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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석이 Oct 03. 2023

23.09.30 - 내가 이래서 미안해.

가진 게 나 밖에 없어서요

청도의 한 큰 카페. 다리가 덜덜 떨렸다. 숨 쉬는 게 힘들어졌다. 불안한 마음인지 슬픈 마음인지 알 수 없는 마음이 뒤섞인 것 같았다.

"니 괜찮나?"


"나 컨디션이 좀 안 좋은 것 같아."


공황 같은 증상이 시작되면 으레 '컨디션이 안 좋다'정도로 얘기를 하곤 했다. 아부지와 누나가 옆에서 손을 주물러줬다. 점심약을 놓친 탓일까. 사람들이 너무 많았던 걸까. 아니면 너무 높은 난간에 위치한 자리에 앉아서 그게 불안했었을까. 커피를 많이 마셨나. 내가 괜히 기분이 안 좋았나. 어떤 기분과 어떤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교통사고가 났는지 알 길은 없었지만, 확실한 건 상태가 급속도로 좋지 않아 졌다는 것이다.


#1.

16년 11월인지 언제인지, 아무튼 아직 학기가 끝나지 않은 겨울 초입쯤에 첫 입원을 했을 때였다. 감염내과에 입원한 나는, 내가 있던 병실의 7명 중 단기간 입원 후 병원을 나갈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사실을 퇴원할 때 즈음에야 알았다. 다들 병원에 오랫동안 있었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있을 것이고 아픈 이유는 알 수 없는 상태라는 이야기들을 했었기 때문이다.


내 병실 침대 맞은편의 아저씨 한 분은 돼지 오돌뼈를 먹고 난 다음날 갑자기 아프기 시작하셨다고 했다. 그렇게 병원신세를 지기 시작하신 지 한참이 되셨다던, 한 때 잘 나가셨다던 그 아저씨는 여러 가지 면에서 힘이 없어지셨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인지기능이 예전과 같지 않다고 간병을 하시던 분이 말씀하셨었다.


그 아저씨는 정말 말 그대로 하루종일 계속 기침인지 구역질인지 모를 뭔가를 하셨다.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잘 때까지, 그리고 자다가도 그 소리를 계속 들었어야 했다. 그 소리는 생각보다도 끔찍했고 하루종일 앉아서 듣고 있으려니 정말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학기를 아직 이수중이었던 학부생이었던 나는 기말고사 준비를 핑계로 늦은 시간까지 병실에서 종종 나가있곤 했었다. 그렇게 기말고사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입원해서 종강할 때쯤 퇴원을 했었다.


퇴원 후 그렇게 오래 지나지 않아 또 열이 40도까지 올랐다. 나는 그때쯤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열로 응급실을 자주 갔었다. 그날도 그랬다. '고작 이 정도로 구급차를 부르는 건 민폐인 걸까' 하는, 다들 한다는 그 생각을 하면서 택시를 잡아타고 꾸역꾸역 응급실로 갔다. 접수를 하고 열을 재고 다시 병실 침대에 누워 해열제를 맞고 열이 내려가던 중이었는데 내 옆의 어떤 아저씨가 답답하신 듯 기침을 하셨다. 꼭 입원했을 때 맞은편 침상의 그 아저씨처럼.


그리고는 공황이 왔었다.



#2.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이 병원에서 영원히 나갈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리난장이 틀리고 숨이 안 쉬어졌다. 몸을 가만히 두면 몸이 폭발할 것 같았다. 폭발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당장 병원 밖으로 나가서 미친 듯이 달려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달리다가 죽어야 편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게 뭔지 알지 못했고, 설명할 수 없었다. 그냥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지더니 죽을 것 같아졌다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무서워졌다. 나는 침대에서 몸을 배배 꼬고 끙끙 앓다가 침대 밑으로 굴러 떨어져서 바닥을 기었다. 기면서 도와달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잠시 쳐다봤지만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응급실에서 그건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바닥을 기고 있는데 의사 선생님이 내 앞을 지나가셨다. 나는 숨을 헐떡이면서 선생님을 불렀지만 선생님은 듣지 못하신 것 같았다. 그런데 들으셨다고 한들 내가 이걸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걸 뭐라고 해야 돼. 이게 뭔지 모르겠다. 아무한테도 설명을 못하겠다. 병원에 있어도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못할 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겨우 일어나 데스크로 가서 거기 계신 선생님께 다짜고짜 병원에서  나가게 해달라고 말했다. 선생님은 무슨 법인지 제도인지 때문에 지금 응급실 밖으로 나가는 건 안된다고 말씀하셨다.


"선생님 저 치료 안 받아도 되니까 제발 나가게 해 주세요."


"그러니까 환자분 어디가 불편하신데요."


"저도 모르겠어요. 그냥 갑자기 죽을 것 같아요. 제발 나가게 해 주세요. 그냥 나가서 좀 걸어야 될 것 같아요."


"환자분 나가시는 건 어려우세요. 일단 물을 좀 드시고 여기 오른쪽에 있는 복도라도 계속 걸어보실래요?"


한 시간 정도 물을 마시고 복도를 걷고 다시 물을 마시고 계속 걸었다. 짧은 복도였는데 왕복으로 계속 걸었다. 그렇게 걷다가 너무 힘들어서 잠시 앉았는데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 뭔지는 모를 그게 풍선에서 바람 빠지는 것처럼 가라앉는 것 같았다. 목에 뭐가 걸려있는 것 같은 이물감과 소리 지르고 싶은 충동 정도만 약하게 남아 잔잔하게 괴로운 기분이 들었는데 그 정도면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웠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곯아떨어졌다.



#3.

"현석아, 밖에 부처님 봐라. 저기 절있네. 부처님 우리 현석이 금방 낫게 해 주세요. 아무렇지도 않게 해 주세요."


아빠는 교회 다니는데. 엄마는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내내 괜히 하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말을 하면서 울었다. 아빠도 울고 나도 계속 울었다. 정확히는 내가 계속 큰 소리로 울어서 엄마랑 아빠까지 울게 만들었다. 미안하다고 하면서 울었다.


카페 주차장에 주차된 차에서 혼자 누워있었는데, 약을 먹으러 부모님과 나만 먼저 차를 타고 집으로 가기로 했다. 돌아가는 차에서 우리는 그렇게 계속 울었다. 나는 부모님이 정말 버겁고 원망스럽고 힘들고 싫다고 늘 생각했는데 입에서는 미안하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엉엉 울면서 계속 미안하다고 말했다.


"미안해. 내가 이래서 미안해."


"네가 일부러 그카나? 니가 왜 미안한데!"


"그래도 미안해. 내가 이래서 미안해. 없다고 생각하고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미안해."


"그러면 우리가 마음이 편하겠나?!"


"미안해. 내가 이래서 미안해."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계속 울었다. 그래서 셋이 다 같이 계속 울었다. 미안해 엉엉. 내가 이래서 엉엉 미안해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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