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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솔 Aug 27. 2020

산후우울증,  육아에 대한 시선 바꾸기

초보 엄마와 나 사이의 자아성찰



지루한 작업도 시각에 따라
창의적인 일로 바뀐다.

책 <남편보다 쪼끔 더 법니다> 중



독서가 주는 힘은 실로 위대하다. 살아오면서 정말 많이 듣는 말이면서도 참 와 닿지 않는 말 중 하나였는데 요즘은 이 말이 그렇게 와 닿더라. 아기를 낳고 오히려 매일 최소 2시간의 독서시간을 확보하고 있는 지금, 30년 인생 중 가장 제대로 된 독서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로 인해 육아에 대한 삐딱한 시선이 변하기 시작했다.


육아가 지루한 작업이라고 생각될 때가 참으로 많지 않은가?(나만 그런가?) 그러나, 그럴 때마다 시각을 바꾸면 육아가 살짝 덜 힘들게 느껴질 것이다.

엄마 힘내세요!!


육아는 아이와 나를 동시에 키우는 작업

2019년 4월, 아기를 출산했다. 당시 석사학위 논문을 한창 진행 중이었던 나는 조리원에서 딱 일주일 휴식을 취하고 집으로 돌아와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게다가 현장연구라서 6월부터 두 달간 매일 현장에 나가는 일도 병행해야 했던 터라 제대로 된 조리 한번 못 해본 채, 낮엔 아기를 보고 밤엔 논문을 쓰는 생활을 반복했다. 출산 후 대학원 졸업 전까지는 하루에 자는 시간을 모두 합해도 4시간이 채 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인간은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순간이다.


숱한 밤을 지새웠던 공간. 지금은 이 때가 그립기도.


그뿐인가. 모유수유를 포기할 수 없어서(젖양이 많기도 했고 아기가 분유를 먹으면 소화를 잘 못 시키는 데다 아토피도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타 지역에 있는 대학원 수업과 세미나를 위해 유축기며 노트북이며 논문자료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왕복 6시간이 되는 거리를 이 악물고 다녔다. 대학원 가는 날은 정말이지 전쟁이었다. 수업을 하루로 몰아넣은 터라 저녁 먹을 시간도 없이 연강을 들었는데 문제는 저녁을 먹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다. 차오르는 젖 때문에 가슴통증이 너무 심해서 수업 도중 툭하면 나가 유축을 해야 했던 것이다. 그때마다 수강생들과 교수님의 눈치를 봐야 했다.



  비가 세차게 내리는 어느 날이었다. 그날따라 세미나 분위기가 살벌해서 유축하러 나갈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모자동실 이용시간이 끝나버렸다. 하는 수 없이 유축기를 품에 안고 오는 비 다 맞아가며 겨우 찾아낸 곳은 불 꺼진 빈 강의실. 행여 누가 볼 새라 불도 켜지 못한 채 눈물을 머금고 유축했던 그 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또 한 번은 유축기를 챙겨 왔는데 부속품 하나를 깜빡하고 오는 바람에 짐은 짐대로 이고 지고 유축은 유축대로 못해서 젖이 불다 못해 옷이 젖기 시작했다. 가슴은 돌덩이처럼 딱딱해지고 유축할 곳은 없고... 하는 수 없이 돌아오는 밤기차 안 좁디좁은 화장실에서 손수건 하나로 짜내며 버틴 적도 있었다.



이외에도 수많은 에피소드가 있다.


내가 논문을 쓰면서 갓난아기를 봤다는 사실을 아는 모두가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


그게 가능해?


어쩌면 그래서 가능했던 일인지도 모른다. 아기만 키웠더라면 산후우울증이 왔을지도 모르는데 그 공백기와 허전함을 논문이라는 바쁘고 쉴틈 없는 나만의 시간으로 채워갔다. 오히려 그 고통이 희열로 느껴질 때도 종종 있었으니까. 내 자존감이 올라가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딴 석사학위가 내 생애 가장 값지고 귀한 것이더라. 만일 임신과 출산 없이 석사학위를 땄더라면 그 과정의 무게와 깊이는 비교가 안될 정도다. 해 본 사람은 안다. 해 보니 내 삶에서 이보다 더한 게 있을까 싶더라. 앞으로도 힘든 순간과 도전의 순간이 왔을 때, 이 과정을 떠올리면 뭐든지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육아를 하다 보니 그와 동시에 내가 자라나고 있는 것을 매 순간 느낀다. 아이가 커가는 만큼 나도 큰다. 아이가 옆에 있음으로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이 그 가치가 더해지고 빛이 남을 깨달았다.


육아가 버겁고 힘들 때, 나를 지탱해주는 힘. 독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아가 정말 버겁고 힘들다 느낄 때가 많다. 아니, 어떤 이유로든 육아로 인한 힘듦은 별개다. 늘 힘들다. 힘든 게 맞다. 그래서 힘든 만큼 다시 충전해야 하는 시간이 엄마들에겐 꼭 필요하다.


각자의 방법이 있겠지만 나에게 가장 강력한 충전제는 독서였다. 라섹까지 한 눈이 많이 나빠지는 부작용도 있었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을 만큼 독서가 내게 주는 힘은 강했다. 기다리던 육퇴 시간이 되면 내 방으로 달려와 잠들기 전까지 거의 활자중독 수준으로 뭔가를 읽고 또 읽었다. 육아서든 뭐든, 하물며 읽기 싫어하는 경제신문조차도 재미있었다. 그만큼 육아보다 힘든 건 없었다.


나만의 기분전환 리스트 만들기

처음엔 육퇴 후 티비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이상하게 더 우울해지고 불면증에 시달리고 더 피곤한 다음날을 보내게 되더라. 지금은 아기가 잠들면 같이 자며 체력을 보충하는 날도 많고, 육아서를 읽으며 아이가 커나가는 동안 필요한 것이 뭔지 채우기도 한다. 그러다가 24시간을 육아에 대한 고민만 하긴 또 싫어서 시간이 나면 평소 하고 싶었는데 아기가 있어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나씩 하기도 한다.

내 기분을 좋게 해주는 것들 53가지

이렇게 하고 싶은 일을 생각날 때마다 적어두면 갑자기 생긴 자유시간에 유용하게 쓰인다.


<매일 아침 써봤니?>의 저자 김민식 PD도 힘들 때면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을 하란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을 하다 보면 행복감을 느끼는데, 행복은 강도보다 빈도가 중요하므로 틈나는 대로 내 기분이 좋아지는 일을 한다면 그것이 인생 사는 기쁨이자 의미 아니겠는가!


남편에게 내 마음 알리기

남편이라고 공감능력 없다 무시하지 말고 그냥 내 상태가 이렇다, 이야기하기만 해도 속이 한결 편해질 때가 많았다. 남편이야 내 이야길 듣든 말든 그냥 누군가에게 스트레스받는 일을 대화로 풀고 나면 그 자체로 참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나는 자기의 힘듦을 백 번 공감하고 이해해.
자기는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면 언제든 말해줘.
난 자기에게 어떤 이유에서든
늘 협조적이었으니까.  

-남편-


운동하기

아이 낳고 한동안 운동을 하지 못했다. 아니 안 했다고 하는 게 맞다. 솔직히 피곤하고 귀찮잖아? 그런데 허리 통증이 점차 심해지고 어깨가 결리고 목 통증이 심해지면서 건강 때문에라도 반강제로 시작한 운동이 지금은 어느새 습관이 되었고 오히려 활력이 되었다. 변해가는 몸을 보면서 외적으로 자신감이 생겼고 자존감을 높이는 데 한 몫했다.


아이를 낳은 이후에도 누군가는 여전히 변함없는 활기찬 일상을 보내고 누군가는 앓는 소리만 하며 보낸다. 인생은 내 뜻대로 되는 것보다 되지 않는 일이 훨씬 많다는 것을 결혼해보니 알겠고, 육아를 해보니 아주 뼈저리게 느끼는 요즘이다. 모든 일에 대한 반응을 선택하는 것은 내 몫이다. 어찌 되었든 아이는 태어났고 나는 아이의 엄마이자 주양육자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왕이면 몸은 힘들더라도 마음은 행복하게 지내자는 것이 나의 선택이다.

출산 전, 태어날 아기를 위한 메시지
 그러고 보니 오히려 나는 지금이 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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