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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 mark Aug 07. 2021

'꿈'을 꾸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최근 며칠 동안, 계속 자는 동안 꿈을 꿨다. 아침에 일어나면 밤 새 깨어있던 것처럼 피곤했고, 간 밤의 잔상들은 오전 내내 머리 위를 둥둥 떠다녔다.(물론 꿈의 잔상이 그러하듯 몇 이미지만 겨우 오전 중에 남아있을 뿐이었지만)

 차라리 꿈을 꾸더라도 그 꿈이 신나는 꿈이었거나, 좋은 꿈이었다면 모를까. 내내 악몽이었기에(그것도 장르가 매번 다른) 아침이 되면 몸도 정신도 좀 더 피곤해지는 것 같았다. 물론 길몽이어도, 꿈을 꾸는 건 피곤한 일이다.


 꿈을 꾼다는 건 자는 동안에도 뇌의 일부분을 쓴다는 것이고, 일어났을 때 내가 '아, 꿈꿨네'라고 기억이 날 정도면 자다가 중간중간 깼다는 것이기에 피곤할 수밖에 없다. 혹은 자던 중에 너무 달콤한 꿈을 꾸고 있는데 알람 소리에 갑자기 꿈에서 깨고 나면 그 허탈감도 이루 말할 수 없다. 달콤한 인생이라는 영화 도입부에도 이런 대목이 나온다.


어느 깊은 가을밤 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이 기이하게 여겨 제자에게 물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제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영화 달콤한 인생 중에서

 얼마 전 인터넷에서 한 '짤'을 봤는데 내가 자는 동안 꾸고 있는 '꿈'과 이상을 뜻하는 '꿈'이 같은 단어인 나라를 묻는 한 SNS 유저의 물음에 전 세계 각지 사람이 본인의 나라의 단어가 같다고 답하는 짤이었다.

 새삼 '그렇네' 싶었다. 우리나라도 꿈, 영어로는 Dream, 독일어로도 Traum, 중국어로 梦(mèng) 등등. 많은 나라에서 다른 의미의 단어가 같은 한 단어로 쓰이고 있었다.


 잘 생각해보면 이 두 가지 의미가 같은 단어로 쓰이고 있는 건, 그리 이상하지 않을 수 있다.

 그 옛날 사람들이 가장 염원했던 일들을 생각해보면 수렵, 채집으로 매일을 연명하던 시절에는 당연히 내일은 '사냥에 성공하길'이라는 것이었을 테다. 매일매일 생각하다 보면 자다가도 사냥에 성공하는 영상이 머릿속에 '재생'되었을 것이다.

 사실상 두 의미는 그리 멀지 않았기에 지금까지도 한 단어로 쓰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그 옛날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지금 우리에게 역시 꿈은 미래, 내가 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걸 뜻한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누군가 '너 꿈이 뭐니' 하면 우물쭈물했던 것 같다.

 아주 어렸을 적에는 가수가 되고 싶다는 꿈도 있었지만, 그 조차도 진짜 되고 싶었던 거였나 생각해보면 그냥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을 뿐이었던 것도 같다.


 학교에서 장래희망을 적어 내는 가정 통신문 류를 받아서 적기도 했던 것 같은데, 생각해보면 한 칸에는 부모님이 희망하는 나의 장래희망과 내가 적는 칸이 나란히 있어서 적어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학생 때부터 '너 뭐 될 거야?'라고 물어보는 것부터, 부모님이 바라는 나의 '장래 희망'을 적어서 내라는 것까지 생각해보면 그게 다 뭐였지 싶기는 하지만 이와 논외로 나는 꿈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학교를 간 것도 한국에서 취업을 하고, 퇴사를 하고 지금 독일에 와서 살아가고 있는 것도 큰 목표나 꿈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매일을 살다 보니 당시에 내게 주어진 선택 사항에서 내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했을 뿐이었다.(물론 지나고 보니 최선이 아닌 선택도 있었지만.)


 어쨌든 그 결과로는 아직까지는 내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특별한 꿈 없이 살아온 나 자신을 원망하거나, 혹은 안타까워하고 싶지 않다. 어쩌다가 아이를 만나고, 할 말이 너무 없다 해도 너는 뭐가 되고 싶어? 꿈이 뭐야?라는 이야기도 되도록이면 묻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 물론 그 아이가 확고한 꿈이 있는 아이라면 이야기를 들어줄 자신이 있지만, 학생 때의 나와 같이 특별한 꿈이 없는 아이일 수 도 있으니. 그런 아이에게 꿈을 묻는 건 꿈이 있어야만 한다고 강요하는 것과 같을 수 있으니까.



 꿈을 꾸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하루 중 뇌가 꼭 쉬어야만 하는 시간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너무나도 좋은 꿈이라면 현실과의 괴리감에 실망할 수 있고, 반대로 악몽이라고 하면 자는 내내 나를 괴롭힐 수 있다.


 꿈을 꾸는 것은 피곤한 일이고, 꿈을 꾸지 않고 오늘도 푹 잔 나 자신이 만족스럽다. 당신도 어젯밤 푹 잤다면, 그 자체로 당신은 잘 살고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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