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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드유코치 Sep 16. 2024

나만의 동굴이 필요하다

그림으로 내 마음을 담다!


{남성 집단 상담 2주 차}

1. 내 몸의 에너지를 표현해 보세요

: 숲의 따듯함과 태양의 열정이 나를 감싸주었으면 좋겠다. (이 그림을 본 상담사 아내의 반응: 우울해 보이네요... ㅠㅠㅠ)


2. 나만의 동굴 속과 동굴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그림을 그려보세요.




이것저것 끄적이고 있는데 상담사분이 다가오시더니,


"촌놈님! 지난주도, 오늘도, 촌놈님의 그림을 보니

불안과 우울이 있으신 것 같아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네! 맞아요, 저는 늘 불안하고, 조금의 우울감을 느낄 때가 있어요."


너무 빠른 인정에 살짝 당황(?) 하신 듯 보였지만,

난 그 이유를 거침(?) 없이 이야기했다.


"퇴사를 결정하고 육아를 선택한 후, 저는 늘 불안함을 가지고 있어요. '증명해 내야 한다, 증명해 낼 것이다' 내 선택이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것은 증명해 내야만 한다는 강박(?) 때문인지 늘 불안하고 우울감이 동시에 찾아와요."


증명해 내야만 한다는 마음이 어느 순간부터는 강박이 돼버린 것 만 같다. 나만 뒤처지고 나만 뒷걸음질 치고 있다는 생각에 계획하지 않았던 일을 하다 상처와 실패를 얻기도 하고, 계획을 너무 무리하게 밀어붙이다, 또 실패를 맛보기도 하고, 물론 성공도 있었지만 실패 숫자에만 매몰되어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스스로를 동굴로 구겨 넣고 있었다.




"그럼 촌놈님의 동굴 안에는 무엇이 있나요?"


"저의 동굴에는 책상 하나, 편안한 의자 하나 그리고 책이 있어요."


"그렇군요, 그럼 동굴 안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사이에 있는 이것은 무엇인가요?"


"사다리요, 저는 동굴 안으로 자주 들어가는 편인 것 같아요. 그래서 동굴과 세상을 연결하는 사다라기 늘 필요하고요. 그래서 사다리를 그렸습니다."


"그렇다면 동굴은 세상보다 아래쪽에 있는 건가요?"


"네! 맞아요. 나의 동굴은 세상보다 살짝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동굴로 걸어 내려가야 하고, 세상으로 걸어 올라와야 합니다."


누구나 자신만의 동굴이 필요하다.
나는 왜 동굴에 머무는 걸까?
이 동굴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촌놈님에게 동굴은 어떤 공간인가요?"

상담사님이 조심스레 물었다.

 

"음... 나에게 동굴은 세상과 연결되기 위한 휴식의 공간인 것 같아요. 어떤 면에서는 세상의 시선과 책임, 요구등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은 공간이 되기도 하죠.

저는 동굴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기도 하고, 위로하기도 하고, 채찍질하기도 해요. 어쩌면 나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이 되기도 하겠네요. 하하하"


"촌놈님에게 동굴은 여러 의미가 있네요!"


"네 맞아요. 세상의 시선이 아닌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만 가득한 공간이 저의 동굴이니까요. 그래서 그곳은 세상 그 어느 곳 보다 안전해요.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곳이 나만의 동굴이죠. 결국 동굴은 편안함과 불안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공간인 것 같네요"




상담사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럼 촌놈님 만의 동굴에서 나오는 일은 어떻게 느껴지세요?"


"나만의 동굴 안에서는 증명할 필요가 없죠. 누구도 나에게 물음을 던지지 않죠. 오직 나만이 나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죠. 그래서 애쓰려고 할 필요는 없지만 문득 '언제 나가야 할까?', '나를 기다리는 가족이 있는데 빨리 나가야 할 텐데', '계속 동굴 속에 있으면 나만 뒤처지게 되는 건 아닐까?'등의 불안과 두려움이 찾아오기도 하죠"





동굴밖 세상과 마주하는 것은
나의 불안과 직면하는 일이다.


노력, 열심, 최선, 책임, 역할... 이 모든 것이 나에게 압박이 되고 그것은 또 나를 '증명해야 한다', '증명해 내야만 한다'의 강박으로 몰고 갈 것이다.

하지만 난 동굴밖으로 나와야만 한다. 고립된 채 세상과 단절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이 동굴 밖으로 나와야만 한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그 타이밍을 찾는 게 참 어려운 것 같아요.

하지만 그 타이밍은 누구도 정해줄 수 없죠. 오직 스스로 느끼고 결정해야 할 부분이니까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동굴 안에 있는 동안 나를 회복하고 준비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죠. 나만의 동굴에는 책상과 의자 내가 좋아하는 책이 함께 할 테니까요. 그리고 동굴을 나갈 준비가 되었을 때, 사다리는 저를 세상으로 이끌어주는 충실한 다리의 역할을 하겠죠. 좀 더 수월해지지 않을까요? 하하하"


상담사님은 "좋네요" 하고 다른 참가자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나는 잠시 내가 그린 나의 동굴을 다시 바라보았고, 세상으로 올라가는 사다리를 보았다.


세상밖으로 올라가야 하지만 아직 준비가 덜 된 느낌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의 사다리는 늘 항상 그곳에 있다. 그리고 난 언제든 그 사다리를 타고 세상밖으로 올라올 수 있을 것이다. 이 사실이 나에게 약간의 위안이 되는 느낌 ㅎ


"동굴에 머무는 것도, 동굴을 떠나 세상박으로 나아가는 것도 나에겐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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