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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깨는 현석이 Apr 10. 2024

24.04.08 그 사람 죽었어요.

가진 게 나 밖에 없어서요.

#1.

아침에 남자친구가 교육을 들으러 가는 길 나도 같이 집을 나섰다. 헬스장을 등록했는데 매일 갈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은 남자친구가 집을 나설 때 아무 생각없이 같이 나서버리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는 운동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몇년만에 헬스장에서 운동이라는 걸 했다. 지금 내 주파수에 맞는 액션이나 생각이 정말 제한적인 걸 생각하면 운동은 몇 안되는 탈출구 처럼 느껴졌다. 기껏해야 싸이클 15분에 런닝머신 30분이 내가 한 운동의 전부였지만,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2.

운동을 갔다 집에 왔는데 밖이 소란스러웠다. 슬쩍 봉창으로 밖을 내다보니 구급차와 경찰차까지 와있었다. 놀라기도, 궁금하기도 한 마음에 내려가보니 반지하에 살던 분이 돌아가셨단다.


"무슨 일이예요..?"


"죽었어요. 저기."


이 빌라의 반장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분이 꽤나 거리낌 없이, 모종의 미소를 띈 채 뜯겨져 나간 반지하의 방법창을 고갯짓으로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그의 냉소적이지만 은은한 미소를 띈 표정이 섬짓했다. 듣자 하니 돌아가신 분은 이 빌라에서 유명한 강성 진상이었다는 평이 있었는데 나는 이제 이사 온지 1주일 밖에 되지 않아 그런 사실은 알 턱이 없었으니, 그저 저 사람 이제야 죽었다는 뉘앙스의 섬뜩한 설명을 듣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반장이라는 분은 조금 후련해보이기까지 했는데, 자식들도 다 연을 끊고 이집에 왕래를 안한지 오래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왜 알잖아요 저 사람."


"저는 이사온지 얼마 안돼서 잘 몰랐어요."


"아아~ 그"


"네 000호요."


"반가워요 이 동 반장이에요."


그분은 거리낌없이 악수를 청하셨고 나도 000호입니다. 하면서 악수를 했다. 아직 돌아가신 분이 그대로 계신 반지하 집 바로 앞에서였다.


#3.

나는 집에 얼른 올라왔다. 섬뜩하기도 했지만 구급차와 경찰차를 대동한 누군가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아니고서는 웃으며 인사할 일이 없었을 같은 이웃들과의 조우가 어색했기 때문이었다. 집에 올라와 문을 닫고서 한숨을 돌렸다. 그리고서는 씻었다. 씻고 점심을 먹고 카페를 갔다. 카페에 가서 재택 알바를 하고 저녁에는 누나와 남자친구와 코스트코를 갔다. 코스트코를 가면서 오늘 우리 빌라에서 사람이 죽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막 엄청 별 일 아닌 것처럼 그 사람 죽었다고 얘기하더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는 가서 피자를 먹고 또 먹을 것들을 사왔다. 그렇게 그냥 그날 하루를 살았다. 하루를 마칠 때쯤 한 낮의 섬뜩하고 어색했던 그 순간들은 피자를 너무 많이 먹어 배가 터질 것 같아서 불편한 순간으로 잊혀졌다. 헛트름이 그윽 나왔다. 소화가 안되는게 뭔지 알고 있었지만 나는 괜히 알약으로 된 소화제를 먹었다. 그런데도 자기 직전까지 헛트름이 나왔다. 그윽. 그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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