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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튼애플 Oct 27. 2020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반짝일 수 없던 만남

일본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줄거리 및 리뷰

마작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주인공 츠네오. 그는 그곳에서 유모차를 끌고 다닌다는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그 소문은 마약을 배달한다느니, 미라를 싣고 다닌다느니 하는 결코 좋지 않은 쪽의 것.


그 날 새벽, 사장의 애완견 산책을 돌던 츠네오는 소문의 유모차를 보게 된다. 사고 난 유모차를 열어보니 그곳에 있던 건 츠네오의 또래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줄거리


알고 보니 장애가 있는 손녀딸이 산책을 나가고 싶어 했고 이렇게나마 바깥 구경을 하게 해 줬던 것.


이때 아침 식사를 대접받게 되는데, 손재주가 좋았던 건지 요리에 소질 있던 그녀의 음식을 맛보고 그는 종종 그녀의 집을 찾는다.


그리고 제법 친해졌는지 이름을 묻자, 


조제

그녀의 원래 이름은 쿠미코였지만 좋아하던 소설 속 주인공의 이름인 조제를 마치 자신의 이름처럼 쓰고 있던 것이다.


조제의 외출이 허락된 건 항상 동이 틀 새벽녘. 나머지 시간은 방에 틀어박혀 앉아 남들이 버리려고 내다 놓은 책을 읽을 뿐이었다.


그런 조제에게 호감이 생긴 츠네오는 색다른 이벤트를 준비한다. 유모차에 보드를 연결하고 대낮 산책을 떠나면서 말이다.


산책 도중 그녀는 자신의 아들을 만나러 가겠다고 한다. 그런데 아들의 이름을 대자 나온 건 다시 츠네오 또래의 건장한 청년.


알고 보니 이들은 같은 아동 보호 시설에서 자랐었고, 그때의 연으로 말도 안 되는 부모 관계가 성립된 것.


이 일로 그는 조제의 할머니에게 크게 혼이 난다. 조제 역시 혼이 났고 츠네오는 쫓겨나듯 집에서 나오게 된다.


한편, 츠네오는 조제와 할머니의 사건을 사회복지를 전공하던 여자 친구인 카나에에게 이야기한다.


카나에는 적극적으로 사회 보장 시스템에 대해 소개를 해주었고, 그녀의 도움 덕에 조제의 집은 시청 복지과에서 무료로 집 개조를 해주게 된다. 이때, 카나에는 반갑게 조제를 맞이했지만 조제는 그러지 못한다.


그날 저녁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조제를 보러 온 츠네오. 하지만 그녀는 문도 열지 않은 채로 물건을 던지며 그에게 불만을 토로한다.


한참 문을 두드리자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더 이상 찾아오지 말라는 말뿐.


그 후로 한동안 연락을 끊고 살게 된 츠네오와 조제.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현장 견학을 위해 집 개조의 도움을 줬던 복지과 직원을 찾아간다.


거기서 듣게 된 뜻밖의 이야기. 바로 조제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


걱정이 된 그는 한 달음에 그녀의 집으로 찾아간다. 하지만 여전히 까칠한 태도의 조제는 그를 쫓아내듯 이야기를 한다. 그러자 돌아가기 위해 끈을 묶던 그에게 조제는 서러움의 눈물을 토해낸다.


가란다고 진짜 갈 놈이면, 가버려

이날 일을 계기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은 연인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그녀가 보고 싶다던 호랑이를 보러 동물원을 찾아가기도 하고 츠네오의 부모님을 뵈러 만나러 갈 약속을 잡기도 한다.


그녀의 아들이라 불렸던 코지에게 차를 빌려 츠네오의 부모님을 뵈러 츠네오의 고향집으로 향하게 되는 두 사람.


그전에 물고기를 보고 싶다던 조제를 위해 수족관에 들렀지만 하필 휴관이었던 이 곳.


그때 마구 떼를 쓰던 조제에게 질린 건지 차로 돌아온 츠네오의 태도는 냉담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제사 불참 소식을 알리는 츠네오. 그런 츠네오의 주저함을 알았는지 조제는 집으로 향하던 내비게이션의 종료 버튼을 눌러버린다.


장애라는 편견을 이겨내고 사랑을 만들어 나가던 두 사람. 하지만 부모님께 인사드리기 직전 츠네오는 깊은 고민에 빠진다. 과연 이 두 사람의 사랑은 이후에도 지속될 수 있던 걸까?


이유 없는 혐오와 맞서야 하는 장애인


이 작품은 다나베 세이코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일본의 로맨스 영화다.


많은 분들이 인생 영화 혹은 좋았던 로맨스 영화를 꼽을 때 종종 보이는 작품 중 하나라, 영화를 접하지 않은 사람도 제목 정도는 익히 들어봤을 영화기도 하다.


이 작품은 츠네오와 조제의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강아지를 산책하던 도중 츠네오는 조제를 알게 된다. 만나자마자 칼을 휘두르던 그녀는 경계심이 많은 인물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마작 방에서 들었던 것처럼 조제의 할머니가 ‘유모차에 마약을 운반한다’, ‘돈을 운반한다’라는 괴소문이 퍼지며 동네 불량배들한테 종종 습격을 당해야 했기 때문에.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않았는데 이들은 일방적인 혐오를 견뎌야만 했다. 이유는 이들이 수상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더 정확히는 이들이 약자기 때문이었다.


연로한 할머니와 스스로 거동이 불가능한 손녀딸 조제. 이 두 사람은 신체적으로 보나 사회적으로 보나 약자의 포지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환경은 이들을 조금 더 처참한 상황으로 내몰아 간다.


이들이 선택한 건 회피였다. 최대한 사람들에 눈에 띄지 않고 살다 보면 해코지를 당할 일이 그만큼 사라지니 말이다.


그녀의 할머니가 조제를 대낮이 아닌 새벽에만 산책시켰던 것도 바로 이 이유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조제가 일반인과 같은 삶을 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장애인과 일반인의 사랑과 한계


하지만 츠네오의 등장 이후 흐름은 묘하게 바뀐다. 그는 요리도 잘하고 여러 방면으로 박식한 조제에게 호감을 느끼는데, 이 과정에서 그녀가 장애인이어서 갖게 되는 일종의 편견이나 연민에 빠져서가 아니다.


그는 진심으로 조제에게 이성으로서 호감을 느낀다. 또한 장애에 대해서 캐묻는 법이 없으며, 학교 친구들과 대화하듯 이야기를 나눴고, 대낮에도 그녀와 외출을 감행하기도 한다.


단순히 위로를 위해, 혹은 측은지심의 발로로 이런 행동을 했다는 데에는 큰 무리가 따른다.


비록 츠네오가 여자 친구가 있는 상황에서 조제에게 반한 행동은 도의적으로 문제가 있던 장면일 수는 있지만 적어도 조제를 향한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다는 반증이 되기도 한다.


이는 그녀에게도 큰 힘이 되어준다. 언제나 답답한 유모차 속에서만 살아가야 했던 그녀가 자유롭게 바깥공기를 쐴 수 있게 되었으며 소원이었던 동물원까지도 함께 갈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는 사랑 앞에서라면 ‘어떤 장애물도 소용이 없다’라는 식의 메시지로 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두 사람의 관계도 결국 삐걱거리게 된다. 수족관에 들어가지 못해 짜증을 내는 모습에서 시작되었던 이 삐걱거림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더 큰 파열음을 만들어 낸다.


근본적으로 두 사람은 살아온 세계가 달랐다. 츠네오가 대학생활을 하고 아르바이트도 하며 지극히 일반적인 삶을 지내왔다면, 조제는 집 안에 갇혀 여러 욕구를 거세당한 채 살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조제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다. 츠네오와 나란히 누웠던 모텔방에서 그녀는 자신이 깊은 심해에서 왔음을 이야기한다.


츠네오와 만나기 위해 깊은 어둠 속을 헤치고 수면으로 헤엄쳐 온 조제. 그녀는 장애라는 편견, 그리고 이에 수반된 이유 없는 혐오에 대해 인정하고 체념해 왔던 인물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자 좀 더 밝은 세상 밖으로 나오고자 노력했다. 비록 몸은 불편할지라도 전보다 당당히 세상과 마주하고자 하면서 말이다.


츠네오와의 사랑이 결실을 맺으며 이 노력은 성공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교제 기간이 길어지고 맞지 않는 부분이 하나 둘 튀어나오자 조제의 노력도 물거품으로 돌아간다.


이는 그녀가 해저에서 왔다는 데에서 기인한 한계기도 했다. 해저에서 온 물고기였던 조제는 아무리 노력해도 물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물 밖에서 살 수 있는 물고기란 없기 때문에.


결국 그녀는 스스로도 자신의 한계점을 명확히 깨닫고 있었다. 애써 외면하려 했을 뿐 츠네오와의 사랑이 결코 순탄치 않을 것임을 그녀도 알고 있었으니까.


이는 휴관한 수족관 앞에서 그녀가 전에 없이 화를 낸 이유기도 하다. 그녀는 자신과 물고기를 동일시했었다. 그래서 이상하리만치 수족관의 집착했고 수족관을 찾아 자유롭게 헤엄치는 물고기를 보며 마음의 안식을 얻고자 했다.

하지만 수족관은 문을 닫았고 츠네오는 너무 쉽게 그 상황을 받아들인다. 즉 츠네오는 장애라는 편견에서 자유로운 편이긴 했지만 마지막 그 걸음까지 함께 하지 않을 사람이란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라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조제는 심정적으로 함께 그 상황을 분노해주길 바랬을 거다. 자신의 꿈이 무너지는 순간을 그저 체념하며 바라볼 게 아니라 같은 목소리로 울어주기를 바랐을 거다.


물론 분노한다고 해서 사건은 해결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조제는 그걸 바랬다. 자신의 신체 문제가 단순한 분노로 해결될 수 없음에도 최선을 다해 발버둥 치는 만큼 심정적으로나마 위로를 받고자 했으니까. 하지만 츠네오는 단순히 문제 해결의 관점으로 접근했고 조금의 공감도 해주지 않는다. 그녀가 믿고 있던 유일한 끈이자 희망이 끊어지는 순간이 바로 이 장면이었다.


또 하나 덧붙이자면 수족관 속 물고기 역시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얻을 수 없었다는 거다. 이들은 원래 살던 곳에서 떨어져 나와 플라스틱 통에 갇힌 채 평생을 살아야 했고,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개관 날이 되면 사람들에게 모습을 보여야만 하는 운명이었다.


그녀가 꿈꾸던 수족관이라는 이상향에도 ‘유토피아’란 존재하지 않으며 결국은 불행의 심해 속으로 침전해야 함을 묘사하고 있었던 거라 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본다면 조제의 희망은 애초부터 가질 수도 없고, 꿈꿀 수도 없는 말 그대로 '이상 세계'의 지나지 않는 소망 혹은 염원 이상의 가치를 지니지 못하는 부분이었을 것이다.

섬세한 슬픔을 표현한 아름다운 마침표


이 작품의 엔딩 장면을 참 좋아한다. 강렬했던 만남과 대비되는 덤덤한 마무리가. 크게 오열하는 츠네오와 홀로 우뚝 서는 조제의 교차가. 크레딧을 장식하는 배경음악까지.


작품은 아주 아름다운 이야기로 끝맺음할 수 있음에도 뻔한 흐름으로 가는 걸 거부한다. 만약 클리셰 범벅의 멜로 영화로 끝이 났다면 아마 많은 사람들의 인생영화로 꼽힐 일도 없었을 것이며, 주연 배우였던 이케와키 치즈루, 츠마부키 사토시의 열연을 볼 기회를 영영 빼앗겼을 것이다.


이런 식의 엔딩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아쉬울 수 있는 마무리였지만 개인적으론 그 어떤 로맨스 영화보다 아름다운 마무리였다고 생각한다.


곱씹을수록 길게 남는 여운, 그리고 엔딩 이후의 삶에 대한 막연한 예측을 해볼 여지가 많았다는 점도 이 작품을 더 매력적으로 만들고 있을 뿐 그 어떤 망설임도 느껴지지 않는 비장한 마침표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iQhwK9LdJ0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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