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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깨는 현석이 Sep 26. 2023

23.09.01 - 내가 너무 속상해서 그래.

가진 게 나 밖에 없어서요.

#1.

오랜만에 반려견 진수와 내 친구 모과와 학교에서 만났다. 진수를 데리고 산책으로 학교를 갔다 오는 건 여간해선 쉬운 일이 아니지만, 갔다 오면 그날 밤은 아주 푹 주무시는 우리 진수. 자는 얼굴이 제일 천사 같다. 잘 때가 제일 천사 같다. 진수야 사랑해.


진수를 데리고 모과와 집 쪽으로 돌아오면서 남자친구와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둘은 이번 퀴어문화축제에서 이미 함께 시간을 보낸 적이 있어서 둘의 만남이 걱정되거나 하진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집 앞의 치킨집을 가기로 했고 나는 급한 응가가 있어 진수도 데려다 놓을 겸 혼자 집을 잠깐 들렀다 오기로 했다.


집에서 급한 용무를 해결하고서 진수를 재우고 다시 치킨집으로 향했다. 언덕배기 내리막을 조금 걸어서 횡단보도만 건너면 바로 치킨집이라 걸어서 예상 소요 시간은 5분 남짓. 

집에서 나서서 횡단보도까지 가는데 3분 정도가 걸렸고, 횡단보도를 건너 치킨집으로 들어가는 데는 30분 이상이 걸렸다.


#2.

내리막을 내려와 횡단보도 앞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비틀거리며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로 걸어 들어가고 계시는 걸 발견했다. 나는 너무 깜짝 놀라서 


"어어! 들어가시면 안 돼요!" 


라고 말하며 아주머니 팔을 잡아끌었다. 아주머니에게서는 내가 숙취에 절어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모든 걸 게워낸 후 더 나올 게 없을 때까지 토하고서 힘없이 바닥에 누워 괴로워할 때 나한테 나는 술 냄새가 났다.


"삼촌, 나 택시 좀 잡아줘."


팔을 잡혀 횡단보도 앞의 인도로 올라오신 아주머니는 반대로 내 팔을 잡고 내 눈을 지그시 쳐다보시면서 택시를 잡아달라고 말씀하셨다. 술에 만취해 집에도 가지 못 하고 있을 때 뭇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아직 겨우 살아남아 있는 나에게는 고민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핸드폰으로 카카오 택시를 켜며 여쭸다.


"금방 잡아드릴게요. 댁이 어디세요?"


"나 집으로는 안가. 내가 오늘 너무 속상해서 그래."


"집에 가셔야죠. 술 많이 드신 것 같은데요."


"내가 오늘 엄마가 돌아가셨어."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래서 너무 속이 상해서 술 먹었어. 내가 속상할 때 가는 데가 있어.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오늘 같은 날 막 노래 부르고 놀면 안 되는데 너무 속상해서 그래."


알고 보니 오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씀은 오늘이 어머니의 기일이라는 말씀이었는데, 낮에 첫제사를 치르고 오셨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속상할 때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곳이 있다고 거기로 택시를 잡아달라고 하셨다. 우리는 잡고 있던 팔을 놓고 서로 손을 잡았다.


"나는 첫째 딸인데, 내가 불교야. 근데 우리 엄마는 교회를 다니셨거든. 교회식으로 제사를 지냈어. 근데 교회는 먹을걸 안 차리고 기도만 하더라고. 그래서 납골당에서 기도만 하고 왔어. 근데 너무한 거 아니냐고. 음식이 하나도 없고. 좋아하던 바나나 같은 거라도 하나 있으면 그거라도 먹을 텐데. 첫제산데. 그래서 너무 속이 상해서 술을 먹었어."


아주머니는 눈이 그렁그렁 했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으셨다. 나는 조금 어릴 때만 해도 가끔 나이가 많은 분들이 슬픈 이야기를 할 때 눈물이 고이기만 하고 흐르지 않는 게 항상 이상했었는데, 슬픈 일을 여러 번 겪으면 가슴이 너무 미어져서 흐를 눈물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고 있었다. 적어도 내 경우엔 그랬으니까 아주머니도 그런가 보다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손을 조금 더 세게 잡는 것 밖에 없었다.


"근데 우리 남편도- 참 너무하지. 이해해. 일하러 갔거든. 출근했어.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내가 첫째 딸인데. 나는 동생들을 어떻게 보냐고. 남편은 제사에 오지도 않고 음식은 하나도 없고. 난 너무 속상했어. 근데 내가 엄마 돌아가셨을 때도 여기를 갔었거든. 그러면 안 되는데 너무 슬프고 속상해서 가서 막 노래를 불렀어. 속이 상해서 그렇게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어."


아주머니는 내 손을 두 손으로 꼭 잡고 엄마한테 잘하라고 했다. 택시는 자동결제라 5000원 남짓이 나왔는데 나한테 기어코 만 원짜리 지폐를 손에 쥐어주셨다. 내가 미쳤냐고 하시면서. 내가 왜 삼촌한테 공짜로 택시를 얻어타냐고. 나는 그 만원을 손에 들고 질질 울었다. 내가 질질 우니까 아주머니가 나를 토닥여주셨다. 삼촌은 사람이 좋으니까 잘 살 거라고 말씀하시고서는 택시를 타고 떠나셨다. 나는 신호등이 다음 초록불이 될 때까지 계속 질질 울다가 치킨집에 들어가기 전에 잠시 그쳤다가, 들어가서 모과랑 남자친구한테 이야기를 하면서 또다시 질질 울었다.


#3.


이 이야기를 꼭 쓰고 싶었다. 첫째 딸이 겪는 부당한 책임감이나 제사가 가지는 의미, 살아계실 때 부모님께 잘하자, 아직 세상은 살만해 따위의 것들을 얘기하지는 못하겠다. 그냥 아주머니가 속상해해서 나도 너무 속상했던 그 순간을 잊지 않고 싶었다. 남들이 밉고 무섭고 징글징글하다고 생각했는데, 생판 모르는 남이 속상해하니 나도 속상했던 게 다행인 것처럼 느껴지는 게 조금 징그럽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 순간에 우리가 서로 손을 잡고 각자 울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서 서로를 위로했던 기억을 잊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 글을 썼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은 당신이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부디, 나도 아직 글로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그때 그 순간이 당신에게 정말 잠시 잠깐이라도 조금은 위로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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