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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석이 Oct 23. 2024

24.10.23 나의 구재희들에게(대도시의 사랑법)

가진 게 나 밖에 없어서요

#1. 

낮잠을 자는데 꿈을 꿨다. 첫 출근하는 꿈이었다. 어지간히 긴장이 되긴 했나보다. 출근 명부에 도장까지 찍는 생생한 꿈에 눈을 떴다. 두번의 취업사기 이 후에 간신히 취업한 곳이다. 내일이 첫 출근인데 부디 무사히 적응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엄마는 내가 내 앞가림만 한다면 소원이 없겠다고 했다. 내가 제일 아플 때는 아프지만 않으면, 낫기만 할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고 했었는데, 그러면서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고 말했다. 


맞아.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해.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숨만 쉬며 생활하는데에도 돈이 드니 언제까지고 고정적인 수입이 없을 순 없는 노릇인 걸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올해는 취업에 도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바닥까지 떨어지는 자존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나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 것을 경험했다. 그렇게 작은 스타트업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언제까지가 될 지는 알 수 없다. 어딘가에 취업하는 게 내 평생의 꿈이었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다. 다만 무작정 올라온 서울 바닥에서 나 하나 건사하며 계속 살아갈 수 있다면, 어쨌건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수단이 생긴거라면 그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2. 

'어떻게 계속 살아야할지'를 고민했던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요즘 많이들 그렇듯이 중간에 몇번이고 삶을 관두려고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구재희들이 있었다. 그들과 나는 알 수 없는 기준으로부터 벗어난 채 손가락질 받는 각자의 일상을 서로 지독하게 향유하고 좋은 음악을 들려주면서 각자의 끊어진 삶의 의지를 그때마다 연결해주는 역할을 자처했다. 그래서 삶을 관둘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이 아니었으면 진작에 끝났을지도 모르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직도 피흘리는 내 손목을 휴지로 누르고 울면서 같이 캐나다에 가자고 했던 친구의 목소리를 생생히 기억한다. 무사히 늙어서 함께 캐나다에가서 젊은 놈들 욕이나 실컷하자고 했던 친구의 이야기와 나 대신 진수를 보러 온답시고 매주마다 우리 집에 오던 친구와의 포옹과 쓰레기장 같던 집을 치우러 왔다고 해놓고선 같이 애니메이션을 보며 잠들 빔까지 챙겨왔던 친구의 거짓말도. 거리에서 만나서 날 보며 뛰어와서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던 친구의 눈빛과 '너를 괴롭힌 사람보다 지켜줄 사람들을 생각하라'고 했던 친구의 카톡들까지 모두 다 생생히 기억한다. 눈만 맞으면 아침까지 술잔을 기울이던 우리의 밤과 서로 구급요청을 하면 친구에게 달려가며 맞았던 바람까지도 전부다. 



#3.

브런치에서 알림으로 띄워주던 말을 좀 들을 걸 그랬다. 매번 '글 쓰기는 근육과도 같아서 매일 조금씩 어쩌구' 했는데 나는 귀찮다는 핑계로 알림을 넘겨버렸었다. 그랬더니 정작 감사함을 표시하려는 순간에 필력이 달려서 이렇게 밖에 이야기 하지 못하는 게 아쉽다. 이 이야기는 나의 재희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며 삶의 의지를 다시 한 번 다지는 글이었다. 


이제 출근 준비를 해야겠다. 내일부터는 또 새로운 생활이 시작될테니 오늘 밤에는 씻고 일찍 잠에 들어야겠다. 그래야 또 계속 살지. 누가 만들어 준 삶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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