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석이 Dec 16. 2023

19.07.10 - 커밍아웃 이틀 후.

"현석아, 어차피 한 번은 뚫고 가야 해."

준규야, 그렇다. 세상일은 절대로 모른다.

그리고 절대로 계획대로 되는 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 수도 없다.

니 말처럼.

근데 오늘 내  친구가 한 번은 뚫고 가야 한다고 하던데.

우리는 그럴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까.


-


사람은 참 약하다. 조금만 부딪혀도 살갗이 벗겨져서 피가 나고, 어떨 때는 뼈가 부러지거나 내장이 다쳐버리기도 한다. 물리적인 충격에도 그렇게 쉽게 다치지만, 세균이나 화학물질에도 쉽게 무너져버리는 게 사람 아닌가. 멧돼지나 여타 다른 동물들처럼 이가 튼튼하거나 손발톱이 길거나 그렇지도 않다. 그냥 몸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 참 약한 것 같다. 그리고 나도 그렇다.

그런데 심지어 사람은 복잡하고 어려운 마음도 가지고 있어서 더 약하다. 내가 그렇다.


-


나는 참 약하다. 늘 그랬다. 온갖 잔병치레라는 잔병치레는 다 해서 온 식구가 나를 밤낮으로 간호했던 적이 다반사였고, 택시를 하시는 큰 이모부가 나를 병원으로 실어 날랐다던 가 아파서 링거를 맞고 나면 꼭 아부지가 사다 주신 피자빵을 먹었다던가 하는 류의 이야기는 김현석의 어린 시절을 한방에 설명해 줄 수 있는 아주 상징적이고 대표적인 이야기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디 병뿐인가. 덤벙대고 덜렁거리고 실수하고 부딪히고 넘어져서 온갖 곳을 다 다치고 부러뜨리고 찢어먹었고 기브스에 수술, 약이나 붕대 같은걸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것 또한 연례행사, 아니 거의 반기행사였다.

그래서 늘 그랬다. 쟤가 죽지 않고 커서 사람 노릇할 수 있을까, 그랬다. 나는 그렇게 약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

'그 일'이 있고 나서 이틀이 지났다.

잠깐 사이에 많이 물어보더라, 이제 후련하냐고.

내 답은,

아니다.


딱 그 순간 너무나도 기쁘고 짜릿했고, 같이 나눌 친구들과 함께 행복했다. 하지만 행복은 부피가 아니라 빈도라고 했던 내 친구의 말처럼, 그건 정말 그 순간뿐이었다. 그 순간이 지나도록 영원히 행복하려면 아마도 죽던지 약을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여하튼 지금 내 심정은 사실 조금 괴롭다. 걱정도 되고. 앞으로가 막막하고 걱정이다. 해보지 못한 수십수백 수천 가지의 선택지가 이제 내 앞에 놓여있고 다 나를 보고 비웃고 있는 느낌이다.

어때? 이게 네가 원하던 그 주체적인 인생이야. 겁도 없이 까불더니. 어때? 네가 저지른 짓이 이제 좀 실감이 나?


심지어 이제 도망칠 데도 없다. 아닌 척 그런 척 그만하기로 했으니까 그런 것도 소용없다. 정말. 나는 이제 정말 온몸으로 그것들과 부딪히게 될 것이다.


-


부딪히는 것. 갑자기 부딪히면 사고지만 작정하고 덤벼들면 공격이다. 물론 자세나 속도 마음가짐에 따라서 부상의 정도 또한 다를 것이다.


내가 이번에 한 건 공격이다. 하지만 좀 어설펐다. 나는 여전히 내가 부딪힐 어떤 것들이 뭔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어쩌겠나. 처음인걸. 다들 처음 사는 인생이고, 나도 그런 걸. 그리고 나는 작정하고 부딪혀보는 게 진짜 처음인 걸.


그래서 겪고 나면 아무것도 아닐 거라느니, 지나고 나면 그게 그땐 참 별거 아니었지 하며 소주잔을 부딪히는 미래를 상상하라느니 하는 것들은 크게 도움이 되진 않는다. 나는 어쨌거나 내가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 어떤 것들과 이제 부딪히게 될 것이고, 내가 부서지든 그게 부서지든 둘 중 하나가 최후의 결론이 될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갑자기 초대된 가족행사에서 아무 준비도 없이 장기자랑 무대에 끌려올라온 것처럼, 어떻게든 직접 끝을 내던지 아니면 내가 끝장이 나야 하는 게임이 시작되어 버린 것이다. 여기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끝을 직접 내는 것.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가 끝장이 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어떤 쪽의 끝은 끝이 아니라 새로 시작이 될 수도 있을 거라는 느낌이 든다.


-


작정하고 덤벼들려면 그게 뭔지 봐야 한다. 내가 부딪힐 대상이 무엇인지 모른 상태로 부딪히면 정말 큰 사고가 나거나 꽤 오랜 시간 나는 아파할 것이다.

그런데 사실 나는 처박고 아파하는 것을 꽤나 꾸준히 해왔다. 지난 시간 동안 말이다. 곧 부딪힐 것을 알고 있어서 어떻게든 그게 뭔지 바라보려고 했지만 생전 처음 보는 것들이라 뭔지도 모르고 그냥 부딪혀보면서 계속 그냥 아파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그냥 사는 거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계속 이렇게 뭔지도 모르는 걸 보려고 용쓰다가 어느 순간 마빡을 가격 당하고 핑돌며 쓰러지는 게 앞으로의 내 미래라는 걸 받아들이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는?


-



나를 바라볼까 봐, 내가 바보처럼 보일까 봐 정수기 물도 손을 덜덜 떨며 떠먹던 내가 물을 뜨다 말고 고개를 들었을 때. 버스 손잡이를 잡고 서 있을 때, 버스 뒤편의 사람들이 나를 볼까 봐 혼자 얼굴이 시뻘게져서 태연한 척 버스를 황급히 내리던 내가. 버스 사람들이 사실은 나를 보고 있지 않다는 걸 고개를 돌려 확인했을 때.  무지개 깃발을 두르고 거리를 걷기 시작했을 때.

매거진의 이전글 19.09.11 - 외로움, 그 쓸쓸함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