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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튼애플 Mar 14. 2024

사랑을 몰랐기에 사랑에 목을 걸던 미숙했던 나에게

영화 <로봇 드림> 줄거리 및 리뷰

영화 <로봇 드림> 줄거리


도그는 뉴욕 도심에서 혼자 살아가고 있다. 쓸쓸히 TV를 보며 냉동식품을 돌려먹던 중 'Are you alone?'이라는 광고 문구를 접한다. 광고는 반려 로봇을 판매하는 내용이었고 뭔가에 홀린 듯 도그는 로봇을 주문한다. 며칠 뒤 로봇은 그의 집으로 도착한다. 엄청난 무게의 박스를 들 수도 없었지만 그는 낑낑대며 상자를 옮겼고 조립하는 데 성공한다. 전원 버튼을 누르자 로봇은 작동하고 그와 로봇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두 사람은 함께 뉴욕 거리를 활보하기도 하고 공원 산책을 나가기도 한다. 특히나 두 사람은 음악과 춤을 좋아했는데 공원에서 누군가 틀어둔 'Earth, Wind & Fire'의 <September>에 맞추어 흥겨운 춤사위를 보여준다. 마치 천생연분이라도 되는 것마냥 두 사람은 잘 통했다. 도그는 외로웠던 시절을 벗어던진지 오래였고 친절한 주인을 만난 로봇 역시 행복하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은 바다에 놀러 가게 된다. 엄청난 높이에서 다이빙을 하는 로봇을 보며 걱정하기도 했지만 수영도 잘하는 그와 도그는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로봇은 기계였다. 바닷물이 들어간 이음새 부분은 철을 녹슬게 했고 폐장 시간이 되어 나가려는 도중에 그의 몸은 말을 듣지 않게 된다. 도그가 어떻게든 옮겨보려 하였으나 너무 무거운 로봇의 무게 탓에 그는 로봇을 구해내지 못한다. 대신 다음 날 일찍 로봇 수리 서적과 공구함을 들고 해변을 다시 찾는다. 애석하게도 해수욕장 영업이 어제가 마지막이었고 출입구는 굵은 자물쇠로 굳게 닫혀있다. 몰래 넘어가려고도 했으나 철통같이 해안을 지키는 경비원에게 붙잡히는 신세가 될 뿐이다.


도그와 로봇은 6월을 애타게 기다린다. 하지만 아직 9월에 불과했고 개장까지 9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그 사이 둘에게 많은 일이 일어난다. 도그는 로봇과의 헤어짐을 잊기 위해 스키 캠프도 떠나고 공원에서 연날리기 체험도 한다. 그때 연날리기를 도와준 '덕'과 연인 사이로 발전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날 그는 훌쩍 미국을 떠났고 도그는 다시 혼자 남는다. 그 사이 로봇은 보트 훈련을 하던 돼지들에게 발견된다. 자신을 구해줄 거라는 믿음에 활짝 웃어 보였지만 그들은 로봇의 다리를 잘라내 보트를 수리하고 길을 떠난다. 로봇은 다시 홀로되고 계절은 차가운 겨울을 맞이한다.


꿈은 반대로 일어난다


작품은 이종(異種)의 사랑과 우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람과 동물 사이도 아니고 사람과 로봇 사이도 아닌 동물과 로봇 사이를 묘사하면서. 개와 로봇의 이야기는 모두에게 낯설게 들릴 거라 생각한다. 인간과 로봇의 사랑 이야기는 많아도 동물과 로봇의 사랑 이야기는 흔치 않은 접근법이었으니 말이다.


두 주인공의 만남이 아주 전형적인 물건 구매의 패턴이었다면 헤어지는 것은 갑작스레 찾아온 천재지변과 같은 사건 때문이다. 로봇이라는 걸 망각하게 할 정도로 표현에 적극적인 로봇이 녹슬어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둘 모두에게 무력감을 선사한다. 로봇은 자신의 경솔함 때문에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고, 도그는 부족한 자신의 힘으로는 로봇을 옮길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둘의 헤어짐은 죄책감과 슬픔으로 얼룩져있다.


도그는 로봇을 구하러 갈 날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던 그는 이따금씩 슬픔에 빠지기는 했으나 대체로 잘 지내왔다. 심지어 중간에 덕이라는 여자친구(?)도 생기며 그는 로봇을 잊은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로봇은 아니다. 그는 언제나 모래사장 위에 던져진 채로 도그를 그리워하고 기다린다. 도그 역시 자신과 같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그가 자신을 찾으러 와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 바람은 꿈으로 이어진다. 그는 종종 도그와 함께 하는 꿈을 꾼다. 자신은 해변가에 버려져 있지만 도그와 환상의 세계 속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꿈을 꾼 것이다.


슬프게도 그 꿈은 항상 반대로 일어난다. 그가 다른 동물의 호의로 수리되어 철조망을 가뿐히 뛰어넘고 도그를 찾아가는 상상을 하는 순간은 그의 다리가 잘리는 중이었고, 무지개 동산에서 도그를 만나러 가는 순간은 얼어붙은 얼음이 자신의 얼굴로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그에게 꿈은 늘 반대였고 항상 최악의 상황으로 일어났다. 두 주인공의 이별의 순간 도그 보다 로봇에게 더 많은 감정 몰입이 되었던 것도 이 이유였을 것이다. 도그는 때때로 슬프고 보통은 즐거웠던 반면 로봇은 항상 외로웠으니까. 도그는 자신의 꿈에서 로봇을 찾지 않았지만 로봇은 항상 도그와의 행복한 시간을 떠올렸으니까.


사랑과 우정 사이


두 사람의 재회는 너무나 멀기만 했다. 9개월이란 시간은 그들이 함께했던 1개월 남짓의 시간을 기다리게 하는 데 충분치 않았을 것이다. 더 정확히는 도그에게는 말이다. 이들은 결국 각기 다른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이 과정에서도 도그는 자의적으로 선택을 한다. 다음 해 6월이 되고 로봇을 찾으러 한달음에 해변을 찾지만 그는 로봇이 사라지고 다리 한 쪽만 남았다는 걸 알게 된다. 도그는 로봇을 찾지 못해 슬퍼하지만 곧 다른 로봇을 구매해 그의 자리를 대체한다.


반면 로봇은 6월이 오기 전에 험한 일을 당한다. 고철 수거업자에게 발견되어 고물상에 팔려갔고 고물상에서 파트별로 분해된 채 고물로 팔려간다. 다행히 고급 맨션의 관리인이 로봇의 머리를 발견하고 그에게 새 생명을 불어 넣어준다. 라디오가 그의 몸이 되었고 금색으로 빛나는 새 다리 역시 그에게 붙여주게 된다. 음악을 좋아했던 로봇은 좋은 주인을 만나 새로운 삶과 마주한다.


얼마의 시간이 더 흐른 뒤 로봇은 도그의 모습을 발견한다. 너무 반가워 소리를 칠 뻔하지만 그에게는 이미 다른 로봇이 있다. 그리고 자신 역시 맨션 관리 일을 하는 새 주인이 있다. 두 주인공은 여전히 서로를 그리워하지만 현실적으로 다시 맺어지기란 어려움이 있다. 이때 로봇은 자신의 몸통에 달린 카세트를 켜고 <September>를 재생한다. 볼륨을 높이자 길 건너 쇼핑을 하던 도그에게까지 그 소리가 닿는다. 도그는 무언가에 홀린 듯 스텝을 밟는다. 공원에서 로봇과 즐겁게 춤을 췄던 그 춤을.


그제야 도그는 이 음악이 로봇과 함께 했던 시간이었다는 걸 알게 되고 주위를 둘러본다. 하지만 들키기 싫었던 로봇은 기둥 뒤에 숨게 된다. 서로가 지켜야 할 대상이 바뀐 이 시점에서 서로 얼굴을 맞대는 건 결코 좋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도그는 황망하게 주변을 살피지만 이내 손을 내미는 새로운 로봇과 그곳을 벗어난다. 로봇 역시 새 주인에게 돌아간다.


이는 두 주인공의 만남이 이미 지나간 어떤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현실에는 이미 서로에게 충실한 상대가 있고 충분히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과거의 우정 혹은 사랑의 대상과 만난다는 건 이 행복을 포기하고 불확실한 풍파를 맞이하는 것이다. 그 안락함을 포기하기에는 두 사람 모두 행복한 상태였다. 두 사람은 엇갈림으로써 서로를 응원한다. 자신이 해줄 수 없는 일을 다음의 상대가 해주기를, 이전의 사람에게 받을 수 없던 사랑을 지금의 사람에게 받기를 소망하며 말이다.


현실적인 헤어짐과 시작


영화는 현실적인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과거의 찬란했던 때를 기억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헤어지고 만남을 반복하는 사랑 이야기. 그리고 그 사랑을 통해 성장하는 이야기를. 로봇과 도그의 만남은 미숙함뿐이었다. 외로움이란 감정에 매몰되어 감정적으로 크게 끌리지도 않던 로봇을 주문한 도그. 그리고 맹목적으로 그를 따르는 게 사랑인 줄 알았던 로봇. 주인공은 사랑 앞에 서툴렀다. 그래서 많은 실수를 했고 헤어져야 했다.


로봇이 녹슬게 된 건 바닷속을 마음껏 헤엄쳐서이다. 사람의 관점에서 보자면 자신을 갉아먹는 버거운 일이 있음에도 상대에게 맞춰주는 것만이 자신의 행복이자 사랑인 줄 착각해서였을 거다. 도그가 로봇을 들 수 없었던 건 자신이 감당하지 못하는 무거운 로봇을 구매했기 때문이다. 이 역시 사람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상향적인 상대를 그림으로써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이상형을 만났기 때문이다.


완벽해 보였던 둘의 사이는 사실 처음부터 삐걱거릴 수밖에 없었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감정적 지지를 해주고, 한쪽은 그 감정적 지지가 고마워 더 많은 걸 해주기 위해 출혈을 감내하는 치킨 게임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도그가 충분히 능력을 갖췄다면, 로봇이 적당히 자신을 돌볼 줄 알았다면 생기지 않았을 문제였을 테지만 이들에겐 사랑이 전부였고 상대방이 삶의 이유였다. 자신이 망가지는 건 전혀 개의치 않고 상대를 향했다. 결과론적으로는 그 절대적인 추종이 두 사람을 파멸로 이끌었지만 말이다.


주인공의 서툰 사랑은 어떤 식으로든 종료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헤어짐이라는 게 꼭 제로섬 게임은 아니다. 둘은 처음의 사랑을 통해 상대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자신이 오버 페이스를 하지 않고도 마음을 전하는 방법을 익혔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의 다음 사랑은 펄펄 끓는 것 같진 않아도 적정한 선에서 상대를 위하고 배려한다. 동시에 자신의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보호한다. 모르긴 몰라도 이들의 지금 사랑은 이전 사랑보다 조금 더 성숙해진 방법으로 더 오랜 시간 지속될 것이다.


수많은 영화가 겹쳐 보이는 영화


독특한 소재 때문인지 주인공의 절절한 사랑 때문인지 겹쳐 보이는 영화가 참 여러 개 있었다. 먼저 모래사장에 누워 도그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로봇의 모습에서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A.I.>가 사람이 아닌 로봇과 사랑에 빠진다는 점에서는 스파이크 존즈의 영화 <그녀>가. 그리고 엇갈린 사랑이지만 서로의 다음을 응원한다는 점에서는 데미언 셔젤의 영화 <라라랜드>가.


가슴 아픈 이들의 사랑 이야기는 어떤 영화를 가장 크게 대입하느냐에 따라 새드 엔딩으로도, 해피 엔딩으로도 보였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사랑은, 그리고 변하지 않는 사랑은 없다라는 점에서 비추어 볼 때 두 사람의 이야기는 행복한 결말 쪽에 가깝지 않나 싶었다. 그래서 <A.I.>라기보다는 <그녀> 혹은 <라라랜드>와 닮아있다. 두 영화도 어떤 면에서는 새드 엔딩으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주인공이 상처를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는 해피 엔딩으로 해석하는 데 무리가 없는 작품이었다. 그래서 도그와 로봇 역시 해피 엔딩에 가까웠다 생각한다.


대사 하나 없이도 이 절절한 감정을, 그리고 뛰어난 영화로 소개되는 3개의 영화를 모조리 소환해낸 이 영화에 퀄리티는 놀라울 정도였다. 시종일관 영화에서 흐르는 <September>의 선율도 너무나 좋았지만 무해한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보는 건 정말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의 슬픈 내일이 아닌 행복한 마침표를 기원하게 되는 지금의 감정이 드는 이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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