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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씨 Nov 07. 2019

르네상스에서 한 걸음 더, 뉴트로

기사로 나가지 못한 원고.

 나는 올드스쿨이란 장르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타투는 올드 스쿨이 가장 멋있고, 헤어스타일도 바버샵에서 클래식 포마드를 고수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스타일도 50-60년대 미국의 워크웨어를 지향한다. 앞서 다른 글들에서 몇 차례 이야기했지만, 나는 지금 개인사정으로 미국에 와있다. 아, 미국에 와있는다는 게 자랑은 아니고, 50년대 미국을 겪으신 교수님께서 ‘너는 무슨 50년대에서 튀어나온 사람같다’라는 말을 하셨다는 게 자랑이다. 분위기를 보아 분명 놀리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내게는 더할 나위 없는 칭찬에 가깝다.


아무튼 나는 ‘올드’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그냥 비슷하게 따라하는 수준이 아니라, 사진을 보며 공부해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려고 노력하는 수준으로. 농담을 좀 섞자면, 던킨 도넛에서는 올드 훼션드만 먹는다. 그렇게 ‘올드 훼션드’에 집착하며 살아가는 내게, 이번에 에디터 M께서 뉴트로에 대해서 써달라고 하셨다. 그럼요. 과거로의 회기에는 제가 전문이죠. 그런데 확실히 요즘 ‘뉴트로’가 핫하다고 듣기는 했다만, 당최 뉴트로가 뭔지 모르겠다. ’레트로’랑 비슷한 건가?


부끄럽게도 여러분께 알려드리기 위해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나도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용어다. 그럼 우선 뉴트로와 레트로가 어떻게 다른지 짚어보자. 자고로 모르는 게 있으면 당당하게 도움을 받으면 된다. ‘널 위한 문화예술’을 참고해보자. (https://youtu.be/QBRQn__AdmE)


정리하자면, 레트로는 과거에 어떤 문화를 겪은 세대가 다시금 그 문화를 소비하며 향수를 느끼는 현상, 뉴트로는 다소 젊은 세대가 이미 지나간 기성 세대의 문화를 나름대로 재해석하여 소비하는 현상을 뜻하는 단어이라고 보면 되겠다. 행여 한 번에 이해가 되지 않는 분들을 위해 예를 들어보자. 50년대 미국을 겪으신 교수님께서 50년대 미국 워크웨어를 그리워하시고 그때의 스타일을 추구한다면 레트로, 50년대 미국을 겪어보기는 커녕 존재하지도 못했던 내가 50년대 스타일을 추구하는 현상을 뉴트로라고 보면 된다.


자자, 그럼 뉴트로는 왜 뜨는 걸까? 사실 레트로가 뜨는 거야 이해가 된다. 이제 기성세대가 된 사람들이 젊었을 적 문화를 그리워하는 현상이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근데, 왜 과거의 문화는 경험도 못해본 사람들이 당시의 문화를 누리며 즐거워하는 걸까? 뉴트로건 레트로건 기본적으로 ‘복고’라는 큰 틀에서 이해한다면, 어느정도는 이해해볼 수 있다. 사실 ‘불황에는 복고가 뜬다!’라는 이야기는 꾸준히 나오는 이야기다. 하도 자주 듣다보니, 이제는 뉴스에서 불황 이야기가 나오면 자동으로 복고라는 단어가 떠오를 지경이다. 대단한 분석인 양 싶지만, 쉬운 말이다. ‘현재는 어렵고, 미래는 불확실하니 이미 지나간 호시절을 그리워한다’는 이야기다.  중요한 건, 요 ‘좋았던 호시절’이라는 키워드다. 바로, 80-90년대, 더 정확히 말하면 바로 X세대의 시절들. 자자, 지금부터 이야기는 조금 흥미롭지만, 어렵고 복잡해질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존경하는 선배들께 배운 이야기들을 내 나름대로 결론내린, 가설에 가깝다는 걸 알고 넘어가자.


한국 문화라는 녀석은 꽤나 굴곡있고 힘든 시간을 보낸, 눈물을 자아내는 안타까운 녀석이다. 조그마한 반도에서 자기네들끼리 다퉈가면서 반만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면 당연히 독자적인 문화가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고유한 한국 문화는 크게 2번의 대격변을 맞이하게 된다. 


첫 번째 대격변은 모두가 예상할 수 있는, 일제 강점기다. 사실 두 번째 대격변도 이 시기와 연관이 있지만, 지나치게 정치적인 이야기는 생략하도록 하겠다. 교과서에서 한 번쯤 보았을 이야기지만, 민족말살정책이라는 게 민족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정책이니 당연히 최우선적으로 파괴되는 건 문화일 수 밖에 없다. 결국 그 과정을 거치면서, ‘지켜야 할’ 전통 문화는 꽤나 소실되거나 변질되어 버려서, 그다지 지킬 전통 문화 자체가 많지 않은 상태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그래도 과거의 문화를 향유했던 사람들이 존재하니, ‘일제 강점 이전의 한국 문화’ 특유의 정서를 지키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냈다. 대표적인 영역이 음악인데, 지금이야 힙합과 락이 한국 음악의 큰 축이지만 당시에는 블루가야말로 한국음악의 정수였다. 생각해보면 한의 정서라는 건 블루스와 꽤나 잘 맞는 것 같기도 싶다. 나는 이 시기의 한국 문화를 ‘포스트 한국 문화’라고 부르곤 하는데, 편의상 전통 한국 문화와의 구분을 위해 이곳에서도 그렇게 부르기로 하겠다.


그렇게 간신히 부활해 싹을 틔우고 묘목정도로 자라날 때 쯤, ‘포스트 한국 문화’를 다시금 밑동만 남기고 잘라버린 2번째 대격변이 등장한다. 바로, 군부독재 시기다. 군부 독재의 검열과 감시는 또다시 한국 문화에 크게 변화를 준다. 자연스러운 발전이 아니라, 통제에 의해 발전되게 된다. 참 기구하기도 하다. 다시금 음악의 예를 들자면, 이 시기를 기점으로 블루스는 지고 락이 폭발적으로 발전한다. 바로 저항을 표현하는 방법론으로서 말이다.


자,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그렇게 두 차례의 고비를 넘긴 한국 문화는 민주주의로 말미암은 자유와 IMF 이전까지 풍족했던 경제 상황, 물밀듯 들어오는 외국 문화들을 자양분삼아 폭발적으로 자라나기 시작한다. 그렇게 쑥쑥 자라 결실을 맺은 시기가 X세대다. IMF이후에는 그로 인한 위축과 다시금 찾아오는 경제 침체로 자랐다 쪼그라들었다를 반복하는 중이니 X세대의 문화야말로 한국 문화의 르네상스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생각해보면 작금의 문화에 가장 가까운 건 80-90년대의 문화다. 과거로의 회귀를 모두가 외치지만, 사실 마냥 과거로만 돌아가지는 않는다. 아무리 촌스러울 수록 멋난다는 시대지만, 사실 촌스러운 건 그냥 촌스러운 거다. 물론 내 생각일 뿐이지만, 대충이나마 왜 지금 뉴트로, 레트로가 유행인지를 이야기해봤다. 꽤나 암담하게 이야기한 것 같다. 그럼 결국 지금 세대는 X세대의 잔재에 불과하고, 그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말로 들릴 수도 있으시겠다. 하지만 글쎄,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어차피 유행이라는 건 돌기 마련이다. 15년에서 20년이면 유행하나가 다시 돌아오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중요한 건 레트로가 아니라 ‘뉴트로’라는 용어다. 과거에도 당연히 돌아온 유행을 나름대로 재생산했겠지만, 그걸 따로 이름을 붙여부르진 않았다. 크게 다르지 않았거나, 별로 눈에 띄지 않는 현상이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레트로가 아니라 ‘뉴트로’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여야할 정도로 중요한 사회현상에 가깝다. X세대의 문화가 한국 문화의 르네상스라는 건 사실 그다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하지만 르네상스가 가장 아름다운 시기였으니까, 그 자리에서 발전하지 않겠다는 건 꽤나 멍청해보이는 주장이다. 당연히 우리는 나아가야하고, 발전해야한다. 뉴트로는 르네상스에서 나아간 꽤나 크고 중요한 한 걸음이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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