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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영 Jun 02. 2022

코로나 이후_그룹홈 보육사 일기

<2022년 3월 7일(월)>


결국 보건소에 다녀왔다. 윤슬이 머리에 열이 들끓었다. 그리고 하루종일 온 집안이 들끓었다. 

아직은 음성이라는 내 목구멍이 조금씩 부어오르고 있다. 토요일 아침에 출근을 하면서도 이럴 거라 예상은 했었다. 


이 상태로 집으로 가자니 식구들에게 왠지 미안하다. 식구들까지 이렇게 살겠다고 결심을 한 것은 아니니까. 그렇다고 그룹홈에 주저앉자니 그것도 그렇다. 밤새 아이들 울음소리나 열 걱정 없이 그저 내 몸 안으로만 조용히 침잠하며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아침 일곱 시 반. 남편은 샌드위치를 가지런히 만들어 내 방문 앞에 두고 출근을 했다. 라떼도 내려서 함께. 엊저녁에는 돼지고기와 콩나물을 넣어 볶은 마라샹궈 덮밥을 방문 앞에 놓아주었다. 그 전날 저녁에는 연어장 덮밥을. 



<2022년 3월 11일(금)>


한번도 이런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퇴근을 한 남편이 대문을 열고 집안에 들어서는 소리를 귀 기울여 듣게 되었다. 비닐봉지 부시럭거리면서 내 방문 앞에 뭘 놓아두는 소리. 그래, 이제는 소리로 그이의 모습을 본다. 똑똑, 여보, 유효 농도가 높은 소독약 새로 사다놨어요, 얼른 가져가세요. 곧이어 그이는 부엌에서 달그락 달그락하고 소리를 내었다. 내가 갇혀 있는 방 안으로 고기 볶는 냄새가 스며들어 왔다. 도대체 뭘 만드는 걸까? 혼자서 메뉴 맞히기를 했다. 그런데 한번도 못 맞혔다. 생각보다 그이의 메뉴는 다양했다.


남편은 오늘 저녁밥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 코로나 확진자의 어느날 아침 -



<2022년 3월 17일(목)>


코로나 자가격리를 마치고 그룹홈으로 돌아왔다. 윤슬이가 나를 보고 달려와 품에 안겼다. 크게 내는 웃음소리도, 얼굴 근육을 모두 써서 웃는 그 표정도 사랑스러웠다. 일주일 전만 해도 코로나 때문에 열이 나서 몸이 축 처져있었었는데 이제는 다 나아서 기운이 펄펄 나는 모양이었다. 집을 치운다고 몸을 숙여서 인형을 줍고 책을 집어들 때마다 윤슬이가 좋다고 소리를 질렀다. 마구 뛰면서 엉덩이고, 허리고, 배고 끌어안고 매달렸다. 몸을 돌려서 안아주면 배에 머리를 파묻고 냄새를 맡다가 눈을 맞추고 이모, 하고 부르며 생글 웃었다.


갑자기 고모 생각이 났다. 고모가 아마 지금 내 나이쯤 되었을 거다. 그 건강하고 아름다운 몸을 움직여서 집을 싹싹 닦고 맛있는 냄새가 집안을 가득 채우도록 고구마를 튀기고 하던 장면이 생각났다. 나도 그렇게 윤슬이처럼 소리를 내어 크게 웃으면서 달겨들어 고모를 끌어안고, 고모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고 그랬었다. 그래, 고모한테서는 항상 고모 냄새가 났다. 깨끗하게 세탁해서 햇볕에 잘 말린 옷감 냄새, 옷장 나프탈렌 냄새, 화장품 냄새, 그날 그날 요리해서 먹었던 음식 냄새, 그리고 쾌적한 집의 냄새도. 안전하고 포근하고 생기 넘치고 사랑스러운 냄새였다. 엄마한테서는 맡을 수 없는. 윤슬이가 내 품에 머리를 묻고 파먹을 듯이 냄새를 맡을 때마다, 나는 그렇게 고모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제 우리 고모는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어서 쌕쌕, 하는 소리로 겨우겨우 살아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게 고작이다. 폐암 4기란다. 온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만 같던 고모의 생기와 에너지는 이제 내 기억 속에나 존재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자꾸만 밭은 기침 소리를 내면서 누워있는 고모의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많이 어지럽다. 고모, 하면 떠오르는 내 안의 이미지와는 너무 다른 모습이라서다. 하지만 나를 안심시키던 고모의 냄새 만큼은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예전의 그 고모를 금방이라도 끌어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2022년 4월 7일(목)>


새벽 내내 뒤척였다. 이런저런 내 안의 목소리 때문에 도저히 다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러게 뭔가가 이상하긴 정말 이상하다는 생각을 내내 하던 중이었다. 엿새 전에 고모가 돌아가셨다기에는 내가 너무 멀쩡한 것 아닌가 싶었으니까. 더군다나 엿새 전에 나는 직장도 옮겼는데, 너무 멀쩡한 것 아닌가 싶었으니까. 


이 년간 정들었던 오순이도, 그리고 윤슬이도, 연서도, 아인이도, 동료들도 다 두고, 고모가 돌아가신 날, 나는 새로운 그룹홈에서 새로운 아이들과 새로운 동료들을 만나게 되었다.


지난 주말 이틀 동안에는 상복을 입고 상주인 사촌 오빠와 함께 고모의 장례식장을 지켰다. 그러나 삼 일째 되는 월요일에는 출근을 했다. 고모는 나의 직계가족이 아니었다. 결근을 할 명분이 없었다. 고모와 나의 관계는 평생 그래왔다.


그룹홈을 옮긴 건, 법인 안의 또 다른 그룹홈에서 일하던 동료가 사표를 썼기 때문이었다. 근무시간이 길고, 교대 근무로 생체리듬이 깨지고, 아이들 상황은 긴박한데다, 처우까지 박한 그룹홈 보육사 자리는 자주 바뀌었다. 어쨌든 나는 내가 가장 필요한 그 자리에 가기로 했다.


그동안 써오던 그룹홈 보육사 일기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생생히 담겨 있어서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들의 삶을 담은 글이 혹여 나만 살찌게 하는 상황을 만들지는 않을까 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살기는 했었다.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해가 되는 내용은 쓰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했다.


며칠간 너무 많은 것들과 헤어졌다. 아주아주아주아주 소중하다고 생각해 왔던 것들과. 그렇다고 마음 놓고 와르르 무너질 수는 없었다. 나는 정든 이모와 작별을 하고 난 아이들의 마음을 놓치지 않고 들여다보아야 했다. 아이들의 끼니도, 간식도, 몸도, 옷도, 숙제와 놀이를 비롯한 일과도, 그리고 애정도 구멍 나지 않도록 잘 매만져야 했다. 뿐만 아니었다. 새로운 업무와 역할이 무엇인지 빨리 익히지 않으면, 나 역시도 여기서 계속 일을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같은 걸 느꼈다.


이 새벽.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꽁꽁 동여매 놓았던 마음속 목소리가 잠결에 흐트러진 나를 틈타서 이리저리 말을 걸었던 것 같다. 나 지금 멀쩡하지 않다고. 그래야만 하는 상황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내 목소리를 듣지도 못하면서 다른 누구의 목소리를 듣는 삶을 제대로 살 수는 없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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