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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 mark Jul 04. 2021

부모님과 여행을 간다는 건.

 나에게는 부모님, 형,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 여행을 간 기억이 어렸을 적 말고는 거의 없다. 부모님이 내가 태어나고 나서는, 계속 자영업을 하셨는데 주말에도 한 번 쉬지 않으시고 휴가도 거의 가지 않으셨기에 (글을 쓰다 보니 기억이 났는데, 어렸을 적에는 그래도 여름에 휴가도 일주일씩은 다녀오곤 했던 것 같지만 언젠가부터는 그 휴가도 쉬지 않으시고 일해오셨던 것 같다.) 가족 모두가 여행 간다는 건 정말 '큰 맘'먹고 실행해야 하는 일이었다.


 내가 한국에서 취업에 성공하고, 입사하기 전에 형도 회사에 휴가를 내고 아버지, 어머니도 오랜만에 휴가 팻말을 붙이고는 문을 닫으시고 다 함께 대만에 다녀왔다. 한 여름의 대만은 정말 덥기도 더웠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는 처음으로 다녀온 가족 여행이기에 너무 좋았지만, 새삼 부모님을 모시고 일정이 정해진 '패키지여행'이 아닌 '자유 여행'을 한다는 건 쉽지 않구나 느꼈다. 그래서 이제 앞으로는 부모님과 자유 여행으로 내가 계획을 해서 여행을 가는 일은 잘 없겠구나 싶었었다.


 그러던 중 내가 독일로 떠나오게 되었고, 당시에는 나는 독일에서 '워홀러'신분이었기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수 도 있겠다 싶은 마음에 내가 있는 이때에 부모님이 오셔야 여행하기가 수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나는 최대한 루트를 너무 힘들지 않게끔 계획하고, 일정표까지 만들어 미리 가족 단톡방에 보내 컨펌까지 받으며 준비해 갔다. 이런 준비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행 중 다시금 대만에서 내가 왜 그렇게 느꼈었는지가 생각이 났었다.



 먼저, 가족과의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당신에게 감히 이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다. 내가 직접 준비하고, 계획하고, 가이드가 되어서 움직이는 가족 여행은 정말 힘들다.

 첫 번째로, 내가 100프로를 준비하든, 오버를 해서 120프로를 준비하든, 혹은 덜 준비해서 80프로를 준비하든 상관없이 준비한 대로 되질 않는다.

 이는 비단 가족 여행에서 뿐만 아니라, 여행이 그렇고 좀 더 (많이) 나아가자면 우리 인생이 그렇다. 내가 계획한 대로 생각한 대로 모든 게 따라주리라는 법이 없다. 예를 들어 나는 분명 뮌헨에서 근교 퓌센에 있는 일명 '디즈니 성'으로 유명한 노이슈반슈타인 성에 가려는 일정을 계획했는데, 당일 아침 눈을 떴는데 비가 정말 많이 오고 있었다. 이 날씨에 굳이 강행해서 가기에는 너무 위험한 일정이었고, 부랴부랴 그때서야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찾다가 아예 나라를 옮겨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당일치기를 하고 돌아왔었다.

 변동성을 최대한 줄이고자, 숙소 등을 미리 모두 예약을 한 탓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고 결국 잘츠부르크에 모차르트 생가가 있는지도, 잘츠부르크로 가는 기차 안에서 알게 되었다.



 두 번째로, 만약 당신이 나처럼 혼자 여행하는 데 익숙해졌다면 생각보다 많은 걸 고려해야 한다.

 나는 혼자 여행을 하는 데 익숙해져 있어서, 굳이 끼니를 정해진대로 먹기보다는 길가다가 먹고 싶으면 먹고 안 먹고 싶으면 안 먹기도 하고, 흔히 말하는 입이 터졌을 때는 몇 끼씩도 연달아 먹었다. 음식의 장르도 특별히 가리지 않았다.

 부모님과 여행을 하다 보니, 특히 아버지는 하루 한 끼 정도는 한식을, 그게 마땅치 않다면 적어도 한 끼는 아시안 음식을 드시고 싶어 하셨다. 사실 큰 도시는 찾아보면, 작더라도 한식당이 한 개 정도는 있어서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지만 막상 간혹 한식당도 별로 없는 도시에서 리뷰도 좋지 않은 한식당을 가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고민이 되었다.

 또는 분명히 처음에 계획하고, 고민했을 때는 지도상으로 역에서 숙소까지 그렇게 멀지 않은 거리였는데 하필 오르막길이 꽤 길게 되었던 곳이었을 때, 갑자기 잘 찾던 숙소도 안 찾아지면 말 그대로 멘털이 붕괴된다. 나 혼자야 그냥 좀 더 걷는다 생각하면 되지만, 부모님과 함께 있을 때는 나보다 부모님을 더 챙길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이건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괜히 속상해지거나 서운한 순간이 온다.

 부모님이 특별히 나에게 뭐라고 하거나, 불만을 내비치시거나 한 게 아닌데도 혼자서 속상하고, 서운한 순간이 오는 것 같다. 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예를 들어 앞서 말한 것처럼 부모님이 최대한 힘들지 않게끔 역에서 숙소도 멀지 않은 거리로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힘들게 걸을 수밖에 없었고, 안 그래도 더운 여름이었는데 캐리어도 들고 계시고, 숙소는 왜 이리 멀게 느껴지는지 알 수 없을 때. 그때의 나는 이미 나 자신에게 짜증이 나있는 순간이다.

 이때 악의 없이, 아버지가 (지금은 뭐라고 하셨었는지 기억이 안 날 만큼) 사소하게 한 마디 하신 게 괜히 서운하게 느껴진다. 옆에서 어머니도 힘드신데 괜찮다는 표정을 하시고, 약간이라도 눈치를 보시는 듯한 느낌이 들 때면 정말 속상하다. 그러면 난 또 투덜댄다.

 물론 이 날은 그렇게 힘들게 도착한 숙소가 아주 시원하고, 쾌적하고 생각보다 꽤 많이 넓어서 만족스러웠기에 기분이 금세 좋아졌다. 하지만, 이 날 뿐만 아니라 여행 중에 이런 위기는 적어도 한 번씩은 올 수 있다.(나는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몇 번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부모님과 여행 가는 걸 추천하지 않냐고 묻는다면 그건 단연코 아니다. 무조건 부모님과 여행을 가보기를 추천한다.

 아직도 아버지, 어머니는 그때 경험했던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시곤 한다. 어머니는 그때 드셨던 납작 복숭아를 간혹 이야기하곤 하시고, 아버지도 그때 우리 갔었던 스위스 융프라우가 TV에 나왔는데 반가웠다고도 하신다. 나에게도 그 여행은 뜻깊은 게,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부모님의 모습을 그때 알게 되었던 것들이 있다.

 어머니와는 둘이서 자주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여행도 다니고, 가끔 짧게라도 함께 다니곤 해서 그런지 특히 아버지에 대해서 몰랐던 점을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아버지가 그렇게나 해맑게 웃으시면서 좋아하시고, 동영상 찍어드릴 때 팔을 쭉 피고 빙글빙글 도는 것도 하시는구나를 알았다.


 그리고 새삼 두 분이 이렇게나 여행을 좋아하시는데도, 아들 둘 키우시느라 쉬지도 못하시고 일만 하셨었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동시에, 내가 어렸을 적에는 자주 여행을 못가도 주말이면 가끔 밤 11시까지 일을 하셔도 경기도 장흥 유원지로 가서 하룻밤 자고 다시 와서, 가게 문을 열고 하셨던 게 기억이 났다. 

 가족 모두 함께는 아니더라도, 가끔씩 어렸을 적에 아버지나 어머니를 따라서 여행을 가거나, 소풍을 갈 때도 나도 몇 번씩이나 서운하게 혹은 속상하게 했을 때가 무수하게 많았을 텐데 그때마다 부모님은 내색 한 번 내지 않으셨을 텐데 나는 그 잠깐 여행하는 동안 그렇게 투덜대고, 가끔 짜증(을 내지는 않았을지는 몰라도 분명 얼굴로 티를 냈을 거다)도 냈다.


 나는 독일에 와서 살고 있는 게 참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참 잘한 일 중 하나가, 아니 어쩌면 지금까지의 인생에서도 가장 잘했던 일이 부모님과의 유럽 여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코시국이 끝나고 다시 한번 그때 가보지 못했던 여행지를 가기까지, 그날이 다시 오면 더 철든 아들이 되어 부모님을 모시고 함께 다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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