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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영 Jun 02. 2022

2022년 3월 5일(토) 그룹홈 보육사 일기

<코로나가 그룹홈 위로 그림자를 드리울 때>

월요일 출근을 앞두고 쉬고 있던 일요일 밤. 카톡이 울렸다. 윤슬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원아 중에 가족 확진자가 나왔다고 했다. 벌써 몇 번째 받는 메시지였다. 윤슬이를 포함한 그룹홈 아이들 모두 자가진단 키트로 코로나 검사를 해야만 했다. 혼자서 주말 근무 중이던 막내 동료는 그 메시지를 받고 나서 40여분만에 그룹홈 아이들이 '전원 음성'이라는 결과를 알려왔다. 휴. 병원 청진기만 보아도 기겁을 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윤슬이나, 코로나 검사용 면봉만 보면 소리를 지르고 발버둥 치는 오순이를 데리고 혼자서 검사를 해냈을 막내 동료를 생각하니 마음이 안 좋았다. 고생했다고, 아이들이 모두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연거푸 답글을 주고받았다.


어린이집을 다녀온 윤슬이와 지난주 내내 시간을 보냈던 나도 얼른 코로나 자가진단 키트를 구해서 검사를 해보아야 했다. 그러나 집 앞 편의점에는 키트가 모두 팔리고 없다고 했다. 내일 새벽에는 물건이 새로 들어오기로 했으니 때맞춰 다시 오라는 답변을 듣고는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다. 양성이든 음성이든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속이 상할 것 같던 참에 차라리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두어 시간 후, 카톡이 또 울렸다. 집에서 쉬고 있던 다른 동료의 메시지였다(우리 그룹홈은 총 세 명의 사회복지사가 함께 일을 한다). 남편이 코로나에 걸린 것 같다고 했다. 몸이 좋지 않다길래 자가진단을 해본 결과 양성이 나왔다는 거다. 손끝이 저릿저릿해지면서 마음이 착잡해졌다. 월요일 아침부터 수요일 아침까지는 내가 근무를 서는 차례인데, 나와 교대근무를 해야 할 동료가 남편 때문에 출근을 못 하게 되면, 나는 그의 몫까지 도맡아 연장근무를 해야 할지도 몰랐다. 가뜩이나 두 밤씩 연달아 근무하는 것 때문에 몸이 힘들던 참이었다. 언제 집에 돌아올지 모르는 신세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두려움이 느껴졌다. 동료의 남편이 PCR 검사에서도 확진이 나온다면? 그 와중에 동료의 아이들까지 도미노처럼 줄줄이 감염되기라도 하면?! 


좋겠다. 불쑥 그런 마음이 올라왔다. 남편 몸이 아픈 상황이 안쓰럽고, 두 돌이 지난 아이와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아이한테 전염병이 옮을지도 모르는 상황이 무섭기도 하지만, 우리가 그간에 얼마나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왔는가 말이다. 십 년이 넘도록 그룹홈에서 길러온 두 아이를 몇 달 사이에 독립을 해서 내보내고, 새로 만난 두 아이를 식구로 맞이해야 했다. 새로 적응하느라 누구보다도 힘들 아이들에게 든든한 품이 되어야 할 것만 같아서 차마 괴로운 내색을 할 수도 없는 시간이었다. 이참에, 맨날 그룹홈 뒷전으로 미뤄두던 식구들과 한 며칠 집에서 쉴 수 있는 상황이 되어서 어쩌면 동료는 안도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아무 걱정 말라고, 그간 빨간 날도 맘 편히 쉬지 못하고 그룹홈에만 매여 살았으니 여기 걱정일랑 말고, 오랜만에 남편 건사하며 아이들이나 단도리 하라, 고 답장을 하면 딱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아이들이나 남편만 챙긴다고 또다시 몸 혹사 말고, 그간 고생한 본인부터 추스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꼭 당부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말이 그리 선뜻 나와주지는 않았다. 저 말에 내 마음이 담기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전부 내 마음이기만 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부럽고(?) 불편한 내 마음을 그대로 드러낼 수도 없었다. 


그 와중에 나까지 자가진단 키트에 두 줄이 나오면 어떡하지, 걱정을 했던 것도 같다. 아니다. 이 참에 두 줄이 나와버리면 나도 한 일주일 정도 쉴 수 있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를 했던 것도 같다. 그룹홈에는 아직 사회복지사가 한 명이 남아있었으니까. 나이가 제일 어리고 미혼인 막내 동료가 우리 둘 대신 그룹홈에 갇혀야 하겠지만 말이다. 괜히 건강한 몸으로 버텨내다가, 내가 그 최후의 일인 자리에서 고생을 도맡을 수는 없지 않은가. 아니다. 평생 집에서 끼고 살던 둘째 딸이 처음으로 내 곁을 떠나, 화요일에 고등학교 기숙사로 입소를 하게 되었는데, 그 둘째 딸이 무탈하게 고등학교 입학식을 마치고 수업까지 참여하려면 내가 지금 코로나에 걸리면 안 되었다. 안 되고말고! 수시로 마음이 갈라져서 이랬다저랬다 혼자서 소리를 질러댔다. 


가족이 아프다고 하는 동료 앞에서 '네가 감염병으로 집에 갇혀버리면, 나는 너 대신 내 가족과 떨어진 채로 그룹홈에 갇혀버릴지도 모른다'고 우는 소리를 내는 내 모습이, 혼자만의 생각이라 하더라도 너무나 시끄럽게 들여다 보였다. 그룹홈 아이들이 이런 내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하면 나에게 얼마나 실망을 할까 두렵기조차 했다. 누구보다도 아이들을 위하는 사람인 것처럼 그룹홈 이모 역할에 열심이던 내가, 어이없게도 동료의 문자 한 통을 받고 나서 바닥을 다 드러내 보이다니. 초라하기 짝이 없는 마음이 허술하기까지 하구나 싶었다. 적어도 나한테 만큼은 들키지 말지.


***


토요일. 남편이 코로나 양성 반응을 보였다는 동료의 문자를 받고 엿새가 지났다. 자가진단 키트 검사결과가 음성인 것을 확인하고 나서 월요일에 출근한 나에 이어서, 지난 수요일 저녁에 막내 동료 역시 자가진단 키트 검사결과가 음성인 것을 확인하고 나서 출근을 했다. 남편에 이어 아이들과 함께 결국 코로나에 걸려버린 동료의 빈자리를 대신해서 나와 막내 동료가 각각 열두 시간씩 더 근무하면 모든 문제는 끝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아기 엄마인 동료는 시설장이라, 보육사인 나나 막내 동료와 달리, 시설에서 혼자 근무해야 하는 시간이 적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우리 둘이 스물네 시간만 더 일하면 된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더랬다. 


그러나 오늘 아침까지 근무를 마친 막내 동료는, 결국 우리 그룹홈에서 나온 두 번째 코로나 환자가 되어 퇴근을 했다. 밤새 열이 너무 끓어서 자가진단 키트 검사를 시도해봤더니, 양성 반응이 나오더란다. 이러니 내가 미치나 안 미치나.


'괜히 건강한 몸으로 버텨내다가, 최후의 일인 자리에서 고생을 도맡는 자'는 결국 내가 되고 말았다. PCR 검사 결과가 나와야 더 정확하겠지만 말이다. 이 와중에 새로 식구가 된 아이는 뜻밖의 모습으로 자꾸만 사람을 놀라게 하지요, 잘 생활하던 아이는 그 틈을 타고 생각지도 못한 사고를 치지요, 덩달아 놀란 아이 하나는 너무 놀라서 몸이 아프다고 호소를 하지요, 또 하나는 자꾸만 코로나인지 감기인지 헷갈리는 증상을 보이지요... 하. 평소 같으면 그러거나 말거나 거뜬하게 소화를 해내고 말았을 일들이 하나같이 버겁기만 해서 자꾸만 예민하게 반응을 하게 되었다. 틈만 제대로 주어졌다면 정말 한바탕 시원하게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체력이 쉽게 고갈되었고  감정 역시나 왜곡되기 시작했다. 어떤 사고를 치더라도 그 이면에서는 “사랑해 주세요! 네? 제발 관심 좀 가져주세요!” 하는 목소리가 존재한다고 웃으며 설명을 하던 내 안의 목소리까지도 급속도로 정신을 잃고 폭주를 시작했다. '내 몸 하나 움직여 팔 뻗을 힘도 사그라지고 있거든, 그렇게까지 사람을 놀라게 해놓고 사랑을 해달라니, 가당치 않!!! '하고 고래고래 소리부터 지르려고 했으니까 말이다. 


마음속의 여유가 사라지고 나니까 아이들이 들어설 자리까지도 없어져버린 것 같았다. 나만 미워지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까지 미워지려고 했다. 그야말로 온몸에서 용량초과라는 글자가 빨간불을 켜고 비상벨을 울리는 것만 같았다. 여차해서 코로나 앞에서 나까지 버티지 못하게 되는 경우, 그룹홈 안의 기존인력을 대체할 만한 사회복지시설 대체인력 지원 사업을 신청할 수도 있다고는 했다. 하지만 그것 역시나 며칠 전 생겼다는 지침 속 내용일 뿐이었다. 생판 모르는 사람을 제때 제대로 구하는 것도 문제지만, 아이들을 그런 식으로 맡겨놓고는 마음을 놓고 쉬는 것도 불가능할 것 같았다. 업무 자체가 대체하기가 참 어렵기도 하니까 말이다. 하. 그룹홈에 나 혼자 두고 코로나에 걸려버린 동료들의 마음 역시 이렇게 불편하겠지.


코로나가 그룹홈 위로 그림자를 드리울 때,  나는 그 아래 어둡게 깔린 내 모습을 오래오래 들여다보게 되었다. 내가 그룹홈 아이들에게 위험한 존재가 되지는 않을까 두려웠을 정도로, 내가 얼마나 별 볼 일 없고 치사한 인간인지를 들여다보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내 모습을 반성만 하다가 이 글의 마침표를 찍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너무 쉽고 단순한 일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에 법정 공휴일도 보장받지 못하고 교대근무를 해내는 동료들을 나는 잘 안다. 그 처우를 받고도 그들이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 역시도 나는 잘 안다. 그러나 그런 동료들 위로 코로나의 그림자가 드리워졌을 때, 그들이 자기를 얼마나 싫어할 수 있는지, 서로를 얼마나 원망할 수 있는지, 그리고 아이들을 얼마나 무서워할 수 있는지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코로나가 그룹홈 위로 그림자를 드리웠을 때, 나는 보았다. 아이들 못지 않게 이모들 역시 얼마나 취약한 곳에 놓여있는지를 말이다. 그래서 얼마나 쉽게 그늘이 질 수 있는 존재인지를 말이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 역시나 얼마나 위험한 곳으로 내몰릴 수 있는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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