기가 좋은 날엔 유모차 끌고 산책을 나간다. 그렇지 않으면 집으로 돌아와 같이 간식을 먹고 책을 보거나 여러 가지 놀이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남편이 퇴근하고 오면 저녁을 준비해서 먹고 세 식구가 놀다가 아이가 잠들 시간이 되면 나는 아기를 재우러 들어감과 동시에 하루가 끝난다. (같이 잠들어버리기 때문이다. 남편은 설거지와 뒷정리를 하고 몇 시에 자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우리 부부는 육퇴와 동시에 다음날 일어나 아침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 나는 이 '단순하고 변화가 없어 전혀 새로운 느낌이 없는' 나날들이 좋다.

2. 경제적으로 더 여유가 있다(진정 가치 있는 것들을 소비하는 방법을 배우다)

- 원래도 뭔가를 막 소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휴직하고 나서는 더더욱 소비에 신중하게 되었다. 수입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꼭 필요한 곳에만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드니 10원 한 장도 허투루 쓸 수가 없었다. 식비를 줄이려다 보니 집밥을 해 먹게 되고 덕분에 요리실력도 식단 짜는 요령도 장보는 스킬도 조금씩 늘고 있다.
- 아프면 돈이 들어가니 예방차원에서 건강에 투자하는 것이라면 과감히 썼다. 돈뿐만 아니라 시간도. 예를 들면 조금 더 비싼 유기농 식재료라든지, 천연세제라든지, 좋은 침구라든지. 예전 같으면 몸이 피곤해도 꾸역꾸역 집안일이나 내 개인 시간을 갖고자 취침시간을 줄였지만 요즘엔 과감히 일찍 잠을 청한다.
- 이런 생활들이 반복되다 보니 휴직하면서 딱히 여유가 없다는 생각은 그리 많이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보다 훨씬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는 지금이 참 만족스럽다.

- 직장생활을 하게 됨과 동시에 품위유지비가 발생할 것이다. 적어도 지금보다는 옷을 좀 더 마련해야 하고 신발도 가방도 있어야 할 것이다. 아무래도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꾸미는 것에 조금 더 많은 비용이 발생하므로 이 외에도 화장품이며 머리손질이며 이것저것 자질구레한 복직 초기 꾸밈비(?)가 들어가겠지.
- 주유비는 또 얼마가 들어갈 거야. 지금이야 뭐 집 어린이집을 왔다갔다 하는 정도고 주말에 나들이 정도지만 복직한 후에는 집, 어린이집, 직장, 어린이집, 집, 직장...
- 시간도 돈이다. 복직하면 결코 여유라는 건 지금보다 없으면 없었지 더 생기진 않을 것이다.


3. 더 건강한 삶

-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처음엔 경제상황을 고려해서 시작된 집밥 먹기 프로젝트가 가족의 건강으로 이어졌고, 내 몸에 관심이 생기니 자연스럽게 운동시간도 마련하게 되었다. 지금은 남편의 도움을 받아 감사하게도 필라테스를 다니고 있지만 복직하면 얄짤없겠지. 또한 지금이야 장도 보고 요리도 하면서 매일 신선하고도 건강한 집밥을 차려낼 수 있지만 복직 후엔 어떻게 될지..? 이 부분이 제일 걸린다
- 육아를 하다 보면 짱짱한 체력이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나부터 잘 챙겨 먹고 틈새운동도 하면서 조금씩 체력을 길러놓자.  


4. 자아를 찾는 시간

- 휴직을 하고 무료하게 아기만 보자니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아 블로그를 시작했다. 처음엔 육아일기로 시작했는데 점차 독서에 빠지면서 책과도 친해졌고 사색의 기쁨을 알게 되어 나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참 많이 가질 수 있었다. 그러다가 오래전 생각만 해왔던 브런치 작가가 되어 메인에 내 글이 노출되는 경험도 해보았고 짧게나마 유튜브 채널도 운영해보았다.
- 자칫 잘못하면 누구 엄마, 누구 아내로만 사는 자존감 도둑의 삶이 될 수도 있었지만 이것저것 시도도 많이 하면서 '나'를 잃지 않으려는 무의식 중의 발버둥이 아니었나 생각도 든다.


5. 불필요한 것들로부터의 해방

- 직장생활을 할 땐 왜 이리도 주변에 신경 쓸 일이 많았는지. 좁고 깊은 인간관계를 맺는 스타일인 나로서는 여간 피곤한 게 아니었다. 경조사 챙기기, 내키지 않는 모임에 강제 소속되어 정기적으로 나가기, 덕분에 괜히 이 곳 저곳 불려 나가 시간과 돈을 쓰는 등.
- 지금은 이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하게 되었다. 복직하면 제일 두려운 부분이 이것이다.


6. 일에서부터 오는 스트레스 제로

- 이건 뭐 말할 것도 없지. 직장생활=일이니.


7. 아이와 보내는 시간의 기쁨

- 앞에서도 말했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와 살을 맞대고 아침인사를 나누며 물도 한 컵씩 마시는 여유가 과연 복직 후에도 가능할지? 가능이야 하겠지만 심적인 여유는 글쎄.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 지금은 오로지 아이만 신경 쓰면 되는 시기라서 커가는 모습을 놓치지 않을 수 있고 그래서 더 행동 하나하나가 이해가 가기 때문에 화도 잘 안 나고 오히려 웃게 되는 여유가 있지만,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인다면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온전히 기쁠 수가 있을까. 짜증 안 낸다면 다행일지도. 피곤에 쩐 내 모습만 바라보게 된다면 그것 또한 아이에게는 상처.


8. 매일을 휴가처럼 보낼 수 있음(일상이 여행이다)

- 책 <붓다의 정리법>을 읽고 문득 나도 매일이 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육아와 가사노동이 힘들고 귀찮다며 투덜대기보다는 위에서 언급했던 좋은 점들을 떠올리는 편이 나에게도 가족에게도 좋을 것이었다. 일상 자체가 쉼이고 힐링이었다. '나 혼자 산다' 보면 모처럼 쉬는 날 청소도 하고 장봐다 요리도 해먹고 반려견 돌보는 일상이 나오던데 내 삶이 딱 그거 아닌가 ㅋㅋ(생각하기 나름이지만 여튼 난 이렇게 생각한다.)


9. 인생의 소중한 가치를 깨달아가는 중


- 아이를 낳기 전, 신혼 때는 남들처럼 내 집 마련하고 경제력도 좀 키우고 남들 다 가는 해외여행도 가고 차도 좋은 차로 바꾸고.. 그렇게 보이는 것에 대한 목표를 설정했다. 그래서 더 나아진 게 있었냐고? 아니. 오히려 삶 자체가 온통 회색빛인 느낌? 시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활기도 재미도 온정도 없었다.
-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하면서 육아와 살림을 하다 보니 진정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몸으로 마음으로 느끼는 중이다. 화목한 가족, 배려가 있는 관계, 쓸데없는 걱정하지 않기, 불필요한 인간관계에 목숨 걸지 않는 태도, 건강할 때 건강 지키기, 가치 있는 소비와 투자 등. 아무리 책으로 읽고 머리로 이해해도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들이었는데 자연스럽게 삶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 물론 육아와 살림이 힘들지 않다는 건 절대 아니다. 때론 무지 힘들다. 그러나 나에게 더욱 가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깨닫고 나니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주절주절 쓰다 보니 글이 이렇게나 길어져버렸네.
감성 투머치한 글이라 이렇게 적어놓고
다신 읽어보지 않을 것 같다.

복직이 싫은 이유, 끝-!
복직이 싫은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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